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와 눈물의 상관관계

by Ben Frost

“미역국 끓여놓을까?”


몇 주 연속, 주말의 끝 무렵에 남편이 물어봐왔다. 아니,라고 몇 번 거절하다가 지난 주말에는 일부러 끓여달라고 부탁했다. 주중에 저녁을 부실하게 먹는 나를 마음 쓰여하는 것을 알기에 이번 주는 좀 잘 챙겨 먹어보리라 다짐하면서.


간을 거의 하지 않은 슴슴하고 국물보다 건더기가 가득한 소고기미역국은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이다. 오죽하면 가장 마음이 편해야 하는 수능날 아침에도 엄마에게 일부러 부탁해서 미역국을 먹고 갔을 정도로. 하지만 아이를 낳고 2주간 조리원에서 매일 먹고, 집에 와서까지 한동안 챙겨 먹은 이후에 나는 미역국에 조금 질린 상태였다. 눈앞에 있으면 아주 잘 먹지만 생각으로는 잘 내키지 않는달까.


그리하여 아주 오랜만에 먹게 된 미역국이었다. 먹다 보면 한 냄비를 다 먹어버릴까 봐 하루 저녁을 먹고, 이틀 후였던 어제저녁에도 허기가 느껴지자마자 바로 끓여서 허겁지겁 먹었다. 이후에도 몇 가지 더 주워 먹고 아이를 씻겨서 함께 잠들었는데 자정 무렵, 잠깐 눈이 떠져서 몇 시간 사이에 밀려 있던 카톡방을 포함한 알림 들을 살펴보고서 이제 자볼까 싶을 즈음부터 미슥거림이 올라왔다.


누웠다가 도무지 반듯이 누워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은 속 답답함에 일어나서 베개를 등 뒤에 대고 기대어 눈을 붙여볼까 했지만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쉬이 잠이 들지 않아 결국 그로부터 1시간 뒤쯤 방문을 살짝 열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갑작스럽게 북받치는 느낌이 들어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서 속을 게워냈다. 그렇게 나는 무려 8시간 전에 먹었던 미역국을 다시 보았다. 조금 속이 낫나 싶었지만 그대로 누울 수는 없어서 남편은 방에 들여보내고 나는 거실에서 기대어 쪽잠을 청했다. 그리고 출근 준비를 하러 일어났던 새벽에 한 번 더 형체가 아직 살아 있는 미역국을 게워내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구토를 하면서 나는 눈물은 생리적 눈물이라고 한다. 구토를 할 때 자극되는 신경으로 인해 동시다발적으로 눈물이 나오게 되는 건데, 머리로는 의도하지 않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여 내는 눈물이란 점이 흥미롭다. 그와 같이 슬퍼서가 아니라 마음 어딘가가 자극이 되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밀려올 때. 말 한마디 떼기 어려울 정도의 분노가 차오를 때 나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는 편이다.


슬픔에 겨워 내는 눈물과 달리 두 가지 모두 나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과 둘 다 무언가를 쏟아내는 시점에 나온다는 것이 공통점인 듯하다. 동시에 내 마음속 상처를 파내거나 상처를 준 이를 끊어낼 때가 구토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어렸을 적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았다. 학년만 달라져도 못 보는 친구들이 수십 명이었으나 같은 학교에 있는 한 이래저래 지나치면서라도 볼 수 있으니 그때까진 그리 살다가 학교가 달라지는 것과 지역이 달라지는 경험을 연이어하다 보니 지나가는 인연들이 존재하고 그 수가 상당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습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지나가는 인연과 다르게, 끊어내는 인연은 그 과정이 자연스럽지도 않고 후유증도 상당하게 됨을 또한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알고 보니 뒤에서 나를 깎아내리는 무리를 만들어 모임 이름까지 만드는 정성을 가졌던 친구들이나, 친하게 지냈지만 뒷마무리가 어떤 이유로든 좋지 않았던 선후배나 교수님이나, 자기 형제를 지키겠다고 나에게 폭언을 아끼지 않은 친척들까지.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씁쓸한 인연들은 쉬이 흘러가는 것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파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안고 살아가기엔 너무 아프고 버겁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스트레스로 위의 운동이 멈추고 그대로 위에 몇 시간 동안 고여 있다가 결국 내려가길 거부하고 나의 잠을 깨워 화장실에 달려가 게워내게 만들었던 토사물처럼, 말이다.


그 과정에서 짙게 배어 나오는 생리적 눈물 같은 존재의 아쉬움과 후회, 속상함과 같은 감정들 역시 흘려보내야 그 끊어짐의 과정이 마쳐지는 듯하다. 물론 그 과정이 단번에 되는 경우는 잘 없다. 수일, 수주, 수년이 걸리고 마음속에선 끊어냈지만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시간이 더 질질 끌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내 몸에 맞지 않다 여겨 굳이 그것을 위로 올린 나의 위처럼, 때론 단호하게 나 역시도 내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지고 있으면 고여서 썩어가는 부패함 속에서 유독가스만 방출할 뿐인 것을, 내보내는 것이 여러모로 나에게 유익함을 새삼 상기시켜 본다.


아무래도 당분간 미역국은 못 먹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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