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테나 Dec 17. 2017

잘 만든 액션 블록버스터! 그러나 아쉬운...

영화 <강철비> 리뷰

 2013년 개봉했던 영화 <변호인>은, 돈 버는 데만 관심이 있던 세법 전문 변호사 송우석이, 간첩 누명을 쓴 단골 국밥집 아들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그동안 몰랐던 대한민국의 폭압적 현실에 눈 뜨고, 헌법 속 국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인권 변호사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을 전 국민들에게 인상 깊게 알리며,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뚝심 있는 질문을 함으로써, 천만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데 성공했다. 그 영화를 만들었던 양우석 감독이, 이번엔 영화적으로 그 성격이 매우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 <강철비>를 들고 나왔다.


 영화 <변호인>이 송우석이라는 변호사의 캐릭터 중심, 저예산 법정 영화라면, <강철비>는 '핵을 가지고 있는 북한에서 만일 쿠데타가 일어난다면?'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기반으로 한, 사건 중심의 블록버스터 첩보 액션 영화다. 영화 제목 '강철비(Steel Rain)'는 하늘에서 미사일이 비처럼 내린다는 클러스터형 미사일의 별명이자,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북한 1호를 모시는 엄철우(정우성)와 남한 1호를 모시는 곽철우(곽도원)의 이름에 '철우(鐵雨/Steel Rain)'라는 이름이 공통으로 사용되면서, 영화적으로도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이 된다. 작가이자 감독인 양우석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남북한 주인공의 이름이 같은 것은 남과 북의 민족적 동질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에 그 이름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의미는 민족적 동질감 자체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대량살상 무기를 상징하는 '철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과 북의 두 사람이 결국 한반도의 핵전쟁을 막아 낸다는 이야기 내용이, 영화 결말에 드러나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남북의 마지막 협상 결과와 결국엔 같은 의미로 겹쳐지기 때문이다.



 <강철비>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많은 미사일이 쏟아지고 기관총이 난사되며, 전쟁 같은 상황들이 곳곳에서 벌어지며, 목숨을 건, 다양한 액션, 추격, 결투 장면들이 펼쳐진다. 갑자기 가해지는 빠른 공격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업치락뒤치락하는 공격과 방어에 긴장감이 느껴지며, 액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배우 정우성과 조우진이 벌이는 북한 최정예 요원 간의 목숨을 건 혈투는 매우 치열하다. 어떻게든 뿌리치며 도망치는 정우성을 다시 찾아내 위협을 가하고, 목숨을 잃을 듯한 위기에도 의연하게 응급 처치하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혈투를 벌이는 조우진의 끈질김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또, 중반, 북 철우와 남 철우가 농담을 주고받는 차 안 이동 씬에서는 아재 유머가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짓게도 하고, G.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신나게 부르는 곽철우(곽도원)의 모습과 그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엄철우(정우성)의 표정은 영화 속에서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장면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에 조금은 생기 발랄함을 불어넣어주는 완급조절용으로 적절했다 생각한다. 또 영화 중. 후반부에는 (조금은 예상되는) 반전도 마련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이 모든 영화의 바탕에는 두 배우, 정우성과 곽도원의 열연이 있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배우 정우성에게선 연륜이 묻어나는 디테일한 표정들과 중년의 나이를 느끼게 해주는 친근한 눈가 주름이 이제는 인간적인 매력을 장착한 안정감이 들었다. 솔직히 그가 더 젊었을 땐, 잘생기기만 한 외모에, 목소리 톤도 낯설어서 뭔가 비현실적 느낌이 강한 배우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목소리는 익숙해졌고, 잘생긴 외모에 인간미가 생겨나면서 현실적 느낌을 주는 더 친근한 배우로 탈피한 것 같아 반가웠다. 이런 그의 친근한 모습에, 목숨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충직한 극 중 성격과, 탁월한 액션 능력이 더해지면서, 영화 속 인물 엄철우의 매력이 살아나게 된다.  


 청와대 안보수석 곽철우를 연기한 배우 곽도원은 <변호인>의 송강호처럼, 역할의 진지함과 유머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송강호보다는 조금 더 우직한 느낌이 있어, 이 영화에서 청와대 안보수석 역할로 적격이었다. 그는 영화의 정서적 균형감을 조율하고 주제적 장면을 도출해내는, 이 영화 속 메인 주인공으로, 엄철우와 함께 북한 1호를 지키는 일과, 중국, 미국 첩보원들과 정보를 교류하며, 우리나라 정치권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등,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한, 핵전쟁의 다양한 양상이 그를 통해 드러나며 실질적으로 극을 이끄는 주인공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정우성과 곽도원이라는 믿음직한 배우들이 아무리 좋은 연기로 이야기를 안정되게 이끌어 가도,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정서의 부족함은 매우 아쉬운 지점이다. 감독이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위해 배치한 것이 분명한, 엄철우 가족과 식사하는 장면은 다정한 아빠로서 캐릭터의 매력이 느껴지기보다, G.드래곤 노래를 듣는 딸을 나중에 기억하기 위한 기능적 에피소드 정도로 느껴지고, 곽철우와 엄철우가 서로를 같은 편이라고 조금은 믿게 되는 잔치국수 먹방은, 재미있긴 하지만 두 인물 간의 정서적 교감은 잘 인지되지 않는다. 또, 영화 프롤로그에서 곽철우를 소개하며 자신의 아이들과 패스트푸드를 먹는 장면 역시도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아빠의 애틋함은 없이, 그저 대선 개표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이혼남 곽철우가 청와대 사람이라는 정보 전달에만 그치고 있어 많이 아쉽다.


 아마도  양우석 감독은 영화의 정서가 과잉되어 신파적 느낌으로 다가가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하면서 인물의 정서를 너무 억압시켰거나, 머리 속에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정서적 섬세함은 놓쳐버렸던 게 아닐까 싶다. 영화 초중반에 긴밀하지 못하거나 필요 없는 설정들은 삭제하고, 인물의 작은 표정 하나, 정서적 느낌의 인서트 하나를 잘 살려 냈다면, 영화의 정서적 몰입감은 높이면서도 러닝타임을 단축시키며 극적 긴장감을 더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정서적 장면들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이야기의 주제가 명확하게 표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분단 상황과 한반도 핵전쟁의 위험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미국, 일본의 숨겨진 속마음이 드러나고, 이런 위기 상황이 일어난 원인을 정리해 주는 듯한 인상적인 대사가 등장한다.


분단국가 국민들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더 고통받는다.


 이 대사는 남한의 곽철우가 먼저 한 말로, 영화 결말부에 핵전쟁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엄철우의 마지막 대사에서 다시 반복되면서, 감독이 <변호인>에서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을 내세웠던 것처럼, 영화적 주제의식을 쉽게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양상은 조금 다르다. <변호인>에서는 중심이 되는 헌법 1조 2항 자체가 제대로 부각될 수 있는 핵심 갈등 구조를 바탕에 갖고 있었던 반면, <강철비>에서는, 주제를 전면에 드러낸 말속에,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핵심 갈등 구조와 연계되지 못하고 모호하게 전달되는 차이가 생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변호인>의 경우, 국가가 한 청년에게 간첩의 누명을 씌워 민주화 운동을 못하도록 억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변호사가 국민무시하고  핍박하는 정치, 사법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 주권을 상기시키는 헌법 1조 2항은 이 싸움의 절대적 근거가 되어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고 강렬한 흡입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구심점, 핵심이 된다.


 하지만 <강철비>의 경우 '분단을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이 이야기 구조 속에서 명확하지 않다. 북쪽으로 보면, 인민의 희생으로 만들어낸 핵폭탄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하는 북한 1호가 언급되지만 영화 속에선 그런 모습이 생략되어 있고, 오히려 전쟁을 일으켜 주한미군을 볼모로 잡고 미국을 협박 하겠다는 쿠데타 세력이 그 대상으로 생각해 볼수 있는데, 그럼 지금껏 북한 국민에게 가해진 고통의 주체와 달라지기 때문에 뭔가 맞지 않다. 또, 남쪽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정권 유지를 희망하는 정치 세력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상에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의 위기 상황을 만들거나 악화시키는 우리나라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은 그 판단이 다르지만,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의 차이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럼, 좀 더 범위를 넓게 생각해서 그 대상을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이라 생각해 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그 이해득실이 너무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직접 연결시키기 어려울 정도이다. 만일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의 대상이 미국이나 중국으로 상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그들이 한반도의 분단과 그 전쟁으로 얻게 되는 이득에 대해,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에피소드나, 갈등 구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영화는 분단 상황에 대한 다양한 사실을 균등하게 열거할 뿐 어느 한쪽이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두지 않았다. 한마디로, 주장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게 설명되거나 뒷받침되지 않은 채, 이야기의 핵심 주장만 전면에 대놓고 이야기하는 듯한 위의 대사는, 영화적 클라이맥스에서 겉도는 느낌이 되어 그 울림이 반감되고 만다.  



 솔직히 상업영화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강철비>는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첩보 액션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와 주제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적 관점에서 본다면, 정서적 표현과 주제 발현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 슬쩍 드러나는, 남과 북이 핵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해결법은, 큰 문제를 너무 고민 없이 결정하고 쉽게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그 과격함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핵전쟁이라는 매우 큰 사건과, 정치역사적 거대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화적 스케일에 비해 그 강렬함이 크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일 것이다.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분단과 통일에 대한 다양한 생각에 작은 단초를 던져 줄 수는 있겠지만, 보다 깊이 있는 생각의 담론을 우직하게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점은, 정치역사적 주제 의식이 살아 있는,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가 탄생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많이 안타깝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 차별의 사회적 은밀함을 고발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