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 리뷰
작년 12월,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나름대로 재미있게? 눈물 펑펑 쏟으며 보았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있었지만,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저런 평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느꼈던 감상과 주제의식, 감독이 교묘하게 숨겨 놓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만 리뷰했었다. 그리고 전편 '죄와 벌'에서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8개월을 기다려 개봉 첫날! <신과 함께 - 인과 연>을 보러 갔다.
일단, 두 영화는 시간적 연속성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의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죄와 벌'이라는 전편이, 죄지은 자가 진심 어린 행동으로 용서를 구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면, '인과 연'이라는 후편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괴로움과 함께, '삶의 시간이 남아 있는 동안, 진정한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용서라는 주제의식을 완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놓고 볼 때, 전편 '죄와 벌'과 후편, '인과 연'은 참 다른 영화다. '죄와 벌'이 변화무쌍한 지옥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험 영화적 성격이 강했다면, 후편인 '인과 연'의 경우, 중첩되는 액자구성의 형태를 가지고, 이야기 속 관계의 비밀을 풀어가는 드라마적 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 관객이 영화적 재미를 느끼는 방식도 전혀 다르다. '죄와 벌'이 자홍이라는 인물에 집중하면서 그의 애틋한 정서 속으로 관객들을 몰입시켜 감정에 빠져들어 영화를 즐기는 재미를 만들었다면, '인과 연'은 한 명의 인물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인물들의 사연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들의 관계와 지옥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관객들 스스로 알아가는 데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래서 숨은 이야기를 밝혀내고 알아가는 데 관심이 많은 관객들은 전편보다는 후편인 '인과 연'이 더 알차고 재밌다고 느끼게 되고, 영화적 볼거리와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에겐 '죄와 벌'보다는 불만족스러운 영화가 '인과 연'이다.
감독은 그들의 인(因)과 연(緣)을 보여주기 위해, 이승에선 성주신이 해원맥과 덕춘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저승에선 강림이 재판받을 망자인 수홍에게 스스로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의 표면적 흐름은 수홍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귀인 임을 증명하기 위한 지옥 여정으로 그려지지만, 숨겨진 이야기의 흐름은 강림과 해원맥, 덕춘의 전생의 인연과, '용서받지 못한 자'로서 강림의 사연이 밝혀지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연은,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되는 수홍의 마지막 재판 직전, 해원맥, 덕춘의 사연과 강림의 사연이 연결되며, 세 사람의 인연(因緣) 즉, 관계의 비밀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절정의 순간. '죄와 벌'에서 스치듯 보였던 강림의 전생 사연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고통에 대한 고백이 되고, 그 고백은 수홍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 중위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 영화는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이 절정의 순간을 위해, 삼차사의 사연들을 배치하고, 쌓아 올려,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의 구조적 묘미를 살려 낸다. 물론, 관계의 비밀을 미리 눈치챌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의 재미는 느낄 수 있는 구조다.
인물들의 비밀이 밝혀지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린 '인과 연'의 클라이맥스, 수홍의 저승 재판은, 안타깝게도 절정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적 구조가 묘하게 비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구성 단계에서 절정, 즉 클라이맥스는, 주인공의 주된 갈등이 해결되고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으로, 주제의식에 대한 깨달음이 발현되고, 그로 인한 정서적 충만함이 동반되어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영화 '인과 연'의 클라이맥스는 강림의 고백을 통해, 표면적 이야기인 수홍의 저승 재판의 결론은 도출해 내고 있지만, '인과 연'의 핵심 스토리 라인이었던, 강림의 죗값과 '용서받지 못한 자'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채 끝나버리고 만다. <신과 함께> 1, 2편을 통틀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면서도 제대로 된 주인공으로 부각돼 지 못했던 강림이 '인과 연'의 핵심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으로 영화적 클라이맥스에 해결자로 나서고는 있지만, 정작 영화 속 핵심이 되는 자신의 죗값과 용서에 대해서는 어떠한 해결책도 얻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 이상한 클라이맥스가 돼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장면 속 강림의 정서 또한 애매하다. 수홍의 재판에서 변호인 역할을 맡은 강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짙은 감정에 몰입해 들어가는 것은 감정 과잉으로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강림의 감정은 절제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과하게 몰아붙이는 영화 음악의 짙은 정서와, 분노를 드러내는 염라대왕의 묵직한 대사 톤에 힘입어, 클라이맥스에 어울리는 장중한 분위기가 조성되긴 하지만, 갈등의 핵심 요소와 해결책이 구조적으로 틀어져버린 이야기의 절정은 카타르시스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생각해보면, 강림은 천 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백번 양보해서, 강림의 말처럼, 용서를 빌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는 점을 감안하고, 천년의 시간 동안 참회하며 죗값을 치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적어도 감독은, 관객들에게 천 년 동안의 참회로 크게 달라진 강림의 생각과 행동을 대조시켜 보여줬어야 했다. 전생의 죄를 뉘우치고, 목숨의 무게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며, 망자에게 진솔하게 다가가 인정을 베풀 줄 아는 강림의 달라진 모습만이, 진정 용서를 구하는 행동으로 해석되어, 그에게 천년의 시간을 준 염라대왕으로부터 용서받는 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간과해버렸다.
또, 강림이 천 년의 시간 동안 저승 차사로 죗값을 치렀으며, 진심으로 용서받을만하다는 점을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강림을 바라보는 염라대왕의 태도와 반응이 중요한데, 영화는 이 부분도 그냥 지나쳐버리고 만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염라대왕은, 다음 저승 차사를 스카우트하러 갈 것이 아니라, 강림의 변화된 생각과 행동을 알아봐 주고, 진솔한 모습으로 변한 그를 간접적으로라도 용서해 주는 장면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강림이 저승 법을 어기고 현몽의 월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벌하지 않은 이유가, 망자의 심판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강림의 정의롭고,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음을, 천년의 시간을 통한 진정한 참회의 결과였음을, 적어도 관객들이 짐작할 수는 있을 정도로 표현해주었어야 했다. 이 부분의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어느 곳 보다 엄중하고 정의로운 곳이어야 하는 지옥의 가치는 흔들리고, 강림을 변화시킨 염라대왕의 자애로운 배려는, "친인척 비리에 눈감아버린" 제왕의 자기기만적 행동으로 오해하는 관객들이 생기고 만 것이다.
전편 '죄와 벌'의 내용과 그 연장선에 있는 '인과 연'을 함께 생각해 보면, 주워 담지도 못 하면서 남발한 설정들과, 그나마도 앞뒤가 꼬여버린 상황들, 개연성 없이 튀어나오는 대사들과, 일관성 없이 변하는 캐릭터 등...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 강림은 전편 끝에서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이승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차사의 불문율을 어긴 나에게, 왜 아무런 경고도 내려지지 않는 것인지, 왜 염라가 이승의 일로 나를 시험하려 했는지 반드시 물어봐야겠다!" 라며 천륜 지옥을 공격해 들어갔다. 강림의 이 대사는 8개월 뒤에 나올 후편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인과 연'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데 한몫한다. - 실제로 나도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인과 연' 개봉 첫날, 영화를 봤다 - 그런데, 그 부분과 이어지며 시작하는 '인과 연' 어느 곳에도 그 질문에 대한 해답도, 설명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질문은 앞에서 설명한, 강림의 참회와 변화를 시험하는 염라대왕의 자애로운 배려에 관한 의문이었기 때문에, 앞 단락에서 설명한 내용이 제대로 그려졌다면, 당연히 찾을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설명되지 않음으로써, 강림의 이 질문에 대한 답도 당연히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영화적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질문과 대사가, 핵심 내용을 빠뜨려 이야기 완결성을 갖추지 못하게 되면서, 속편에 대한 낚시질용 대사에 그쳐버리고 만 것이다.
또, '죄와 벌'에서 수홍이 악귀로 변해 이승과 저승을 혼란스럽게 만든 이유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일병과 박 중위에 대한 원한과 복수 때문이었다. '죄와 벌'에서 수홍은 분명, 자신의 믿었던 전우들에 의해 살아있는 채로 묻혀,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악귀가 된 수홍이 강림의 붉은 오랏줄에 묶여 "넌, 몰라! 그놈들은 그날, 내 믿음과 희망을 묻어버린 거야! 날 배신한 거라고!"라며 말하는 장면에, 분명 드러나 있다. 그런데, '죄와 벌'의 아주 가까운 시간의 연장선에 있는 '인과 연'에서 수홍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전혀 모른다는 듯이, "만약에 그들이 내가 죽지 않은 걸 알았다면, 그냥 그렇게 묻진 않았을 거야! 적어도 날 배신할 사람들은 아니란 얘기지!" 라며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또, 강림은 그 사실이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 듯, 감추고 숨기며 저승 여정을 진행해 간다. 최대한 이해해 보고자 노력해서, '죄와 벌'에서 수홍이, 그들을 변호하는 강림의 말을 듣고, 원일병과 박 중위가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모른 채 묻었다고 생각을 바꾼 것이라고 해도, 저승 여정 내내,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무 의심 없이, 강림에게 여러 번 자신의 죽음의 비밀을 묻는 수홍의 행동은 영화적 개연성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도대체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설정을 여러 번 강조까지 해가며 끌고 간 것일까?
거기다, 자신의 죽음의 비밀과 변호인으로서 강림의 법정 대리인 이력을 묻는 수홍의 질문에, 강림은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꺼내며, 영화적 클라이맥스로 가기 위한 개연성 없는 이야기들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나마 성주신이 들려주는 해원맥과 덕춘의 이야기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그마저도 이야기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작위성이 종종 드러난다. 무시무시한 무장이었던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듣던 해원맥이, 이야기의 결론이나 자신의 죽음의 상황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방으로 보낸 사람을 뜬금없이 물어보는 역주행의 대사 전개는,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율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보여지는, 개연성 없는 전개의 전형이다. 거기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생인 현동이에게 제대로 된 한글 쓰기를 가르쳐도 모자랄 판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분해해서 하나씩 나열하며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또, 영화 속 캐릭터들은 어떠한가? 해원맥은, 전쟁터에 쓰러진 말의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을 가진 소년이었고, 무술도, 장기도, 아버지의 가르침도, 빠르게 배우는, 영특하면서도, 덕(悳)을 갖춘 인간적인 무사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해원맥은 여진족 양민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발뒤꿈치까지 끊어버리는, 필요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잔인한 무사 '하얀 삵'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전생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저승 차사를 하고 있는 '무식하고 생각 없는 무사'라는 전형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기까지 한다. 그가 가지고 있던 따뜻한 감수성도, 자애로운 인덕도, 뭐든지 빠르게 배우는 영특함의 본성도, 변하는 캐릭터 속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인물 고유의 정체성마저 뒤엉켜 버린 채, 영화의 비밀을 위해 설정이 중구난방으로 변하는 작위적 모습만 들키고 만다. 치밀한 개연성이 갖춰지지 않은 캐릭터의 변화는, 영화의 인위적 흐름과 이야기의 작위성을 노출시키고, 이것을 눈치챈 관객들의 정서적 몰입감은 당연히 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영화 <신과 함께> 두 편이 아주 엉망인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핵심 구성과 개연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이야기의 구조적 재미를 추구한 측면이나, 화려한 CG 기술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상상력, 관객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치열하게 노력한 흔적이 느껴지는 영화로서, 어느 정도 재미를 만들어 내는데도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고유의 신화적 세계를, 영화로 각색해, 대중적 호응까지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한국형 판타지 영화의 새 기준을 만들어 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부분, 원작 웹툰에 빚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웹툰이 가진 신화적 세계관과 신선한 재미는 흡수하고, 짧은 몰입감과 분절적인 에피소드의 한계를 극복하며, 4시간이 넘는 긴 호흡의 영화 2편으로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는 사실은, OSMU(원소스 멀티유즈)의 확장을 더욱 활발하게 해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영화의 짜임새를 분석적으로 들여다볼수록, 실망스러운 구조의 비틀어짐과,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부족한 개연성의 문제가, 작품적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는데도, 큰 흥행 성공에 힘입어, 치명적 약점들을 무시한 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걱정이 들었다. 작품성과 대중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리즈물 사상 쌍 천만이란 기록을 세운 영화가 완성도와 개연성을 무시한 채, 낚시질적 이야기 구조로 계속 시리즈를 이어간다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더욱 비판적인 글을 쓰게 되었다.
<신과 함께>는 후속 3, 4편과 드라마 제작에도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웹툰 원작이 워낙 방대한 분량인 까닭에 만들어질 이야기가 여전히 무궁무진하고, 관객들의 큰 호응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작품적 완성도를 결정 짓는 이야기 구조의 치밀함과 섬세한 개연성 확보에 눈감아 버린다면, 이야기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언제든지 채널을 바꿔버릴 수 있는 텔레비전 드라마 속 개연성의 문제는 훨씬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것이 분명하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재미와 감동,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작품을 보고 싶다. 적어도, <신과 함께>의 '죄와 벌'과 '인과 연'보다는 훨씬 치밀한 구조를 갖춘 영화 속편과, 더욱 심도 깊은 주제를 섬세한 개연성으로 드러낸 드라마가 만들어지길... 그래서 우리 신화라는 소재적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난 후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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