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

2025.02.01

by Diana H

나는 어릴 때부터 철저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명문 사립 초등학교,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학교 예원학교, 서울예고 중퇴 후 미국 동부에 위치한 보딩스쿨, 그리고 미국 명문 대학과 대학원까지. 초등학교 5학년 입시부터 중·고등학교, 보딩스쿨, 대학, 대학원, 로스쿨 입시까지, 아마 나만큼 많은 입시를 겪어본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외동딸로 자라 부모님의 자랑이 되고 싶었던 마음도 컸고,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이루고야 마는 성향 덕분에 입시라는 시스템은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입시의 전쟁’을 치르고도 나는 여전히 박사 공부를 꿈꾼다. 하지만 지금 나는 15개월 된 딸을 키우고 있고, 적어도 36개월까지는 가정 보육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그래서 해외 박사 학위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이 바뀌었다. 학교에 들어가 다시 시간을 쓰기보다는, 세상 속에서 나의 장점을 살리고—심지어 애써 드러내지 않아도 스스로 돈을 벌고 시간을 확보하는 능력이 더욱 큰 가치가 된 시대다. 돈과 시간의 자유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공통된 목표다.


2018년 5월, 10년간의 뉴욕 생활—공부, 취업, 그리고 갤러리스트의 삶—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가족 사업을 배우려 했지만, 예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2019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한국 미술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뉴욕과 서울의 미술계에 몸담은 시간만 벌써 9년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슈퍼 워킹맘들을 보며 진심으로 존경했고, 동시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많이 울고 흔들렸다.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과, 하나뿐인 나의 아이가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사실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했다. 남편과 가족 모두 “지금은 아이를 함께 지켜주는 시기”라는 데 의견이 같았고, 그래서 나 역시 아이가 24개월이 될 때까지는 아이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30대 중반이다. 회사에 다니며 세상의 흐름을 읽고, 성숙함이 깃든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아이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언제든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너무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결심하면 곧바로 행동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퇴사했고, 나의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집에서 쉬는 삶은 나와 맞지 않는다. 남편은 “왜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이 힘드냐”고 genuinely 궁금해하지만, 나는 임신 때도 매일 남산을 오르며 자격증 공부를 해서 미술심리·노인미술·아동미술심리 자격증을 땄고, 매일 집을 정리하고 청소했다. 몸을 움직여야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쉬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른다.


한글도 모르고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한 유일한 학생이었지만, 공부와 예체능 모두 최상위권이었으며 늘 회장단을 맡았다. 예원에서는 3년 내내 회장을 했고, 입학 시험은 수석이었다. 뉴욕 보딩스쿨에서는 영어 단어조차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 첫 몇 달을 눈물겨울 정도로 힘들게 보냈다. 최상위권만 유지하던 내가 처음으로 B-라는 성적을 받았고, 매일 선생님을 찾아가 모르는 것을 물으며 다시 성적을 올렸다. 결국 10학년 때 바로 Summa Cum Laude에 선정되며 학업적 성취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때부터인지, 어떤 분야에서든 ‘하나쯤은 꼭 1등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운동도 그렇게 혼자 꾸준히 시작했다. 영어는 못해도 어릴때 휘겨 스케이트 선수도 했던 내가 얘들을 이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9학년 biology 첫 시험에서 경험한 좌절도, 극도로 싫어하는 곤충 채집 과제로 A+를 받아내며 뒤집었다. 무엇이든 내가 마음을 다하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그때 얻었다. 나의 회복 탄성력은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 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학교 때는 오히려 학업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뉴욕 곳곳의 전시를 보고 아이 쇼핑을 좋아해 백화점을 돌며 나만의 세계를 넓히는 데 더 집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말 재미있는 건, 초·중·고 시절 나를 알던 친구들은 내가 성실하고 독하고 리더십 있기에 모든지 해내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대학생 이후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내가 약간 바보같고 굉장히 여유 넘치고 다 잘 모르고 공부도 대충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날 진짜 아는 사람들은 내가 말투가 느려서 그렇지 한다면 해내는 성격을 안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는,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중요하다고 선택한 것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여기서 멈추기엔 내 삶이 너무 아깝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때, 무엇인가를 성취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사귀면 이 사람이 필요한 것을 주고 싶어 생각해보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면 어떻게서든 도와주려고 방법을 찾아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나 일이 생기면 너무나 설레서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 회사원으로의 복귀는 당장은 어렵지만, 나의 비즈니스를 만들고 잘 운영하고 싶다. 다행히 지금 시대는, 한 사람의 전문성과 이야기로 다양한 ‘콘텐츠를 창조하는 사람’이 빛날 수 있는 시대아닌가. 그런 '나만의 커리어'를 좀 더 구체화해서 시작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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