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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테나 Dec 25. 2017

염라대왕의 큰 그림은 무엇일까?

<신과 함께 - 죄와 벌>  리뷰

 배우 이정재는 2003년 김용화 감독의 데뷔작 <오 브라더스>의 주연배우였다. 그래서 그는 김용화 감독이 <신과 함께>의 우정출연을 제안했을 때 쉽게 받아들였고, 이틀 뒤 염라대왕을 해달라고 제안을 바꿨을 때도, 시나리오조차 보지 않고 OK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돼 가면서 특수분장 테스트를 3일이나 하게 되자,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그제야 시나리오를 달라고 했고, 급기야 30회 차나 되는 촬영을 소화하며, 지금은 영화 홍보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30회 차면 웬만한 영화, 주조연 스케줄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했던, 진담 같은 농담처럼, 정말, "감독님과의 우정이 이 정도로 깊었나?" 싶다.


<신과 함께 -죄와 벌> 영화에는 이정재뿐 아니라 특별 출연한 주연급 배우들이 많다. 화재 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홍(차태현)의 동료 소방관 역할에는 배우 유준상, 폭포 위에 대나무 정자를 지어 올리고 이승에서의 나태함을 심판하는 나태 지옥, 초강 대왕에는 배우 김해숙, 자홍이 워낙 의로운 망자 인 탓에 스치듯 지나치는 불의 지옥의 오관 대왕에는 배우 이경영, 천하의 미모로 아름다운 배신만 용서를 해주는 배신 지옥의 송제 대왕에는 배우 김하늘이 등장한다. 유준상을 재외 하면, 특별 출연 배우들이 전부 저승에서 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대왕들로 등장하는 것만 봐도, 김용화 감독이 7단계의 저승 재판을 기획하고 시각화하는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시청각적 관점으로 볼 때, 영화 속에 펼쳐지는 불, 물, 나무, 얼음, 거울, 바위, 모래의 7개 지옥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 CG의 기술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7가지 다양한 물성을 활용해 만들어낸 지옥이라는 상상적 공간의 변화무쌍함에 대해선 대부분 만족하는 듯하다. 물론, 7 지옥의 이미지 자체는, 다양한 판타지 영화들에서 이미 본듯한 느낌이 많아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지옥 풍경들은, 지옥에 대한 모험과 탐험적 성격을 가미하여, 재판 중심의 정적인 영화가 될 뻔한 영화 분위기를, 보다 역동적으로 살려내는데 한몫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지옥은 초강 대왕이 심판하는 나태 지옥이다. 지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폭포 위, 거대하고 시원해 보이는 대나무 정자가 낙원처럼 펼쳐져 있고, 망자는 대나무 뗏목 위에서 판결을 기다린다. 폭포수 자체가 자홍의 이승 생활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되는가 하면, 나태한 망자에 대한 처벌이 결정되면, 망자의 대나무 뗏목은 아찔한 낭떠러지 폭포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기존의 지옥 이미지와 차별되는 참신한 공간 구성이 매우 신선하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방대한 분량의 인기 웹툰을 2시간 내외의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한 측면에서도 이영화는 매우 성공적이다. 특히 각각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웹툰의 구성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따로따로 존재하던 인물들의 관계 설정을 제대로 연결했기에 가능했다. 특히, 망자의 직계 가족이 이승에서 원한을 품은 채 사망하면 저승 지옥에 악귀들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자칫 단절된 느낌을 줄 수 있는 이승과 저승의 관계를 이어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자홍(배우 차태현)과 그의 동생 수홍(배우 김동욱)의 이야기는 따로 놀지 않고, 긴장감의 요소로 활용되어 영화적 재미를 상승시키고 있다.


 또, 탄탄한 원작 설정을 토대로 하나씩 드러나는 지옥의 다양한 질서와 법칙들은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개연성을 부여하며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색다른 지옥을 지날 때마다 설명되는, 저승엔 공소시효가 없다든가, 다른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해를 끼친 것까지 저승에선 처벌받는다든가, 배신도 심판 대상이 되지만, 이기적인 목적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아름다운 배신은 벌하지 않는다는 등의 지옥세계 법칙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보다 훨씬 윤리적이고 모든 가치가 바르게 평가받는 정당한 세계라는 인식을 주며 지옥에 대한 흥미를 높여가게 된다. 다만, 지옥을 보여주는 데 있어 조금 아쉬운 점은, 죗값을 치르는 사람들의 고통이나 아픔을 관객이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한두 장면만이라도, 지옥에서 벌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짐작케 해 주는 강렬한 씬이 있었다면, 지옥을 헤쳐나가며 생기는 아슬아슬한 위기의식과 결말부의 카타르시스가 훨씬 잘 살았을 텐데 말이다.



  영화는, 탄탄한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디자인된 볼거리와 재구성한 관계 설정을 통해, 이승과 저승의 이야기를 제법 잘 풀어낸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천륜 지옥, 염라대왕(배우 이정재) 앞에 이르러, 그동안 감춰져 있던 자홍(배우 차태현)의 죄가 밝혀지며 최대 위기를 맞지만, 수홍(배우 김동욱)과 강림(배우 하정우) 일행이 어머니 꿈속에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현몽'을 만들어 냄으로써, 모든 갈등은 해결된다. 이때 클라이맥스의 주제의식을 친절히 설명하며 영화를 마무리하는 것은, 지옥 최고의 신 염라대왕이다. 


< 염라대왕 >

"이승에 모든 인간은 죄를 짓고 산다.
그리고 그들 중 아주 일부만
진정한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하고,
그들 중 아주 극소수만
진심 어린 용서를 받는다.
...
저승 헌법 1조 1항에 의거...   "


 염라대왕은 자홍에 대한 판결에서,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며 살지만, 용기 내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2시간 내내 보여준 지옥의 심판은, 이승에서 망자가 했던 모든 행동의 결과라는 점을 뚜렷이 각인시키며, 현실의 삶에서 용서를 구하고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용서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 관객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염라대왕의 판결을 이끈, 자홍과 수홍 어머니 꿈속 '현몽'은, 영화의 주제의식을 드러내며,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씬의 논리적 개연성을 따지고 보면, 그 갑작스러운 전개에 강한 의문이 든다. 영화는 초반부터, 7단계 지옥 재판 과정을 통해, 환생이 결정된 망자에게만 가족 꿈에 나타나는 '현몽'의 혜택이 주어진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왔다. 그런데, 마지막 천륜 지옥, 염라대왕 앞에서 자홍의 숨은 죄가 드러나는 순간, 아직 저승으로 오지도 않은 채, 악귀의 원인이 되었던 수홍 망자와 강림 일행이 어머니 꿈에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 천륜 지옥 재판정에서 펼쳐지는 이 '현몽'의 상황은, 논리적 비약일 뿐만 아니라, 저승 세계의 질서와 개연성을 깨트릴 정도로 매우 당황스럽다.


 그렇다면, 이것은 드라마틱한 해결을 위해, 논리적 개연성에 눈감아버린, 감독의 이야기 구성상 실수일까? 아니면, 8개월 뒤에 개봉할, <신과 함께 2편>을 염두에 둔 감독의 의도된 비약? 또는 복선일까? 생각해보면, 저승의 악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승으로 간 강림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지옥 법률을 위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신과 함께 2편>을 보고 나서야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천륜 지옥으로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강림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제시한다.


< 강림 >

' 내가 진짜 궁금한 건
이승에 개입해선 안된다는
차사의 불문율을 어긴 나에게
왜 아무런 경고도 내려지지 않는 것인지,
왜 염라가 이승의 일로
나를 시험하려 했는지
반드시 물어봐야겠다! '


 이 내레이션은, 강림이 자홍의 재판을 돕기 위해 벌인, 저승 법에 반하는 모든 불법적 행동과 그 결과에는, 염라대왕의 숨겨진 의도와 비밀스러운 용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결국, 이 영화 <신과 함께>는 전체 구조상, 염라대왕이 설계한 지옥 재판의 큰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이 있으며, 강림이 그 의미를 알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용서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1편 "죄와 벌"에 이어, 염라대왕이(아니 어쩌면 감독이) 설계한 (이 영화의) 큰 그림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어지는 2편에선 또 어떤 시각적 재미와 깊이 있는 주제를 던질까? 아마도 강림처럼 우리도, 염라대왕이 그린 큰 그림의 숨겨진 의도를 알기 위해, 8개월  극장으로 달려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배우 이정재의 염라대왕 캐스팅은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신의 한 수임이 분명하다. 감독 입장에선, 영화의 숨겨진 주인공이자 지옥 재판의 설계자인 염라대왕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우정출연이라는 김용화 감독의 낚시질에 제대로 낚인 게 분명하긴 하지만, 아마도 시나리오를 읽어 본 배우 이정재도, 염라대왕이 중요한 인물이자, 숨겨진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공감했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정출연으로 30회 차나 촬영하고, 홍보에까지 적극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감독의 낚시 실력 덕분이든, 배우의 의리 덕분이든, 작품의 의도와 캐릭터에 공감하며 스텝과 배우가 공들여 함께 만든 작품은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며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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