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루이비통 재단 (2)

재단은 어떤 작가를 선택하는가

by Diana H
20741_olafur_eliasson_insidethehorizon2014installationpermanentefondat_high.jpeg 루이비통 재단 내부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은 단순히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기관이 아니라, 21세기 예술의 방향을 제시하는 문화적 플랫폼이다. 개관 이후 재단이 선택한 작가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선택 뒤에는 일관된 철학과 구조가 존재한다. 루이비통이라는 글로벌 럭셔리 하우스가 추구하는 미래 이미지, 그리고 동시대 사회가 요구하는 예술적 질문을 가장 정확하게 건드리는 작가들이 바로 이 재단의 전시장을 채운다. 이들의 큐레이션 전략은 지금까지의 전시 성과에 비추어 볼 때, 여섯 가지 선정 기준으로 해석할 수 있다.


sortiraparis.jpg 루이비통 재단의 Gerhard Richter 전시 외관 (출처: Sortiraparis)


1. 세계적 영향력(Global relevance): 국가를 넘어선 초국적 담론을 생산하는 작가

루이비통 재단은 처음부터 국제적 현대미술의 중심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기에 이들이 선택하는 작가들은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 공명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예컨대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전후 독일의 기억·사진·역사 서사를 회화에 담아냄으로써 유럽 전체의 역사적 질문을 확장했고, 다카시 무라카미는 일본 전통·오타쿠 문화·미국 팝 아트를 통합해 전 세계 관객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 루이비통이 선택한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경계를 넘는 감각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은 국적을 넘어 전 지구적 관객층과 소통하며, 글로벌 문화 담론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루이비통이 전 세계에 뻗은 브랜드인 만큼, 재단의 전시 또한 세계적 맥락에서 읽히는 작가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32087-PortraitdOlafurEliassondevantsonoeuvreBridgefromthefuture,2014alaFondationLouisVuitton..jpg Olafur Eliasson 과 그의 작품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2. 조형 언어의 혁신(Formal innovation): 형태·재료·감각의 실험을 선도하는 작가

루이비통 재단 건축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의 유리·금속·공간 실험은 이미 이 기관의 미학을 상징한다. 재단은 “혁신”을 브랜드 언어로 삼는 만큼, 형식적 실험과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창조하는 작가들을 선택한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과 기후, 공간과 기하학을 사용해 관람자를 적극적인 참여자로 만드는 설치작업을 선보였고, 엘스워스 켈리는 삭면과 형태를 통해 회화와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색채 구조를 구축했다. 조안 미첼 역시 감정과 기억을 제스처로 번역하며, 회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루이비통 재단의 작가들은 모두 “미래의 시각언어”를 실험하는 예술가들이다. 브랜드는 이들을 통해 전통적인 예술의 틀을 넘어,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열어간다.


83680.jpg 루이비통 재단의 Marina Abramović - Carrying the Milk 전시 일부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3. 브랜드 미학과 결합 가능한 ‘이미지 세계’(Image universe): 루이비통의 미래를 확장할 수 있는 작가

루이비통은 단순히 유명한 작가를 선택하지 않는다. 브랜드 자체가 가진 정체성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이미지 세계(image universe)를 구축한 작가에게 특별히 주목한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플랫’ 세계는 루이비통 모노그램과 결합해, 예술·패션·팝 컬처의 경계를 무너뜨린 대표적 사례다. 그의 작업은 브랜드의 팝(Pop)적·젊은(Young)·경쾌한 이미지를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리히터의 회화는 루이비통의 지적·철학적 깊이를 강화한다. 역사·기억·사진적 현실과 추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브랜드가 단순한 럭셔리를 넘어 문화적 사유의 공간임을 보여준다.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는 인간의 신체·의식·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루이비통 재단이 감각적 경험을 넘어 인간성의 본질을 고민하는 공간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재단의 작가 선정 기준에는 “브랜드의 다음 시대를 열어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핵심적으로 작동한다.


1207006-gerhard-richter-l-exposition-retrospective-evenement-en-octobre-a-la-fondation-louis-vuitton-img-8067-jpg-2.jpg 루이비통 재단의 Gerhard Richter 전시 일부 (출처: Sortiraparis)


4. 대형 설치·몰입형 전시 역량(Immersive / monumental capacity): 공간을 하나의 세계로 바꾸는 능력

루이비통 재단의 건축은 전례 없는 규모와 구조를 갖고 있다. 11개의 갤러리, 광대한 높이, 유리 돛이 만들어내는 자연광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이 공간은 작가의 공간 연출 능력을 필수 요건으로 만든다. 재단이 선택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이들이다. 엘리아슨의 설치는 관람자의 신체가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된다. 무라카미의 대형 조각과 영상, 회화는 갤러리 전체를 하나의 ‘서사적 만화경’처럼 변모시킨다. 대규모 회고전이 꾸준히 기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안 미첼, 데이비드 호크니, 엘스워스 켈리, 리히터 등은 모두 방대한 작업 세계를 가진 작가들로, 한 전시를 통해 작가의 세계 전체를 경험하는 ‘몰입형 내러티브’가 가능하다. 루이비통 재단에서 선택되는 작가들은 단순히 한두 작품이 아닌, 세계 전체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예술가들이다.


artsinthecity.jpg 루이비통 재단의 David Hockney 전시 일부(출처: Arts in the city)


5. 현대미술사적 중요성(Art-historical significance): 시대를 전환시킨 작가

루이비통 재단은 단기적 유행이나 마케팅 중심의 협업을 지양한다. 대신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작가, 새로운 질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선도하는 예술가에게 주목한다. 리히터는 회화의 가능성을 재정의한 ‘전후 미술의 거장’이며, 켈리는 색채와 형태를 통한 순수 추상의 정점을 구축했다. 조안 미첼은 여성 추상표현주의의 결정적 인물로 재평가되며, 호크니는 기술·풍경·감각을 넘나드는 70년 작업을 통해 동시대 시각 문화를 새로 구성했다. 이처럼 루이비통이 선택한 작가들은 모두 미술사의 긴 흐름 안에서 전환점을 만든 인물들이다. 재단의 전시는 단순히 작품 전시가 아니라, 예술사의 계보를 새롭게 편집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VE6rpuBaY7ivkTAMogqRaT-1200-80.jpg 루이비통 재단 외관 (출처: Wallpaper Magazine)


6. 글로벌 미술 생태계와의 연결성(Network: collections, museums, estates)

마지막 기준은 국제 미술 생태계와의 연결성이다. 루이비통 재단은 MoMA, 테이트, 퐁피두센터, 여러 공·사립 컬렉션, 그리고 작가 estate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적 규모의 전시를 조직한다. 이는 단순한 작품 대여나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미술계의 신뢰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기관만이 구축할 수 있는 네트워크 자본이다. 따라서 재단이 선택하는 작가들은 광범위한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주요 기관에서 소장·전시된 이력을 갖추며, 대형 회고전을 소화할 수 있는 국제적 위상을 지니고, 작품의 연구·복원·기록이 가능한 안정적 시스템을 갖춘 이들이다.


contents-2118.jpg 루이비통 재단 북 스토어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이 조건들은 곧 루이비통 재단이 세계 미술사와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기관임을 상징한다. 물론 이러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작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를 둘러싼 갤러리, 큐레이터, 연구자, 그리고 글로벌 컬렉터층이 형성한 견고한 지지 기반과 제도적 신뢰가 함께 구축되어야 한다. 세계적 영향력, 조형 언어의 혁신, 독자적인 이미지 세계, 공간을 장악하는 스케일, 미술사적 중요성, 그리고 국제적 네트워크. 이 여섯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작가만이 루이비통 재단의 전시에 참여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그 작가가 이미 글로벌 문화 권력의 중심에 진입했음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 기준들은 루이비통 재단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루이비통이라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고, 문화적 주도권을 재구성하는 방식이자 21세기 문화 권력이 작동하는 구조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와 예술, 그리고 문화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확장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장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루이비통 재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전시를 넘어 하나의 시대적 감각을 제시하는 기관으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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