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루이비통 재단 (5)

Open space #2

by Diana H

루이비통 재단의 Open Space 프로그램은 2018년 시작된 이후, 매해 한 명의 젊은 작가에게 프랭크 게리의 건축을 실험의 장으로 열어 왔다. 이 공간은 거대한 회랑도, 독립된 전시실도 아니다. 건축 내부의 틈과 굴곡, 빛이 스며드는 유리막과 어둠이 쌓이는 깊은 코너들이 하나의 장치가 되어, 작가에게 완전히 새로운 스케일과 감각을 제공하는 특별한 장소다. Open Space는 그 구조적 특성 때문에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적인 장르만으로는 온전히 채울 수 없다. 이곳은 감각, 빛, 소리, 움직임이 만나야 비로소 살아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두 번째 Open Space를 맡은 작가가 맷 코프슨(Matt Copson)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이 공간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감정적·서사적 환경으로 확장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젊은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matt-copson-1706714351294.jpg Matt Copson (출처: Cultured Magazine)


1992년 영국에서 태어난 코프슨은 런던 슬레이드 미술대학에서 수학했지만, 그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보다 연극·오페라·실험음악에 더 가까운 감각을 지닌 작가로 성장했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형식으로 단정되기 어렵다. 레이저, 조명, 사운드, 애니메이션, 내레이션, 만화적 캐릭터, 그리고 공간의 움직임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연극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가 반복해서 다루는 감정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낯설지 않다. 죄의식, 자기 의심, 불안, 우스꽝스러운 자기 연민 등 코프슨은 이 감정들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고, 이를 빛의 궤적과 목소리의 진동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하나의 무대이자,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심리적 환경이다.


루이비통 재단에서 코프슨이 만든 전시는 마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연극 같았다. 관람자는 처음부터 시각적 정보를 거의 얻지 못한다. 건축 전체가 낮 동안의 밝음을 잃고, 그림자가 깊게 내려앉은 뒤에야 코프슨의 언어가 등장한다.


52704_matt_copson_blorange2018_high.jpeg Open Space #2 Matt Copson 작품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그 언어의 첫 번째 요소는 레이저다. 그 빛은 단순히 벽을 스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 있는 드로잉처럼 움직인다. 어떤 순간에는 동물처럼 보이고, 어떤 순간에는 얼굴 같기도 하며, 또 다른 순간에는 분명히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는 착각을 준다. 그 불안한 시선은 코프슨 작업의 핵심이다. 그는 “관람자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관람자를 바라보는 경험”을 설계한다.


두 번째 요소는 목소리와 사운드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누군가의 고백 같기도 하고, 혹은 내면의 불안을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너무 솔직해서 불편할 만큼 직접적이다. 이 목소리는 공간의 형태와 만나면서 메아리처럼 퍼지고, 관람자 주변을 감싸며 관람객 또한 작품의 일부가 된다.


세 번째 요소는 동선이다. 코프슨은 관람자가 어디에서 들어와 어디로 나가는지까지 계산해 감정을 설계한다. 직선으로 걷는 순간과 방향을 잃고 빙글 도는 순간이 교차하며, 관람자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잊는다. 이때 건축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통로가 된다.


10-Age-Of-Coming-scaled.jpg Matt Copson 작업 (출처: CURA Magazine)


코프슨은 젊지만, 그가 다루는 정서는 매우 시대적이다. 불확실성, 자기 인식, 불안정한 유머. 이것은 오늘의 세계가 가진 감정의 원형이다. 그는 SNS 이후의 세대가 겪는 과잉 노출과 과잉 자기 검열, 자기 자신을 부풀리고 축소하며 살아가는 모순적 감정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특히 그의 만화적 동물 캐릭터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내면을 대리하는 가면 같은 존재다. 귀엽지만 불길하고, 유머러스하지만 어딘가 비극적인 양가성은 현대인의 정서를 정교하게 반영한다. 그렇기에 코프슨의 작업을 처음 보는 관람자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즉각적인 친숙함을 느낀다.


20220506174901.jpg OBITUARY. MATT COPSON 작품 (출처: Centro de Arte Dos de Mayo)


Open Space 프로그램은 루이비통이 '예술을 후원한다'는 상징적 제스처가 아니다. 이것은 브랜드가 미래의 감각적 언어를 탐색하는 연구소에 가깝다. 코프슨이 선택된 이유는 총 네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 루이비통은 패션을 넘어 시각·촉각·청각을 아우르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브랜드다. 코프슨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감각의 조율을 다채로우면서도 동시대적 예술 언어로 실현한다. 이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는 오픈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미술 작품 자체로만이 아닌, 건축학적 요소도 잘 이해하는 작품이 건축과 작품이 잘 어우러지게끔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만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코프슨은 건축을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기계’로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재단은 지금 시대가 품고 있는 불안과 욕망, 희망의 초상을 예술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를 찾았는데, 코프슨은 그 언어를 가장 예리하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작가다. 실험적이지만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면서 동시에 본인만의 독특한 특성을 작품에 잘 녹아내여야지 Open Space가 추구하는 작가로 선정될 수 있다. 코프슨은 이미 여러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감정 세계를 구축했고, 이를 건축적 스케일로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gettyimages-2189701542-612x612.jpg Caroline Polachek and Matt Copson (출처: Gettyimages)


코프슨의 작업 세계를 더욱 독보적으로 만든 요소 중 하나는, 그가 뮤지션 캐롤라인 폴라첵 (Caroline Polachek)과 함께 구축하고 있는 독특한 창작적 파트너십이다. 폴라첵은 실험적 팝 음악의 상징적 아티스트로, 신화적 서사와 초현실적 퍼포먼스로 세계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단순한 개인적 관계를 넘어, 서로의 예술 세계를 실질적으로 확장시키는 드문 형태의 ‘장르 간 아티스트 듀오’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AB20_Matt_Copson_Sob_Story_2016_2.jpg Matt Copson deploys light and lasers to illuminate the futility of human ambition (출처: Art Basel)


코프슨이 루이비통 재단 Open Space에서 보여준 어둠·빛·목소리·동선의 구조적 실험은 폴라첵의 무대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된다. 그녀의 The Spiraling Tour 공연 비주얼을 코프슨이 연출하면서, 그의 시그니처인 레이저 드로잉은 음악의 감정선과 결합해 빛이 감정을 시각화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폴라첵의 보컬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해방의 리듬은 코프슨의 조명이 변화하는 순간과 정확히 맞물렸고,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음악과 시각예술이 서로를 해석하는 복합적 경험으로 전환되었다. 이 협업은 코프슨에게 미술관이라는 제한된 장소를 넘어, 음악·리듬·시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다루게 한 결정적 계기였다.


이 관계가 동시대 문화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이슈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 언어를 이해하고 보완하면서, 각자의 미학을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상호 강화 구조(win–win)를 보여준다. 폴라첵은 코프슨의 정교한 조명 연출을 통해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한층 강화했고, 코프슨은 폴라첵의 공연을 통해 자신의 감각적 설치를 더 넓은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는 무대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폴라첵의 무대는 하나의 예술적 시네마토그래피로 읽히기 시작했고, 코프슨의 조형 언어는 음악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확장성을 획득했다.


Obituary_Matt_Copson_web.jpg MATT COPSON 작품 OBITUARY (출처: Centro de Arte Dos de Mayo)


이처럼 코프슨과 폴라첵의 관계는 현대 예술과 팝 문화가 만나 어떤 새로운 미학을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폴라첵의 감정과 코프슨의 감각이 만난 순간, 그들의 작품은 예술이라는 의미 속 더 넓은 세계로 열린다. 그리고 이 확장성은 루이비통 재단이 Open Space 프로그램을 통해 후원하려는 동시대 예술의 미래성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결국 코프슨은 단지 빛을 다루는 설치 작가를 넘어, 동시대 감정의 기류를 조명으로 번역하는 연출가이며, 그의 세계는 지금도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통해 계속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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