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이맘 Oct 14. 2020

끝말 잇기

엄마에겐 언제나 별이가 일등.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자동차로 긴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별이는 늘 그렇듯이 유튜브로 시간을 한참 보내더니 나의 성화에 못 이겨 패드를 닫았다. 그리고는 바로 심심하다를 연발했다. 유튜브를 더 보겠다는 소심한 항의였는지 단순한 심심함의 표현이었는지 나로서는 전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별이가 곧이어 끝말잇기를 제안하였기에 순순히 응하였을 뿐.

 별이가 조금씩 성장할수록 우린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놀아주는 것이 아닌 종종 함께 놀기도 한다. 끝말잇기도 그러하였다. 예전엔 우리가 도움을 주는 경우가 주로 많았지만 이제는 별이가 혼자서 충분히 놀이를 이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 놀이는 평소에 다른 재미있는 놀이에 밀려 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인 자동차 안에서만 하는 놀이이다. 그리고 별이는 평소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무척 내켜 하지 않고 나 역시 최근에는 외출을 자제해온 터라 정말 오랜만에 끝말잇기 놀이를 하게 되었다.

 예전에 별이는 잘 모르는 앞 글자가 나오면 무조건 '산'을 붙여 단어를 만들었다. 아마도 우연히 알지 못하는 단어에 '산'을 붙였더니 실제 존재하는 단어였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산'을 붙이는 별이의 끝말잇기 습관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별이가 산을 붙인 단어를 말할 때마다 나와 별이 아빠는 그런 별이를 귀여워하며 참 많이 웃기도 하였다. 그래서 별이는 우리를 더 기쁘게 하기 위하여 자주 사용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생각이 안 났던 것인지. 이제 별이의 실력이 높아진 탓인지 우리의 실력이 낮아서인지 끝말잇기 놀이는 예전보다 꽤 길어졌지만 익숙하고 재미가 '덜'하였다. 우리는 이어 (아마도 별이의 제안인 듯싶은) 영어 끝말잇기를 '새로이' 시작하였다. 

 영어 끝말잇기는 신선하고 꽤 재미있었다. 우리는 영어 단어의 스펠링을 정확하게 다 알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앞과 뒷글자는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서로 가르쳐 주면 되니까. 우리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에 늘 열심히고 더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별이는 끝말잇기도 열정적으로 몰입하였다. 다만 본인이 좋아하는 곤충의 종류를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Butterfly, Bugs 등의 단어를 본인이 지나치게 말하고 싶어 했다. 별이 이전의 차례인 나는 아빠가 말한 단어의 끝과 별이가 원하는 단어의 앞을 연결하기 위해 고도의 머리를 써야 해 OB나 YB 같은 다소 억지스러운 약어들을 설명하면서 놀이를 이어갔고 사실 별이의 철저한 자기 위주의 고집스러움 역시 몹시 사랑스러워하던 참이었다. 별이는 우리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어 끝말 놀이가 지루해졌을 즈음 신랑은 지나가는 한 차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놀이를 하다 말고 신랑의 말에 바로 반응하였고 별이는 갑자기 화를 내었다. 놀이에 집중하지 않은 엄마 아빠 때문에 화가 난 것인지 혹은 차를 바꾸고 싶지 않은 본인의 생각은 무시하고 자꾸만 차 얘기를 하는 엄마 아빠가 야속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장거리 운행에 컨디션이 갑자기 나빠졌던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에게 일 번이 본인 아니라며 눈물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나도 이번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별이에게 별이가 자꾸만 엄마한테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별이에게 엄마가 일 번이 아닌 것 같다고 응수하였다. 자꾸만 이기고 싶어하고 부쩍 본인이 원하는 것만을 하려는 별이에게 조금 지친 것도 같았다.

 그러자 별이는 원래 엄마는 본인이 일 번이 아니었다고 당당히 소리 높여 이야기하였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하였다. 나는 꽤 여러 번 별이에게 일 번은 꼬부기(거북이 인형)란 진심 섞인 고백을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당연히 별이에게 일 번은 나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도 일관된 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웃으면 지는 건데. 어쩔 수 없다. 나는 별이에게 늘 져 왔다. 별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늘 억울해하긴 하지만. 

 나는 별이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화를 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사람 중에는 늘 내가 일 번이었다고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였다. 본인은 엄마가 일 번이 아니지만 엄마에게 본인은 일 번이라는 믿음을 별이는 아주 강력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더불어 나 역시 별이가 내가 일 번이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일 번이라고 믿은 것처럼.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를 무척 신뢰하고 있고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는 것도 같다.

2020년 8월 15일 이야기 끝.



2020년 8월 8일 유치원 끝말잇기 숙제 :ㅇ 우리 별이는 놀고 놀아도 늘 부족하구나.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