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는 집에서 노는 엄마다.
나는 집에서 노는 엄마다.
다른 일하는 엄마들처럼 직장에서 인정받고, 프로젝트를 따내고, 팀을 이끌며 일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말 그대로 집에 있는 엄마다.
나도 한때는 커리어가 있었다.
딸을 갖기 직전 한 번의 유산을 겪었고, 그 경험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다시 임신했을 때에는 작은 말에도 불안해졌다. 그럼에도 회사 일은 중요했고 재미있었다. 가능하다면 예전처럼 일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아기가 조금 아래에서 자라고 있어요. 최대한 누워 계세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임신한 채 매일 남산을 오르던 나에게 “누워 있으라”는 처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경부 길이는 늘 안전했지만, 움직임은 제한되어야 했다.
나는 원래 가만히 있는 것을 어려워한다. 학창 시절부터 항상 몸을 움직였고, 전공도 연습 시간이 짧다는 이유로 성악을 택했을 만큼 성향이 분명했다. 공부할 때도 오래 앉아 있지 못했고, 운동도 강도가 있는 것을 선호했다. 그런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몸이 무거워져도 집안을 정리하고 세탁기를 몇 번씩 돌리는 나를 보며 남편은 속상해하고 답답해했다. 청소 이모님이 계셔도 내가 해야할부분이 있다고 말을 해도 남편은 내가 정말 안정만 취하길 바랬다...
뉴욕에서든 서울에서든 걷고 움직이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 이 변화는 큰 제약이었다. 그럼에도 누워 있었다. 이 아이를 진심으로 원했고, 유산의 기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리어는 잠시 멈추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출산 전 회사에 복직 의사를 전했고, 회사가 집 근처로 이전한 터라 기대도 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나는 회복과 모유수유에 집중했다. 제왕절개로 낳았기에 모유수유만큼은 꼭 해주고 싶었다. 모유수유는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나에게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나는 비교적 모유가 잘 나왔고, 술을 마시지 않았으며 음식도 큰 제약 없이 관리할 수 있었다. 밤잠이 부족해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를 안고 있는 순간순간이 좋았다.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어깨는 여전히 쉽게 저리고, 유축을 해야 할 때는 현실감이 밀려왔다. (해본 사람은 안다, 30분의 그 느낌을.) 가슴 모양이 변한 것은 속상했지만,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컸다. 그래서 10개월간 지속할 수 있었다.
아이의 돌이 다가오면 복직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회사가 종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임신·출산·육아휴직 사이에서 내 커리어는 끊어졌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워킹맘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나는 나만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