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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Sep 19. 2018

< 명당 > 영화 "관상"의 자리를 탐하다! 그러나

영화 <관상>과 비교를 통한 영화 <명당>  리뷰

 영진위 공식 집계상 913만 관객이 든 영화 <관상>은 '주피터 필름'의 영화다. '주피터 필름'은 <관상>을 시작으로, 영화 <궁합>, 그리고 이번에 개봉하는 <명당>이란 영화까지, 역학 3부작을 완성시켰다. 영화 <궁합>이 '이승기'라는 스타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13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면서, '주피터 필름'은 <관상>의 흥행 성적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명당>은, 주피터 필름의 전작 <관상>과 많이 닮아 있는 듯하면서도 다르고, 매우 다른 듯하면서도 닮아 있다.


 영화 <명당>을 보고 나오면서 처음 든 생각은, 역사적 사실이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름 선방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과 강렬한 한 방의 부족!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데, 같은 '주피터 필름'의 <관상>도, 역사적 사실이 스포일러였음에도 강렬한 재미를 주지 않았었나? <관상>과 <명당>을 비교해 보면, <명당>의 부족한 그 무엇이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두 영화를 한번 비교해 보자!



 <관상>과 비슷한 <명당>의 설정들.


두 영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주된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설정과 이야기의 중심 모티브, 큰 줄거리까지,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아있다. 영화 <관상>은 천재 관상가 김내경이, 오로지 관상을 잘 보는 실력 때문에, 권력층의 왕권 다툼에 휘말리게 되고, 수양대군의 반정 과정에서 가족이 희생당하면서, 권력에 대한 욕망의 위험성을 깨닫고 결국 비탄에 빠져 낙향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와 너무나 비슷하게도, 영화 <명당>은 천재 지관 박재상이, 오로지 명당을 잘 보는 실력 때문에, 권력층의 왕권 다툼에 휘말리게 되어, 가족을 잃고 복수를 꿈꾸지만, 권력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결국 비탄에 빠져 낙향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영화 곳곳에 나타나는 소소한 설정들에 있어서도 많은 공통점들이 발견되는데, 천재 관상가와 지관 옆에, 조수와 같은 인물이 항상 함께 한다는 점이다. <관상>에선 김내경의 처남 '팽헌'이, <명당>에선 박재상의 친구 '용식'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주인공이 차마 하지 못하는 본능적인 말과 행동을 대신 해 줌으로써, 영화의 절정으로 주인공을 몰고 가는, 역설정마저 비슷하다. 또 두 영화 속엔, 주인공을 권력층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기생이 한 명씩 등장하는데, <관상>의 연홍과 <명당>의 초선이다. 그래서 두 영화엔  기생집에서 노는 장면도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솔직히 명당 속 기생집 장면은 캐릭터 성격에 비추어 봤을 때 좀 어색하다. 또, 왕권 다툼이라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 갈등이 비슷하니, 힘없는 어린 왕이 등장하는 설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고, 유약한 왕을 겁박하는 강렬한 안티 히어로가 등장한다는 점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 두 영화는 갈등을 이끄는 안티 히어로로, <관상>에선 수양대군을, <명당>에선 세도정 하는 장동 김씨의 수장 김좌근 대감을 등장시켜, 그들의 강력한 힘과 존재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영화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관상>과 다른 <명당>


하지만, 영화 <명당>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테일한 인물 설정과 이야기 구조적 측면에서 <관상>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 다른 점들이, 강렬한 한 방이 있던 영화 <관상>과, 나름의 완성도를 갖추긴 했지만, 뒷힘이 부족한 <명당>의 차이를 가져온 결정적 이유가 될 것이다.


첫째, 주인공에 대한 표현력과 감정 몰입 측면을 살펴보자. 

영화 <관상>은 시작부터, 주인공 김내경의 상황과 심리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역모를 막으려는 그의 위험한 행을 볼 때마다, 아슬아슬한 영화적 긴장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영화 <명당>은 주인공 박재상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긴 하지만, 박재상의 마음과 심리에 관객들이 동화할만한 에피소드가 전혀 없다. 박재상이 가족을 사랑한다는 점을 관객이 느끼기도 전에, 가족은 죽어버리고, 시간이 지난 후엔, 그저 그런 평정심을 갖고 아무렇지 않게, 풍수를 보러 다닌다. 왕족인 흥선과 친구가 되지만, 그토록 어려워하던 왕족과  어떤 우정을 나누며 말을 편하게 놓게 됐는지, 흥선에 대한 박재상의 마음은 무엇인지, 전혀 표현되지 않은 채 이야기가 흘러가 버린다. 영화 속 인물, 살아 있는 인물로 느껴지게 하는,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하면, 영화는 몰입감을 끌어내는데 실패하고 만다. 또, 영화적 절정을 이끄는 써브 주인공으로서 흥선의 심리와 정서 또한 영화 속에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왕을 쥐고 흔드는 장동 김 씨 일가의 만행에 분노하고, 어린 아들에게 곤룡포를 입혀 왕놀이하는 흥선의 모습은 보이지만, 정서가 연결고리를 갖고 쌓이지 않 흩어져 버다. 또 2대에 천자가 나온다는 명당을 앞에 두고 드러나는 그의 본색은, 대비될 만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전 인상적이지 않다. <관상>의 써브 주인공이었던 수양대군이, 준비한 독침으로 차마 단종 암살을 실행하지 못하고 갈등한다는 영화적 상상력이 동원된 단 한 장면을 통해, 안티 히어로의 입체적 캐릭터까지 섬세하게 보여준 <관상>의 인물 표현력을 생각해 볼 때, <명당>의 인물 표현 부족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둘째, 이야기 속 갈등 구조와 주제의식을 살펴보자.

 <명당>의 시간적 흐름은 전체적으로 천재 지관 박재상을 따라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는 안티 히어로인 장동 김 씨 수장, 김좌근과 김병기로, 왕권을 쥐고 흔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통해, 영화 속 갈등을 주도해 간다. 또,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쯤, 핵심 갈등을 야기시키는 존재는, 여태껏 갈등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장동 김씨 세력이 아니라 흥선이 된다. 갈등을 쌓아 올려도 부족한 판에,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가 갑자기 달라지면서, 갈등의 무게감도 달라져 버린다. 게다가, 명당터를 두고 대립하는 장동 김씨, 김병기와 흥선의 싸움은 칼끝에서 벌어지는 협상에 의해 쉽게 해결돼 버리고, 박재상과 흥선의 대립 또한 별다른 고비 없이 흥선의 의도대로 마무리됨으로써 절정 답지 않은 절정으로 이야기는 끝나버리고 만다. 여기서 박재상은 역사적 운명을 설명하는 대사를 전달해 줄 뿐, 그 싸움에 어떤 영향력도 끼치지 못한 채 힘 없이 밀려나 버려, 클라이맥스의 주인공마저 흥선에게 내주고 만다. 한마디로, 영화적 절정에서 갈등의 요소와, 대상이, 급작스레 바뀌면서, 대립적 상황이 주는 긴장감도 약해지고, 주인공의 존재감도 약해져 버려, '명당 빼앗기'라는 역사적 사실만 확인하게 되는, 이상한 클라이맥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관상>의 경우는 이와 많이 다르다. 영화 속 이야기는, 시간적 흐름뿐 아니 주된 갈등도 시종일관 김내경의 행동과 상황에 따라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역적의 관상'을 알아보는 내경의 능력은, 자연스레 김종서와 문종의 편에 서서 수양대군과 갈등을 빚는 핵심 위치에 김내경을서게 만다. 한낱 관상가가 왕권 다툼의 중심에 놓이다 보니, 그의 목숨에 대한 위기감은 점점 커지고, 거기에 벼슬자리에 나선 아들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리며 주인공에 대한 위협이 강화되어 영화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다. 그래서 역모 속에 아들이 희생되는 클라이맥스의 비극 또한, 오로지 주인공 김내경이 감내해야 하는 몫으로 표현되며, 정서적 안타까움의 절정을 만들어 낸다. 결국, 영화의 주제의식과 이야기 구조로 볼 때 <관상>은, 수양대군의 왕권 침탈 사건을, 천재 관상가 김내경의 상황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인간의 한계와 역사적 비극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명당>의 주제의식은 아보기 참 힘들다. <관상>의 방식으로 주제를 찾아보면, <명당>은 흥선대원군의 명당 빼앗기 사건을, 천재 지관 박재상의 시선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인간에 대한 통찰과 역사적 사건의 의미가 주제의식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어느것 하나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명당 빼앗기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다. 세도정치에 신물이 난 흥선이 왕권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는 욕심과, 세도정치 아래서 비굴하게 목숨을 유지했던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심리 또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어떤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 꼭 집어 주제의식으로 표현해 내지 못했다. 또, 주인공으로 내세운 박재상은 영화적 이야기 변화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채 끝남으로써, 인물을 통한 주제의 발현과 정서적 몰입감은 흐지부지 되고 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의미를 개성 있는 주제로 표현하지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와 통찰을 제대로 끌어 내지도 못한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 주제적 측면까지 모 모호해져 버리고 만 것다.



셋째, 스포일러가 되는 역사적 사실의 한계 극복이란 관점에서 비교해 보자. 

<관상>과 <명당> 모두 역사적 사실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 <관상>은 오히려 이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놀라운 전환을 보여준다. 이미 관객들은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왕권을 찬탈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문종과 김종서의 편에서 수양대군을 막으려는 내경의 어떠한 행동도, 실패할 것이란 사실을 관객들은 미리 짐작할 수 있고, 그 사실은 내경의 위험천만한 행동들에 대한 영화적 서스펜스를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 마디로, 역사적 사실의 스포일러를 역이용하여, 영화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소로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명당>의 역사적 사실은 영화 속 스포일러 상태 그대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흥선이 결국, 명당터를 빼앗는다는 사실을 관객이 알고 있건, 모르고 있건 간에, 짐작할 수 있는 전개가 펼쳐지고, 큰 변고 없이 예상된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까닭에, 영화적 재 큰 영향이 앖다. 흥선이 명당터를 빼앗는다고 해서, 흥선의 친구인 박재상의 위기가 증폭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동 김씨 일가가 시원하게 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흥선 대군이 후에 고종의 아버지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그 사건의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제시해준 적이 없기에, 명당 빼앗기는 그저 벌어질 일이 벌어진다는 생각만 들뿐, 랍거나 의미있게 느껴지지 않다.  여기한 가지 매우 이상한 점은, 왜 박재상은 흥선에게 그 자리가 명당과 흉당의 기운이 함께 하는 땅이란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박재상은 흥선에게 칼을 들고 덤비면서도 그 땅을 손대면 안 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저 안된다고만 하고 있다.


자넨 그들과 다를 수 있었네!
지금 자넬 좀 보게!
자네가 장동 김씨와 다른 게 뭐란 말인가?
제발... 그러면 안되네!

 

장동 김 씨처럼 명당을 탐해선 안된다는 말은, 그 땅을 손대지 말아야 할 직접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흥선을 정말 말릴 생각이 있었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과장을 해서라도, 그 땅에 손을 대선 안 되는 구체적 이유를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박재상은 흥선이 명당 앞에서 흥분한 사이,  그가 들을 수도 없는 혼잣말로, 진짜 이유를 읊조리기만 할 뿐이다. 이야기의 갈등과 긴장감을 키우고, 역사적 스포일러를 뛰어넘 수 있는 핵심 요소를 일부러 숨기는 형국으로 전개된다.


이 사람아! 왕이 나오면 뭘 하나?
2대가 지나면, 자네 자손은 절손되는
흉지란 말일세!


만일, 박재상이, 영화 중반부 이후부터 흥선의 야망을 눈치채고, 2대의 천자가 나오는 명당이 실은, 자손이 절손되고 나라가 망국에 이르는 흉지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흥선과 맞섰다면, 장동 김 씨 일가까지 3갈래의 욕망과 의지가 부딪치며, 영화적 갈등의 힘은 커질 수 있었다. 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명당을 차지하려는 흥선의 모습이 그려졌다면, 그가 한 선택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져, '인간의 욕망에 의한 파국'이라는 주제의식 또한 하게 부각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무슨 생각선지, 역사적 사건이 스포일러가 되는 한계를 가뿐히 극복할 수 있는, '미래 운명에 대한 예언'을 조용히 허공에 날려버다. 최고 권력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속성과, 정치인이 가져야 할 거시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강렬한 주제의식으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결정적 한방을, 허무하게 읊조리며 지나쳐버리고 만 것이다.



마무리하며...


'주피터 필름'이 한국적 소재로 '역학 3부작'을 기획한 것처럼, 한국영화의 가장 큰 화두  하나는, 언제나 신선한 소재에 대한 갈망이었다. 영화 제작사들은 새로운 이야기 소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각종 소설과, 웹툰 등 이야기를 제공하는 모든 매체들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언제까지 한국영화는 신선한 소재 찾기에만 몰두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떠오르기도 한다. 미디어 산업이 발달하고, 인터넷망이 최첨단을 달리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영상으로 접하며 배우는 영상 세대이다. 인터넷만 켜면, 세상의 모든 영상들이 무궁무진하게 흘러나오고, 나름 실험적이고 전문적인 영상 문법에도 적응해가며,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 영상을 선택하고 평가하며, 개성과 깊이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렇게 발전하고 있는 관객의 입장과 상황에서 볼 때, 영화의 소재가 주는 재미적 한계는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신선한 소재를 찾아내,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갈등구조를 겉핥기식으로 결합시켜, 비슷한 취향의 관객들이 그대로 소비하게 함으로써 흥행을 담보받던 시대가 이젠 아니라는 말이다.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 소재의 신선함은 작은 부분이 될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이야 구조의 다양성, 주제의식의 깊이, 정서적 교감의 확장과 매체의 특성을 살리는 참신한 표 등 다양한 요소들이 영화적 재미와 흥행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영화 <명당>은, 영화적으로 소비된 적 없는 '풍수'라는 소재에, 이미 흥행에 성공한 <관상>이라는 영화의 틀걸이를 가져다 결합시킨게 아닌가 하는 인상이, 강하게 풍기는 영화다. 겉으로 보기엔, <관상>의 구조와 비슷한 데다, 걸출한 배우들과,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하기 때문에, 만듦새에 있어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볼수록, 갈등구조의 비틀어짐과 인물의 정서적 교감에 대한 무신경이, 영화적 몰입감을 방해하는 결정적 문제로 드러난다. 신선한 소재로서 한국적 이야기를 개발하고 그것의 숨은 의미를 발굴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겠지만, 성공한 영화의 공식을 쉽게 가져와, 주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역사적 의미 고찰도 없이, 전작에 편승한 기획과, 배우의 연기력에 기대어, 시각적 아름다움만 신경 쓰며 만든 영화는, 이제 더 이상 흥행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신선하고 좋은 이야기 소재라 할지라도, 영화적 긴장감과 정서적 재미, 깊이 있는 의미와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관객들의 흥미와 관심은 길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일수록, 이 점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이 스포일러가 되는 영화적 한계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 <명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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