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루이비통 재단 (7)

Open Space #4

by Diana H

1987년에 태어난 로렌 할시(Lauren Halsey)는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센트럴 LA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그 지역을 작업의 기반으로 삼아온 작가다. 그녀의 작업은 장소를 단순히 재현하거나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살아온 커뮤니티 안에서 생성·순환해 온 언어와 이미지—간판의 문구, 전단의 타이포그래피, 그래피티, 구어적 표현, 헤어 문화, 동네 인물과 사건—를 수집해 고대 이집트 건축의 기념비적 규모와 조형 문법으로 재구성하며, 이를 공공적 기억의 구조물로 전환한다.


qI71ZoST33CU_2400x2400.jpg Artist Lauren Halsey Signs With WME (출처: Gagosian)


할시에게 사우스 센트럴 LA의 시각 언어는 스트리트 그래픽이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를 기록해 온 현대적 문자 체계, 즉 동시대의 상형문자에 가깝다. 그녀는 일상의 표식들을 이집트적 파사드와 기둥, 컬럼과 프리즈의 형식과 결합시켜,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온 스트리트 문화의 언어를 위계와 지속성을 지닌 기념비(monument)로 증폭시킨다. 그 결과 작업은 조각이나 오브제의 범주를 넘어, 관객이 통과하고 머무르며 신체적으로 경험하는 건축적 환경으로 작동한다. 그래피티로 대표되는 동시대 도시의 언어를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예술적 원형 중 하나인 이집트의 기념비적 조형과 접속시키는 이 방식은, 지금 이 순간의 삶과 표식들이 주변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역사로 기록될 가치가 있는 문화적 사건임을 선언한다. 할시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을 가장 오래된 문명의 형식 속에 새겨 넣음으로써, 현재를 역사적·기념비적 조형 언어로 변환한다.


LaurenHalsey_OpenSpace5_NouvelleHomepage_Header.jpg Open Space #5 Lauren Halsey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이러한 작업 방식은 제도권 미술관이 반복적으로 강조해 온 두 가지 축, 즉 건축/공간과 커뮤니티의 재연결이라는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물려 왔다. 루이비통 재단이 2019년 Open Space 프로그램의 다섯 번째 작가로 할시를 초청하며 ‘유럽에서의 첫 개인전’ 임을 명시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Open Space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재단 건축을 실험 무대로 삼아 작가에게 신작 커미션과 공간 변형을 요구하는 프로젝트형 플랫폼이다. 장소성과 공동체를 핵심 축으로 삼아 대형 구조물을 지속적으로 제작해 온 할시의 작업 방법론은, 동시대 도시 문화의 밀도를 공간 전체로 번역하려는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정확히 부합했다.


G6ZkwdbCXZRP_1200x1200.jpg Lauren Halsey: The Roof Garden Commission (출처: Gagosian)


이후 그녀의 작업은 미국 내에서도 제도적 상징성이 높은 무대로 확장된다. 2023년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Roof Garden Commission*(커미션 작업은 작가에게 특정 작품을 의뢰하는 것을 말한다)을 통해 선보인 "the eastside of south central los angeles hieroglyph prototype architecture (I)"는, 특정 지역의 기억과 에너지를 도시적 파빌리온에 가까운 건축 구조물로 구현한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옥외 설치를 넘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라는 고전적 컬렉션의 위계 속에 동시대 커뮤니티 기반 작업을 병치시키는 실험이었다. 고대 건축의 상징성을 호출하는 할시의 조형 언어는, 루프 가든 프로그램이 지닌 ‘고전과 동시대의 접속’이라는 성격과 자연스럽게 호응했다.


bVmI3iJ6YKnY_1200x1200.jpg Lauren Halsey in: 60th Biennale di Venezia: Stranieri Ovunque (출처: Gagosian)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Venice Biennale) 아르세날레 참여는 할시의 작업이 더 이상 특정 도시의 로컬한 서사에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다. 비엔날레 공식 소개는 그녀의 설치를 사우스 센트럴 LA의 일상에서 출발한 기념비적 컬럼 구조로 명시하며, 작품이 제시된 공간적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이는 할시의 작업이 장소성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소성을 정교한 조형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국제적 담론—도시, 정체성, 공공성—안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제도권이 승인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HG101301-1200x627.jpg Lauren Halsey: emajendat (출처: Serpentine Gallery)


이 흐름은 2024–2025년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 (Serpentine Gallery)에서 열린 영국 첫 개인전 로렌 할시: 이매진댓 (Lauren Halsey: emajendat)으로 이어진다. emajendat은 통상적인 영문 표기인 imagine that을 변형한 표현으로, 할시가 지속적으로 사용해 온 언어의 재조합과 재창조 방식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다. 이는 전시의 주제가 단순한 상상이나 서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서 생성된 언어를 조형적·공간적 체계로 다시 ‘발명’하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xjLKpsxHGoKM_2400x2400.jpg Lauren Halsey 작품 (출처: Gagosian)


이 전시는 단발성 초청이 아니라, 대형 기관이 요구하는 규모·기술·공간 점유 능력을 갖춘 설치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온 이력이 축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 작가임에도 왜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할시는 일관되게 공간을 점유하고 변형하는 능력, 그리고 커뮤니티의 기억을 공공적 조형으로 전환하는 방법론을 입증해 왔으며, 이러한 작업 방식은 오늘날 유럽 주요 미술 기관들이 요구하는 조건—장소특정성, 건축적 사고, 사회적 맥락을 내포한 대형 설치—과 정확히 맞물려 왔다.


Wg8GSoA6EcAa_2400x2400.jpg Lauren Halsey 작품 (출처: Gagosian)


결국 로렌 할시의 작업은 커뮤니티 기반이라는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로컬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 사례라기보다, 로컬을 가장 정교한 조형 언어로 밀어붙였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작업에 가깝다. 그녀의 설치는 동네의 표식을 기념비로 만들고, 일상의 언어를 건축으로 세우며, 사라질 위험에 놓인 공동체의 시간을 제도적 공간 안에 영속화한다. 이 점에서 할시는 오늘날 미술관과 비엔날레가 요구하는 ‘동시대성’이 무엇인지를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작가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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