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향과 무향 사이에서

by Ben Frost

며칠 전 손을 대고 샴푸의 펌프를 누르던 중 찔끔 배어나오고는, 연거푸 누르는 나의 다급함에 응답하지 않음을 보고 한숨을 내쉬고 남편 용으로 둔 다른 샴푸의 펌프를 꾹 눌러 나오는 샴푸로 머리를 감았다.


그날 하루동안 앉았다 일어설 때, 이쪽 방향에서 저쪽 방향으로 고개나 몸을 틀 때, 하루 종일 샴푸의 향이 나를 따라다녔다. 향이 독하거나 아주 향기롭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무향만 고집하던 나에게는 이질감이 큰 향이었다.


향수는 물론 샴푸, 핸드크림, 립밤 등 거의 매일같이 사용하게 되는 일상 제품들은 기호에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쓰는 순간부터 하루 종일까지 따라다닐 수 있는 향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적으로 향이 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편이지만, 꼭 직업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같은 직업에 있는 사람이라도 향수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경우가 꽤 있는지라 취향 탓이 크구나 싶다. 다만 나는 임신·출산 이후 냄새에 좀 더 예민해지면서 그전엔 용납하던 수준의 향들조차 거부감이 상당한 편이다.


그렇다 보니 오랜만에 향이 배어 있는 샴푸를 쓰고 나서 하루 종일 그 향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을 한 번씩 눈살을 찌푸리며, 집에 도착 후 즉시 기존 샴푸를 샤워부스에 가져다놓아야지 하고 결심하는 하루를 보낸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한편 나의 직장에 들어설 때 늘 감도는 냄새가 있다. 이곳이 어딘지를 알려주는 상징 같은 냄새인데, 1년 정도 일을 쉬고 다시 출근하던 첫날 로비에서 이 냄새를 맡고 마음 한구석에 안심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와는 정반대의 거부감을 더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교보문고에서 서점 특유의 맴도는 향을 담아 방향제를 출시했을 때,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혁신적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다. 냄새는 단순히 기억을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억에 포함된 감정까지 끌고 와 긍정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서점 특유의 공간에 대한 긍정이 강한 사람에겐 참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렸을 때는 베이커리 앞을 한 번에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빵 냄새를 좋아했다. 당장 살 것은 아니면서도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만들었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개인 카페에서 진하게 맴도는 원두 향을 좋아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그 향을 함께 들이마시면 몸도 마음도 함께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거부할 수 없는 향이라 하면 역시 치킨일 듯하다. 텅 빈 엘리베이터 안에 막 배달하고 난 듯한 양념치킨 잔향은 주문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치명적인 향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도 영상과 소리는 송출되지만 냄새까지는 송출될 수 없는 미디어 환경이 아쉽다. 앞선 두 가지와는 다른 개념의 원리가 들어가야 해서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은 바 있지만, 내가 훌쩍 크고 성인이 될 때까지도 그 기술의 구현이 요원할 것이라 생각지는 못했다. 오감이라는 말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후각의 충족이 필요한데, 적어도 일반적인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것은 아직이다.


나는 쓰는 제품들은 무향을 고집하고 실제로도 무향을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냄새가 갖는 힘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기억에 미치는 영향, 공간을 특정하는 상징,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거나 구매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힘, 진정한 오감을 위해 필요한 한 가지 요소인 것까지 말이다.


새삼 시향 테스트를 해서 꼼꼼히 향을 골라 자신에게 풍기는 향을 고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는 그깟 향수, 안 뿌리면 그만이지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런 냄새가 갖는 힘을 안다면 쉽사리 에이 하고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기억될 수 있는 뭇 요소 중 하나이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라면 그 위상이 남다른 것은 분명 맞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처럼 체질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개인 위생에 신경 쓰고, 의복을 정갈하게 하고, 태도와 마음에 여유를 갖는 일 정도가 전부이려나. 남긴 자리가 곧 당신의 얼굴이라고 써붙여 있던 휴게소 화장실의 문구가 일리가 있었음을 깨달으며 웃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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