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루이비통 재단 (3)

루이비통 재단의 신진 작가 후원 Open Space 프로그램

by Diana H

신진·중진 작가를 위한 “실험실”이자 럭셔리 하우스의 문화 전략


Fondation Louis Vuitton의 Open Space 프로그램은 루이비통 재단이 동시대 예술을 다루는 또 하나의 핵심 축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8년, 프랑스 조각가 Jean-Marie Appriou의 전시 Open Space #1을 시작으로 본격화되었다. 이후 재단은 프랭크 게리 건축 내부의 특정 공간을 ‘Open Space’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하며, 신진·중진 작가를 위한 장기적 실험 프로젝트를 매년 이어오고 있다.


REFSHEET-Fondation-Louis-Vuitton-mainimg.jpg 루이비통 재단 (출처: Mageba)


재단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Open Space는 “가장 동시대적인 표현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는 단순히 젊은 작가를 소개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오늘의 예술이 언어와 형식을 갱신하는 순간을 건축 안으로 초대하는 장치에 가깝다. 구조는 명확하다.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번호를 부여받고(Open Space #n), 재단 내 특정 공간에서 사이트 스페시픽 프로젝트를 구현한다.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작품 제작이 전제되며, 작가에게는 파리의 주요 공공 기관에서 갖는 첫 개인전이 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에 포함된 ‘Open’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사전적 의미처럼, 오픈 스페이스는 성장 단계에 있는 작가들에게 제도적 장벽을 낮추고 **‘문을 열어주는 구조’**를 상징한다. 동시에 이 ‘열림’은 물리적 개방을 넘어 개념적·심리적 조건을 포함한다. 작가가 기존의 미술사적 규범이나 시장 논리에 즉각 포섭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실험을 최대치로 구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간인 것이다. 프랭크 게리의 유기적이고 비대칭적인 건축 역시 이러한 개념을 공간적으로 번역한다. 곡선과 비정형 구조, 예측하기 어려운 동선과 빛의 흐름은 작가에게 ‘완성된 백색 큐브’가 아닌,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는 환경을 제공한다. Open Space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 건축과의 긴밀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작업 세계를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한다.


fondation-louis-vuitton-inaugural-exhibition.jpg 루이비통 재단 외관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결국 Open Space는 신진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라기보다, 동시대 예술의 잠재성과 미래성을 시험하는 실험실에 가깝다. 이곳에서 제작되고 전시되는 작업들은 루이비통 재단의 건축적·문화적 정체성과 맞물리며, 작가가 국제적 무대로 진입하는 하나의 관문으로 기능한다. 2025년 현재까지 Open Space는 #1부터 #17까지, 총 17명의 작가와 함께 그 궤적을 구축해 왔다.


49826_jean-marie_apprioulipsandears2018vuedinstallationfondationlouisv_high.jpeg Open Space #1 Jean-Marie Appriou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2025년 현재까지 Open Space는 #1부터 #17까지 총 17명의 신진 작가 전시가 이어졌다. 장-마리 아프리우(Jean-Marie Appriou)를 시작으로 맷 코프슨(Matt Copson), 안나 훌라초바(Anna Hulačová), 오엘 뒤레(Hoël Duret), 로렌 할시(Lauren Halsey), 메리엠 베나니(Meriem Bennani), 장 클라라크(Jean Claracq), 비앙카 본디(Bianca Bondi), 오즈귀르 카르(Özgür Kar), 리디아 우라흐마네(Lydia Ourahmane), 은다예 쿠아구(Ndayé Kouagou), 알렉스 아예드(Alex Ayed), 셰이 레이(Xie Lei), 루 양(Lu Yang), 포르티아 즈바바헤라(Portia Zvavahera), 타비타 레자이르(Tabita Rezaire), 야콥 쿠드스크 스텐센(Jakob Kudsk Steensen)까지 총 17명의 작가가 이 시리즈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7명의 작가가 드러내는 경향


65848_open_space_6_meriembennanimissionteens2019_high.jpeg Open Space #6 Meriem Bennani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1) 조각에서 디지털 시뮬레이션까지 — 확장된 매체

Open Space 작가들의 가장 뚜렷한 공통점은 매체의 경계를 거의 무화한다는 점이다. 아프리우의 조각은 인간·동물·식물이 뒤섞인 생명적 형상을 통해 조각을 하나의 상상적 생태계로 확장한다. 반면 베나니는 다큐멘터리, 3D 애니메이션, 리얼리티 TV의 문법을 혼합해, 글로벌 교육 시스템과 계층 문제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드러낸다. 또 다른 축에는 레자이르, 루 양, 스텐센이 있다. 이들은 영상, 사운드, 디지털 데이터, 향(香)과 공간 음향까지 동원해 비물질적 세계를 감각적 환경으로 번역한다. 이 폭넓은 스펙트럼은 루이비통 재단이 장르의 위계나 전통성을 기준으로 작가를 선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핵심은 매체가 아니라, 세계가 변화하는 방식을 예술적으로 포착하는 능력이다.


196f7f6cbe222d0dcdee94c6fd307694-2500x1875.jpg Open Space #16 Tabita Rezaire - Des/astres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2) 반복되는 주제 — 탈식민, 정체성, 영성, 생태

Open Space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네 가지로 압축된다. 탈식민성, 정체성, 영성, 그리고 생태. 이는 동시대 세계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베나니와 우라흐마네는 언어·교육·국경을 통해 작동하는 권력 구조를 탐구하고, 쿠아구는 자기 인식과 불안, 자기 검열이라는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레자이르와 루 양, 스텐센은 과학과 영성, 가상과 현실,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시각화한다. 이 주제들은 유행의 반영이 아니라, 세계의 구조적 변화를 예술이 대신 사유하는 방식이다. Open Space는 바로 그 질문이 가장 예민하게 드러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mousse magazine.jpg Open Space #14 Lu Yang “DOKU The Flow” (출처: Mousse Magazine)


3) 건축과의 상호작용 — 경험으로서의 전시

Open Space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건축이다. 작가들은 프랭크 게리의 건축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이자 매체로 사용한다. 루 양의 DOKU The Flow는 관람자의 동선과 빛의 반사를 계산해 설계된 다채널 비디오 환경이며, 즈바바헤라는 갤러리 전체를 17미터 길이의 회화로 감싸며 회화를 ‘환경’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Open Space가 작품·공간·관람 경험을 하나의 예술적 사건으로 묶는 프로그램임을 보여준다. 이는 재단이 대규모 회고전에서 반복적으로 구축해 온 몰입형 큐레이션 전략과도 일관된다.


59108_hoel_duret_nft_ph7logique2019_high.jpeg Open Space #4 Hoël Duret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결국 Open Space는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을 넘어, 루이비통이 미래의 미학을 예측하고 실험하는 문화적 플랫폼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재단은 동시대 예술의 가장 민감한 신호를 포착하고, 그 실험을 브랜드의 문화적 정체성 속으로 끌어들인다. Open Space는 지금 이 시대에 예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미래와 함께 럭셔리 하우스가 어떤 문화를 지향하는지를 드러내는 ‘열린 지도(open atlas)’와도 같은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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