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Space #3
농경과 미래, 콘크리트로 빚은 새로운 신화를 예술로 표현하는 Anna Hulačová(안나 훌라초바)는 1984년 체코 서남부 소도시 수시체(Sušice)에서 태어났다. 공산주의 체제가 막 끝나가던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후 체코의 민주화와 유럽 통합을 동시에 경험한 세대다. 프라하 미술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 in Prague)에서 조각·인터미디어를 전공했으며, 특히 지리 프지호다(Jiří Příhoda)의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며 “조각을 둘러싼 환경 전체를 하나의 조형 언어로 다루는 태도”를 익혔다. 현재는 프라하를 기반으로 작업하며, 프라하 국립미술관, 팔레 드 도쿄(파리), 발틱 트리엔날레(빌뉴스), 브르노 하우스 오브 아트, 아이치 트리엔날레, 아트 인카운터 비엔날레 등 유럽 여러 기관에서 꾸준히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훌라초바의 조각은 한눈에 보기에도 독특하다. 전통적인 농촌 목조각, 민속 조각, 사회주의 시대의 공공조각, 브루탈리즘 건축의 거친 콘크리트 표면이 그녀의 손에서 다시 섞인다. 작품에는 사람·동물·식물·기계가 함께 뒤섞인 하이브리드 존재들이 등장한다. 인간의 몸통에서 식물이 자라나고, 얼굴이 기계 부품처럼 보이기도 하며, 농기계와 신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결합된다. 비엔날레 및 주요 기관의 소개가 지적하듯, 그녀는 “고대 상징과 현대 조각 언어를 결합해,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현대성의 혼성(hybrid nature)을 보여준다.”
훌라초바의 조형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코가 20세기 후반에 겪은 정치·사회적 맥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48년부터 1989년까지 공산주의 체제 아래 있었고, 이 시기 조각과 건축은 순수한 예술이라기보다 국가 이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도시의 광장과 공장 앞, 협동농장에는 노동자와 농민을 이상화한 대형 공공조각들이 세워졌고, 이들은 개인의 감정보다는 집단·생산·노동의 가치를 강조했다. 돌과 콘크리트,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 조각들은 강인한 신체, 단순화된 형태, 반복되는 노동의 몸짓을 특징으로 했다.
훌라초바는 바로 이러한 시각 환경이 여전히 남아 있던 공간에서 성장했다. 비록 체제 전환 이후의 세대이지만, 그녀가 어릴 적부터 접한 공공조각과 건축은 사회주의 시기의 미학을 몸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투박한 신체, 과장된 팔다리, 비인격적인 얼굴은 이러한 조형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기보다는,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다시 말해, 그녀의 조각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비판적으로 ‘인용’하면서, 그 안에 인간·기계·자연이 뒤엉킨 새로운 존재를 삽입한다.
이 하이브리드 세계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훌라초바는 농업, 생태, 노동의 현실을 자신의 핵심 주제로 삼는다. 밀, 수선화, 엉겅퀴 같은 식물, 꿀벌과 곤충, 토양과 농기계는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다. 이는 단순한 자연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체코를 포함한 유럽 농업 사회가 산업화와 기술 발전 속에서 어떻게 변형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농기계는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이자, 동시에 생태 위기와 노동 구조 변화의 징후로 읽힌다.
2022년 프라하 갤러리 헌트 카스트너(hunt kastner)에서 열린 개인전 〈Edible, Beautiful, Untamed〉에서 그녀는 “경작된 풍경과 야생 정원이 뒤섞인 가까운 미래의 농경 세계”를 상정하며, 모터처럼 보이는 콘크리트·세라믹 덩어리와 식물처럼 자라난 섬유유리 조각들을 함께 설치했다. 전시 텍스트는 이를 “유기적인 것이 기계적으로, 기계적인 것이 다시 생물학적으로 변환되는, 사이코-포크(psycho-folk)적 융합”이라고 설명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2021년 비아위스토크의 갤레리아 아르세날(Galeria Arsenal)에서 열린 전시 〈Alienbees, save us, please!〉에서는 콘크리트와 폴리머로 만든 인간-벌 하이브리드 조각들을 통해, 생태 위기와 꿀벌군집 붕괴, 그리고 인간 노동의 불안정성을 겹쳐 보여주었다. 2021년 브르노 하우스 오브 아트의 〈Eating Planet〉, 산탄데르의 Fluent에서 열린 〈Sow Ideals and Harvest Hybrids〉 등에서도 그녀는 “먹는 행위, 경작,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조각적 서사로 풀어냈다. 이 전시들을 관통하는 것은, 농촌과 자연을 향한 향수라기보다 “변형과 돌연변이”를 통해 미래의 농경·생태 시스템을 가늠해 보는 상상력이다.
루이비통 재단의 Open Space #3는 이 세계관이 파리, 그것도 프랭크 게리의 건축 안으로 옮겨지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2018년 루이비통 재단은 훌라초바를 초청해 〈Underworld Upside Down〉이라는 새로운 설치를 선보인다. 이 설치가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훌라초바가 ‘제의’라는 고대적 형식을 빌려 현대 소비사회와 기술 의존적 삶을 신화의 언어로 번역한다는 데 있다. 《Underworld Upside Down》에서 인물들이 들고 있는 주전자, 토스터, 믹서 같은 가전제품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늘날 인간이 생존과 안락함을 위해 의존하는 시스템의 축약된 상징이며, 동시에 전기·자원·노동·공급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암시한다. 고대 사회에서 풍요의 신에게 바쳐지던 곡물과 포도주가 자연의 순환을 전제했다면, 이 작품 속 봉헌물은 더 이상 자연의 리듬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산업과 기술, 소비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는 사물들이다.
훌라초바는 이 장면을 비판적으로 고발하기보다는, 불안한 균형 상태로 제시한다. 디오니소스적 인물은 숭배의 대상이면서도 지친 몸을 기대고 있고, 그를 둘러싼 무성적 존재들은 축제와 장례, 의식과 행렬 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이 모호함은 현재 우리가 처한 조건—기술 발전이 약속한 풍요와, 그 이면에서 가속화되는 생태적·노동적 불안—을 정확히 닮아 있다. 다시 말해, 이 설치는 종말론적 경고도, 단순한 낙관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도래한 미래를 바라보는 우화적 정지 화면에 가깝다.
이 작업이 루이비통 재단의 Open Space 프로그램 안에서 구현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Open Space는 신진·중견 작가에게 대형 기관의 물리적·상징적 공간을 실험의 장으로 내어주는 플랫폼이다. 훌라초바의 조각은 프랭크 게리의 유기적 곡선과 유리 구조 속에서, 오히려 더 원시적이고 무거운 존재감을 드러낸다. 매끈한 현대 건축 안에 배치된 콘크리트 신체들은, 자연과 기술의 화해가 아니라 그 불완전한 접합을 강조한다. 이는 루이비통 재단이 단순히 ‘미적으로 세련된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기관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질문—생태, 노동, 기술, 신화의 재구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결국 《Underworld Upside Down》를 포함한 훌라초바가 루이비통 재단에서 선보인 설치물은 훌라초바 개인의 세계관을 넘어, 오늘날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농경과 신화, 노동과 소비, 자연과 기계라는 오래된 대립항들은 이 작업 안에서 더 이상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대신 그것들은 서로 침투하며 새로운 형상을 만든다. 훌라초바는 콘크리트라는 가장 비유기적인 재료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불안정한 생태와 신앙의 대상이 바뀐 사회를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형상화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그녀의 조각은 ‘농경의 미래’를 말하면서 동시에, 현대 문명이 스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신화의 초상으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