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Space 작가 - 1
루이비통 재단의 Open Space 프로그램은 2018년 장-마리 아프리우(Jean-Marie Appriou)의 전시로 문을 열었다. 재단이 첫 번째 작가로 그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빼로땅 (Perrotin Gallery) 소속의 아프리우는 전통적 조각 재료와 현대적 감각, 신화적 상상력과 산업적 물성을 동시에 다루며, 조각이라는 오래된 매체를 동시대적 언어로 새롭게 번역해온 작가다. 오픈 스페이스 프로그램이 ‘열린 공간’이라는 이름처럼, 특정한 미학적 규범이나 제도적 기준을 작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루이비통 재단은 이 프로그램을 ‘동시대 표현을 위한 실험실’로 규정하며, 건축의 일부를 작가에게 통째로 내어준다. 그 실험을 첫 번째로 수행한 인물이 바로 아프리우였다.
1986년 프랑스 브레스트에서 태어난 아프리우는 현재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알루미늄·유리·브론즈 등 산업 재료를 비정통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조각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성장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조형 감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와 연극 무대 연출가였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을 자주 방문했고, 코스튬 디자인과 무대적 상상력에 일찍 노출되었다. 전통적인 조각 기법을 충실히 학습한 이후, 그는 재료의 가열·성형·주조 과정을 장인적 감각으로 변형하며, ‘연금술적(alchemic)’이라 부를 만한 조형 실험을 지속해 왔다. 그의 조각은 인간·동물·식물의 경계를 허무는 혼종적 존재들을 서사적으로 제시한다. 팔은 날개로 변형되고, 귀는 잎사귀처럼 펼쳐지며, 입술은 배의 선체와 이어져 새로운 생명체를 암시한다. 이러한 형상들은 이집트 신화, 중세 조각, 프리라파엘파 회화, SF 서사, 만화적 상상력 등 다양한 문화적 기원을 품고 있으나, 어느 하나의 계보로 환원되지 않는다. 아프리우의 조각은 특정한 시대나 분류에 귀속되기를 거부하며, 마치 시간의 경계를 떠도는 존재들처럼 현재와 과거, 신화와 미래를 동시에 점유한다.
재단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Open Space #1을 위해 제작된 대표작 〈Lips and Ears〉(2018)은 이러한 아프리우의 미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검은빛 알루미늄으로 주조된 두 개의 머리는 배 위에 얹혀 있으며, 마치 비밀을 나누듯 서로에게 기울어 있다. 얼굴은 구체적 인물이나 감정을 보여주지 않고, 익명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는다. 입술과 귀라는 신체의 감각 기관이 강조된 구도는, 소통·전승·이동 같은 인간의 근원적 행위를 상징한다. 동시에 배라는 오브제는 ‘건너감’의 상징이며, 루이비통이 브랜드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소환해 온 여행·이동·서사적 상상력과 직접적으로 겹친다. 재단은 이 작품을 “시간을 벗어난 초상”이라 설명하며, 주변 공간에 “신비롭고 공기처럼 스며드는 존재감을 부여한다”라고 평가했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과 아프리우의 조각이 만났을 때 생기는 긴장감은 Open Space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장면이다. 게리의 건축은 유리와 금속이 겹겹이 쌓인 기억의 구조물처럼 보이며, 바람·빛·움직임에 반응하는 유동성을 갖는다. 아프리우의 조각은 반대로, 고대 제의 조각을 떠올리게 하는 원시적인 기운과 중금속 재료의 물리적 무게감이 특징이다. 이 둘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감각은, 루이비통 재단이 전시 공간을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조각적 환경’으로 읽어내도록 한다. Open Space #1은 건축—조각—관람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의하며, 재단이 향후 진행할 16개의 프로젝트의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루이비통이 첫 사례로 아프리우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장인정신(savoir-faire)과 재료 실험을 결합하는 드문 유형의 조각가다.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그의 태도는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 자체의 언어를 닮았다. 둘째, 그는 신화·자연·대중문화가 교차하는 서사를 구축하는 작가이며, 이는 루이비통이 패션·여행·삶의 방식 전체를 포괄하는 ‘세계 구축 브랜드(world-building brand)’로 이동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셋째, 그의 조각은 건축적 공간을 하나의 생명체처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이는 재단이 Open Space를 통해 실험하고자 한 핵심적 조건—“작품이 아니라, 경험을 전시하는 전시”—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마지막으로, 그는 젊은 작가이지만 이미 국제적으로 검증된 기관 전시·비엔날레·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신뢰도 높은 경력을 갖고 있기에, 신생 프로그램의 첫 주자로 이상적인 위치에 있었다.
아프리우의 전시는 이후 Open Space 작가들이 보여준 경향—디지털 정체성(루양), 탈식민 담론(베나니), 환경·생태적 사고(스텐센), 영적·우주적 상상력(레자이르)—을 미리 예시한 프로젝트다. 즉, 그는 단순한 첫 번째 참여자가 아니라, Open Space라는 프로그램의 DNA를 설계한 인물이었다. 루이비통 재단이 조각·영상·디지털·회화·퍼포먼스가 뒤섞인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건축적 실험’의 장 속에 배치하는 이유는, 브랜드의 미래 감각과 직결된다. Open Space는 미래의 관객, 미래의 시장, 미래의 미학을 탐구하는 기관의 실험실이며, 그 문을 처음 연 사람이 바로 장-마리 아프리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