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Space #5
1991년에 태어난 장 클라라크(Jean Claracq)는 동시대 회화가 다시금 ‘이미지의 깊이’를 회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응답해온 프랑스 작가 중 한 명이다. 1991년 프랑스 남서부 바욘(Bayonne)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 de Paris)를 2017년 졸업한 이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프랑스 제도권 미술계와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동시에 받아왔다.
디지털 시대의 고독을 그리는 정밀한 회화를 그리는 클라라크의 작품은 한눈에 보기에도 독특하다. 그는 대형 캔버스보다는 작은 목판(oil on wood)을 선호하며, 극도로 정밀한 필치로 장면을 구축한다. 이러한 형식은 중세 아이콘 회화나 북유럽 세밀화 전통을 연상시키지만, 화면 속 인물과 장면은 철저히 동시대적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는 젊은 남성, 디지털 이미지에 둘러싸인 인물, 교외적 풍경 속에서 고립된 신체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각 환경 그 자체를 반영한다.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출발점은 디지털 이미지다. 클라라크는 인스타그램, 데이팅 앱, 온라인 이미지 플랫폼 등에서 수집한 시각 자료를 콜라주하고 재구성해 회화의 기반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디지털 이미지의 즉각성과 소비성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그 이미지를 느리게, 집요하게, 거의 집착에 가까운 노동을 통해 재구성하며 그린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이미지가 지닌 피상성은 제거되고, 대신 고독, 멜랑콜리, 시선의 정지와 같은 정서가 화면에 침전된다. 클라라크의 회화는 이렇게 디지털 시대의 인간 조건을 고전적 회화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2020년,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은 이러한 그의 작업 세계를 Open Space #7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으로 조명했다. Open Space는 재단이 동시대 유망 작가에게 공간 전체를 맡겨 신작을 제작하도록 하는 실험적 전시 시리즈로, 클라라크는 이 전시를 위해 《Propaganda》라는 제목의 5점 연작 회화를 선보였다. 이 작품들은 단순히 벽에 걸린 회화가 아니라, 건축 모형을 연상시키는 전시 구조물 안에 배치되었다. 관람자는 회화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작품 사이를 이동하며 장면을 해석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클라라크가 회화를 하나의 이미지가 아닌, 경험의 장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였으며, 그의 작업이 개인적 표현을 넘어 공간적·제도적 맥락으로 확장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루이비통 재단이 클라라크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작업은 전통 회화의 기술적 완성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디지털 이미지 환경과 소셜미디어 시대의 시각 문법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가 단순한 미적 후원이 아니라, 동시대 문화의 핵심 질문을 제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자 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작가 유형이다. 클라라크는 ‘젊은 회화 작가’라는 범주를 넘어, 동시대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고, 기억되며, 다시 회화로 환원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가로서 재단의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이 전시 이후 클라라크의 위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2021년 그는 파리 국립 외젠 들라크루아 미술관(Musée national Eugène Delacroix)에서 개인전을 열며 프랑스 미술사적 전통과의 대화를 이어갔고, 2023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데 보자르(Académie des Beaux-Arts)가 수여하는 피에르 카르뎅 회화상(Prix Pierre Cardin, Peinture)을 수상했다. 이는 그가 단순히 동시대 미술계의 ‘트렌디한 작가’가 아니라, 프랑스 제도권 미술계가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회화 작가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
시장에서도 그의 위치는 명확하다. 클라라크의 작품은 현재 경매 시장보다는 1차 시장, 즉 갤러리와 기관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제한된 작품 수와 높은 완성도로 인해 컬렉터 사이에서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대표 갤러리인 파리의 갈르리 술타나(Galerie Sultana)는 그를 “전통과 디지털 사이의 회화를 구축하는 작가”로 포지셔닝하며, 국제 아트페어와 기관 전시를 통해 작가의 명성을 점진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자국인 프랑스에서 클라라크는 이미 제도권과 평단의 신뢰를 확보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반면 해외에서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회화를 가장 설득력 있게 다루는 작가’라는 맥락에서 소개되며, 프랑스 현대 회화의 새로운 얼굴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그가 특정 지역의 미학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이미지 환경이라는 보편적 조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장 클라라크의 작업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회화는 우리가 매일 소비하고 흘려보내는 이미지들 속에 잠재된 감정과 구조를 조용히 붙잡아두는 힘을 지닌다. 루이비통 재단이 그를 선택한 이유, 그리고 그 선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회화는 동시대의 속도를 거부하며, 럭셔리가 지향해야 할 또 하나의 가치—시간, 집중, 그리고 깊이—를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