나는 어떤 엄마일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울 엄마는 어떤 엄마이셨던가. 돌아가신지 3년 되신 엄마를 생각하며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모습이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본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결혼하고나서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하셨던 어머니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그냥 가정주부로 지내셨다. 화학과를 졸업하셨던 엄마를 보며 약대를 가셨다면 더 자신의 꿈을 더 펼 수 있지 않으셨을까. 늘 아쉬워했다. 어머니보다도 내가. 'YES'맨으로 자랐던 나는, 엄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삶에 긍정적인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늦게 결혼을 했던 나는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에 출발했기에 굵고 짧게 농축시킨 진액처럼 세월을 찐하게 보냈다. 엄마가 도와주셔서 더 열심히 세월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엄마는 부모교육 강사면서 왜 그렇게 해?
부모교육을 배우기 전까지 많은 강제성, 잔소리, 욕심으로 자녀들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놓고 간 학용품, 준비물은 아베베처럼 달려 학교로 갖다 주었다. 공부시간에 착오가 없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온 힘을 다해 왕복 등굣길을 한시간 내 돌파하고 나면 진이 빠져 오전 내내 푹 퍼져 버렸다.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하던 초기 시절에는 아이들의 볼멘 소리가 마음에 박혔다. 내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이들은 '엄마는 부모교육 강사면서 왜 그렇게 해?' 라는 말을 달았다. 그 순간에는 뒤통수 맞은 듯 꼴깍 숨이 멈추기도 했다.
스무 살이 지난 어느 날 딸은 자주 얘기했다. "내가 해달라는 것만, 내가 원하는 것만 해 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일상의 대부분인 것을 의미했다. 나 역시 부모교육 강의와 자녀 상담 때 많이 하는 말이다. '자녀가 해 달라는 것만 해주세요 너무 진은 빼지 마시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큰 딸 직장 가서 아직도 어수룩하여 놓친 것을 지나치기 어렵다. 빠진 것이 눈에 보여 안 보이게 슬쩍 처리해놓곤 하는데 어김없이 '하지 말고 손대지 말란다.'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학교 다닐 때 갖다 주지 않았어야 야단맞고 정신 차려서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텐데'
둘째딸은 어제 퇴근하며, 피곤하여 너무 힘들다며 짜파게티가 먹고 싶단다. 자기가 집에 와서 끓여먹겠다고 하는데 오는 즉시 앞에 짜파게티를 대령하고 싶어서, 아니 먹게 하고 싶어서 착~ 준비, 끓여 주었다. 면과 스프를 비비며 딸은 얘기한다. 종일 마우스 만져서 힘든 것보다 짜파게티 버무리는 게 너무 뻑뻑해 더 힘들다고. 서두르다가 물을 다 쏟아버려서 비빌 국물이 없었던 거다. 지난번에는 버리지 않고 가루를 넣어서 국처럼 돼서 핀잔을 들었다. 둘째 딸은 "엄마는 짜파게티 정말 못 끓여." 라며 못을 박았다.나도 짜파게티 트라우마가 생기겠다.
엄마라는 역할
왜 그랬을까, 해달라는 것만 해주라고 했는데. 열심히 해주고 오히려 섭섭한 소리만 듣는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런 딸들을 보며 돌아가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 다정다감한 딸이 아니었는데 나도엄마에게 많이 섭섭하게 했을 것 같다. 공부한다고, 강의한다고, 바빠서 집에 오셨을 때, 며칠 묵으실 때도 얘기 나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내가 해달라는 것이 없었을 정도로 엄마가 완벽했었나?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치고 빠지는 것을 아셨나?
너무 잘하려고, 잘해주려고 애쓴 것이 딸을 위해서라기보다 나 스스로 엄마의 역할을 잘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나 보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육아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인생의 마무리를 잘 해나가고 싶은 지금 드는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말 ~~~껄, 그렇게 할 ~~껄 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