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루이비통 재단 (9)

Open Space #6

by Diana H

루양(LuYang, 陸揚)은 동시대 미술에서 ‘몸’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장 급진적으로 탐구해온 작가 중 한 명이다. 1984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미술학원(China Academy of Art)에서 뉴미디어 아트를 전공하며, 일찍부터 영상, 3D 애니메이션, 게임 엔진, 모션 캡처,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의 작업은 회화나 조각처럼 고정된 물질적 오브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신체, 의식, 욕망, 신경계, 종교적 세계관을 가상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재조합하며, ‘포스트휴먼 이후의 인간’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UterusMan-05-thumb-620x348-78449.jpg Lu Yang's Uterus Man (출처: COOL HUNTING®)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루양의 초기 작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2013년 발표된 《Uterus Man》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히어로물의 시각 언어를 차용한 이 영상은 남성 중심적 영웅 서사를 전복하며, 젠더와 신체에 부여된 규범을 의도적으로 비튼다.


image_processing20210114-4-sk43l5.jpg Lu Yang at M WOODS, Beijing (출처: Contemporary Art Daily)


같은 해 베이징 UCCA에서 열린 개인전 <The Anatomy of Rage (Wrathful King Kong Core>는 그의 관심사가 단순한 시각적 실험을 넘어, 신체와 감정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조작되고 제어될 수 있는지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분노, 신경 반응, 신체 내부 구조를 병치한 이 전시는 인간의 감정과 생리 작용이 결코 순수하거나 자율적인 것이 아님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


ly-4337.jpg Delusional Mandala (출처: Walther Collection)


2015년은 루양의 작업 세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다. 그는 이 시기 《LuYang Delusional Mandala》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신체를 직접 3D 스캔하고, 이를 기반으로 ‘무성적(asexual) 디지털 아바타’를 창조한다. 이 존재는 더 이상 작가 개인의 분신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윤회와 환생, 의식의 이동을 수행하는 가상 존재로 설정되며, 생물학적 신체를 넘어선 새로운 존재 개념을 제시한다. 불교의 윤회 사상, 신경과학, 게임 캐릭터의 움직임이 결합된 이 작업은 이후 《Delusional Crime and Punishment》(2016)로 이어지며, 삶과 죽음, 처벌과 쾌락, 통제와 해방이라는 테마를 가상 세계 안에서 반복적으로 재생한다.


180322150147-lu-yang-m-woods-uterus-man.jpg Welcome to Lu Yang's Encephalon Heaven (출처: The Artling)


이처럼 급진적인 시각 언어와 일관된 문제의식은 곧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루양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에 참여하며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이후 유럽과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이어간다. 2017년 미국 클리블랜드 현대미술관(MoCA Cleveland), 2021년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술관(Asia Society Museum), 덴마크 ARoS 미술관 등은 루양을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시대 뉴미디어 작가’로 조명했다. 2022년에는 도이체 방크(Deutsche Bank)가 선정하는 ‘Artist of the Year’에 이름을 올리며, 그의 작업이 제도권 컬렉션과 글로벌 금융 기관의 문화 전략 속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v3Lu_Yang_Doku_header_-_edited.original.jpg DOKU: Live Alone Die Alone – The Karma Circle | Lu Yang 19–20 Mar (출처: ACMI)


2021년 이후 루양의 작업은 ‘DOKU’라는 가상 캐릭터를 중심으로 또 한 번의 확장을 맞는다. DOKU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이자, 끊임없이 환생하고 변주되는 디지털 존재다. 《Dokusho Dokushi Hello World》(2021)는 이 세계관의 출발점으로, 인간의 신체와 의식이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데이터처럼 이동하고 변형될 수 있음을 선언한다. 이 지점에서 루양의 작업은 개별 작품의 연속을 넘어, 하나의 지속적인 세계관 구축으로 진입한다.


Screenshot2023-12-08at16.12.21.jpeg Open Space #14 Lu Yang “DOKU The Flow” (출처: Fondation Louis Vuitton)


이러한 흐름 속에서 루이비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이 루양을 선택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재단에서 열린 Open Space #14 전시 《DOKU The Flow》는 DOKU 세계관의 두 번째 챕터에 해당하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Open Space는 루이비통 재단이 동시대 작가에게 전시 공간 전체를 맡기고 신작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단순한 초청 전시를 넘어 제작 파트너십에 가깝다. 《DOKU The Flow》는 재단의 지원 아래 제작되었으며, 영상, 사운드, 몰입형 설치가 결합된 하나의 ‘가상 윤회 시스템’으로 구현되었다.


janelombardgallery-luyang-doku-binary-wheel-2022.jpg LuYang 작품 (출처: Jane Lombard Gallery)


루이비통 재단이 루양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의 작업은 게임, 애니메이션, 테크노 음악, 가상 캐릭터 등 동시대 시각 문화의 최전선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면서도, 그 안에 철학적·종교적 질문을 깊숙이 삽입한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가 단순한 미적 소비를 넘어, 동시대 인간의 존재 조건을 사유하는 문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할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작가 유형이다. 루양의 작업은 화려한 테크놀로지를 과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몸과 정신을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220908-PP-LuYang-IN-71o.width-2560.jpg Lu Yang - Société Berlin (출처: SOCIÉTÉ)


루양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성장한 중국의 시대적 환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은 과학기술을 단순한 산업 육성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해왔다. 인공지능, 반도체, 신경과학, 바이오 기술은 중국 정부가 장기 계획 하에 집중 투자해온 영역이며, 이는 기술을 통한 국가 경쟁력 확보라는 명확한 목표 아래 추진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개인의 삶과 분리된 도구가 아니라, 국가·시스템·데이터 관리 체계와 긴밀히 결합된 통치 인프라로 기능해왔다. 얼굴 인식, 생체 데이터 수집, 알고리즘 기반 사회 관리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자란 세대에게 ‘몸’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니다. 루양의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뇌, 신경계, 제어, 실험, 시뮬레이션이라는 키워드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응이다. 그것은 미래를 상상하는 SF적 취향이 아니라, 기술이 이미 삶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사회에서 성장한 세대의 체감된 경험이다. 이 점에서 루양의 작업은 기술을 ‘사용하는 사회’에서 등장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과 구분된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기술 소비와 플랫폼 문화에 익숙한 사회라면, 중국은 기술이 개인의 신체와 행동을 구조적으로 조직하는 기술 통제 사회의 경험이 훨씬 직접적으로 축적된 환경이다.


4-1024x576.jpg Lu Yang|ルー・ヤン (출처: PARCEL)


이러한 기술적 현실 위에 겹쳐지는 것이 중국 동시대 문화 특유의 ‘과잉 혼합성’이다. 중국의 현대 문화는 전통과 현대가 선형적으로 교체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이념, 급진적 자본주의, 종교적 세계관, 과학기술 신화가 정리되지 않은 채 동시에 작동해왔다. 루양의 작업에서 불교의 윤회 사상이 신경과학과 결합되고, 해부학적 신체가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재탄생하며, 테크노 음악이 제례적 동작과 결합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일본 오타쿠 문화나 글로벌 디지털 미학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중국 사회가 경험해온 급속한 근대화와 기술 도약의 혼성 상태를 반영한다. 루양의 세계관이 의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과잉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미학적 선택이기 이전에, 전통·이념·기술이 동시에 밀려든 중국 현대사의 압축된 풍경에 대한 응답이다. 이 맥락에서 루양의 작업은 개인적 상상력이 아니라, 21세기 중국이 만들어낸 집단적 무의식의 시각화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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