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까르띠에 - 헤리티지에서 문화로 (4)

마무리하며...

by Diana H


까르띠에가 하이 주얼러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존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근본적 이유는, 브랜드가 시대와 인간의 감정, 그리고 세계의 변화에 대해 일관된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이다. 메종을 통해 고객의 삶 속에 조용히 스며들고, 각 지역의 문화적 감수성과 호흡하며 브랜드 언어를 확장해 온 까르띠에는 결국 ‘문화 그 자체’를 다루는 브랜드로 진화했다. 그리고 이 철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바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이다.


04183_058_027D4208.jpg La Fondation Cartier à l'étroit dans son bâtiment (출처: d'architectures)


1984년 파리 몽파르나스에 설립된 재단은, 럭셔리 브랜드가 예술을 후원하는 방식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까르띠에 재단은 브랜드 서사를 예술에 투영하기보다, 시대를 구성하는 예술적 질문을 누구보다 먼저 포착하고 그 질문을 가장 순수한 형태로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왔다. 그 결과 재단은 지난 40년간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기록해 온 독보적인 민간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과 기술, 인간과 비인간, 정체성·사회·환경과 같은 주제는 재단의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축이 되었고, 이는 예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재단의 태도가 까르띠에라는 브랜드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재단이 시대보다 앞서 예술적 감수성을 탐구해 온 방식은, 까르띠에가 세계 각지의 문화적 정서와 긴밀하게 호흡하며 브랜드를 확장해 온 전략과 같은 결을 이룬다. 까르띠에는 지역의 감정선을 이해하고, 인물들의 서사를 받아들이며, 고객의 경험을 문화적 사건으로 전환하는 브랜드다. 재단은 이 질문을 한 단계 더 확장해, 예술이 시대의 감정과 세계관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지적 공간이 된다.


inkl.jpg Fondation Cartier (출처: INKL)


2020년대 중반 이후 파리가 다시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재단의 역할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생태·기후·비인간적 존재론, 탈식민주의, AI·데이터 기반 예술, 신체와 공간, 공예와 기술의 재해석은 현재 글로벌 아트씬의 가장 중요한 축이며, 이는 까르띠에 재단이 오래전부터 탐구해 온 주제들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앞으로 재단은 단순한 전시 기관이 아니라, 예술이 미래의 감수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먼저 실험하는 ‘문화적 연구소’로 기능할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까르띠에 재단이 주목할 감수성은 단순한 예술 트렌드가 아니라, 지난 40여 년간 재단이 꾸준히 탐구해 온 질문들의 연장선이다. 특히 자연과 기술, 인간과 비인간, 기억과 데이터, 재료와 공간이라는 네 가지 축은 재단의 전시 기록과 동시대 예술 담론이 만나는 접점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verticalgardenbypatrickblancatthecartierfoundationwithfloweringabutilonparismay2008photoveroniquelal.jpg Cartier Foundation, Paris (출처: Vertical Garden Patrick Blanc)


첫째, 자연과 기술의 문제는 재단 초기부터 이어져온 핵심 주제다. 1990년대의 생태학적 전시, 2000년대의 환경·도시 연구 프로젝트, 최근의 기후 변화 관련 전시는 모두 자연을 단순한 풍경이 아닌 ‘하나의 존재론적 주체’로 다루었다. 앞으로 기술이 자연의 보완재이자 위협 요소로 동시에 작동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재단은 자연과 테크놀로지가 공존하거나 충돌하는 새로운 조형 언어를 더욱 본격적으로 탐구할 것이다.


둘째, 인간과 비인간이라는 축은 국제 예술계에서 가장 빠르게 확장되는 철학적 논의이며, 까르띠에 재단은 이미 이 분야의 선도적 기관으로 자리해 왔다. 재단은 동물·식물·기계·신체·비생물적 존재들을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분리해 독립적 주체로 바라보는 접근을 지속해 왔으며, 이는 향후 더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비인간 존재를 다루는 인류학적·생태학적 전시는 재단의 정체성과 강하게 맞물린다.


셋째, 기억과 데이터의 문제는 디지털 시대 이후 재단이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테마다. 이미지, 기록, 시뮬레이션, 알고리즘이 인간의 기억 체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그리고 데이터가 세계의 새로운 언어로 기능하는 시대에 예술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재단의 미래 큐레이션에 중요한 축을 이룰 것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닌, 인간 정체성·지각·감정의 구조를 재해석하는 철학적 탐구다.


넷째, 재료와 공간은 까르띠에 재단의 물리적 건축(장 누벨의 투명한 유리 구조)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재단은 공간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다루는 설치·조각·건축적 사고를 중시해 왔고, 이는 앞으로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료의 물성, 빛과 그림자, 투명성과 반사, 관객의 움직임과 공간의 반응성 등은 재단이 가장 일찍부터 실험해 온 미학적 언어이기도 하다.


Diller_Scofidio_Renfro-024_copie.jpg Diller Scofidio + Renfro's "Musings on a Glass Box" Opens in Paris (출처: ArchDaily)


이 네 가지 축은 모두 까르띠에 재단의 40년 전시 기록과 동시대 예술이 제기해 온 결정적 질문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다시 말해, 재단이 꾸준히 탐구해 온 주제들은 예술계 내부의 흐름만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사회·과학·기술·철학 등 다양한 영역의 변화가 집약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까르띠에 재단의 전시는 언제나 “지금 여기의 예술”을 넘어, “다가올 세계의 감수성”을 먼저 보여주는 실험실로 기능해 왔다.


바로 이 점이 까르띠에가 시대를 초월한 문화적 브랜드로 남을 수 있었던 핵심 배경이다. 많은 브랜드가 헤리티지를 과거의 유산으로 보존하는 데 집중한다면, 까르띠에는 그 유산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고 미래의 감수성으로 갱신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재단이 수행해 온 큐레이션은 까르띠에가 단순히 아름다운 오브제를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변화한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지속적으로 질문해 온 브랜드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Cartier Exhibition at V&A Explores 100 Years of Iconic Jewels.jpg Cartier Exhibition at V&A Explores 100 Years of Iconic Jewels (출처: V&A)


까르띠에의 헤리티지가 시간이 축적한 장인정신과 미학적 정체성을 견고히 지켜온 힘이라면, 까르띠에 재단은 그 헤리티지가 미래로 뻗어나가는 길을 열어주는 기관이다. 재단은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변화하는 세계의 새로운 감각을 실험하고, 그 실험을 브랜드의 문화적 언어로 다시 번역한다. 즉, 전통이 정체되는 순간 브랜드는 과거가 되지만, 까르띠에는 전통을 지속적인 재해석과 미래 실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20cf8168857655.5b6bb7acad9ba.jpg Cartier Timeline (출처: Behance)


브랜드가 시간을 초월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디자인의 축적이나 상징적 로고의 힘 때문이 아니다. 까르띠에는 오래전부터 세계관을 먼저 실험하고, 그 실험을 문화적 실천으로 이어온 브랜드였다. 까르띠에 재단을 통해 축적된 이 세계관은 이후 메종의 공간, 제품의 조형성, 브랜드의 언어와 감수성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브랜드를 하나의 “미학적·문화적 생태계”로 확장했다. 결국 까르띠에는 전통과 미래, 장인정신과 실험정신, 물질적 아름다움과 개념적 탐구가 서로를 강화하는 드문 브랜드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구조—과거를 지키는 힘과 미래를 탐색하는 용기—가 까르띠에를 오늘날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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