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anosaur Apr 21. 2024

배민다움

홍성태

1장. 업의 개념: 뭐 하는 회사를 만들 것인가

어느 업종에서 시작할까?

비전이나 꿈 같은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무에서 시작하는 창업가들에게는 '재미'가 그들을 움직이는 큰 동력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엄청난 에너지의 근원은 재미와 즐거움이었다.


비즈니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좋은 디자인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깨달았어요. 비즈니스가 성공해야 그 비즈니스를 도와주는 디자인도 성공해요. 비즈니스가 망했는데, 디자인만 성공할 수는 없잖아요.

전후 관계가 다르다고 보실 수도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경영자들은, 브랜딩과 디자인을 매출을 높이는 도구로 쓰잖아요. 저는 반대예요. 제가 만들고 싶은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사업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이 브랜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사업을 잘해야 해요.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쓴 <왜 일하는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제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되었어요. 그 책에 보면, '일이란 나 자신을 완성해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련의 도구다. 그 일을 통해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나를 수련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 가슴에 콱 꽂혔어요.


아이디어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아니라 문제 자체를 찾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문제점을 보는 데 집중하기보다 해결책을 먼저 찾을 때가 많잖아요. 무엇이 문제인지는 나중에 거꾸로 논리적으로 설명을 붙이죠. 그러니까 무의식 중에 '이게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고 나서 왜 그랬으면 좋겠냐고 물으면, 문제점은 그다음에 이야기하는 거죠. 순서가 바뀌었어요. 문제점을 제대로 찾아야 해결책이 나오는데, 해결책을 먼저 보고 문제점을 끼워 맞추려 하는 거죠.


사물 하나 정해서 10가지 문제점을 찾으라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대신 절대 해결책을 먼저 찾으면 안 돼요. 해결책을 찾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점들만 보게 되거든요.


정작 중요한 것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고 봐요. 저는 모든 일은 '정의 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최초에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은 저의 멘토 역할을 해주시는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님이 늘 해주시는 이야기예요.


비즈니스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 함은 소비자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하지만 성가시거나 귀찮은 일들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소비자가 가려워하는 점을 세계적인 컨설턴트인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의 멋진 용어로 표현하자면 '고충점(hassle points)'이라고 한다. 소비자의 고충이 있는 곳에 기회가 있다.


시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들은 사물에서도 마음을 느끼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경영자들에게서 시 짓는 법을 가르치는 황인원 시인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모름지기 시인은 관찰하고(Observe), 질문하고(Ask), 귀담아듣고(liSten), 그 결과 통찰력을 갖게 되어(Insight),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는(Surprise)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문자만 줄여서 'OASIS'라고 기억하자.)


기존 시장에서 어떻게 새로운 틀을 만들까?

핵심가치가 기본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단조롭게 만들었어요.


'쉽고, 명확하고, 위트 있게'가 저희 서비스 제작 원칙이에요.

'우리 엄마도 쓸 수 있을 만큼 쉬운'으로 바꿨어요. '명확하다'는 건 정보의 최신성과 신뢰성이 우리 서비스의 본질이라는 뜻이니까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겠죠.

'위트'는 10년 후에도 잃지 말아야 할 배민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은, 의식하든 하지 않든 매 순간 여러 가지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 우선 본인의 이름 석자가 관리해야 할 첫 번째 브랜드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일생동안 하는 일이, 본인과 관련되는 각종 '브랜드를 관리하면 사는 것(branding)'이 아닌가 싶다.


최근 인기 있던 책 중에 <심플>이라든지 <단>, 또는 머리에 딱 들러붙는 한 단어를 찾으라는 의미의 <스틱>과 같은 책들이 주장하는 것이 응축하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응축이란 단순히 '짧게 줄이기'가 아니다. 응축에 에 응축을 해나가다 보면 '핵심에 다가가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우리도 여러 장의 보고서보다 '원 페이지 보고서' 만들기가 더 힘들지 않던가. 아마도 어린 아들에게 책의 '핵심을 찾는 연습'을 시키는 것이리라.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고, 습관을 바꾸어, 시장을 창출하는 3단계군요.

예, 맞습니다. 온라인 주문은 시장의 체험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하고, 음식을 더 잘 만들어야 하는 상황과 체험, 이것이 결국 이 시장의 질을 더 높였어요. 이게 웹 2.0에서의 집단지성과 같은 것이죠. 시장의 체험이 변하면서 습관도 완전히 바뀌었어요.


창업자로서 무엇에 유의해야 할까?

창업 팀을 구성하는 핵심은 이게 아닐까 싶어요. '우정을 나눈 사람들과 창업해야 한다.'

가령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개발자를 찾아가서 "진짜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번 만들어볼래? 내가 지분 20% 줄게"라고 하는 식의 관계는 깨지기 쉽다고 생각해요.

반면 그냥 친한 친구들끼리 "진짜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네가 요것만 좀 맡아주지 않을래?"라는 식은 가능해요.

사업이라는 게 오랫동안 바닥을 치다가 갑자기 올라가잖아요. 그 엄청나게 느껴지는 인고의 시간을 같이 견뎌내는 힘이 있어야겠죠.


헌신형 중심조직을 선택한 창업가들은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그들은 직원들과 조직 간에 강한 감정적 유대감(emotional bonds)을 조성하려고 애썼다. '가족'이나 '애정' 같은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며, 은연중에 조직 내의 동료애를 강조했다. 직원 또한 조칙이 추구하는 사명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맹목적 열정은 그런 결과를 낳기 십상이죠. 목적성과 방향성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예요.

일할 때는 정확한 팩트에 기반을 둔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고, 그에 대한 전략을 세워야겠죠. 그다음 필요한 게 열정이라고 봐요. 처음부터 열정만 넘치면 주변 사람들까지 부담스러워져요. 막연한 열정을 가진 분들이 와서 이야기하면 저도 뭘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기도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어요.


평균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봐요.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평균적 사고에 갇히기 쉬운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교수님들을 사회의 지식인으로 간주하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시는 것을 되게 어려워하세요. 교수님들 사회는 속된 말로 튀면 안 되잖아요. 남들이 생각하는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해야 안전하니까요.


2장. 타깃 고객: 누가 진정 우리의 고객인가

배민의 유저는 어떤 사람일까?

고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해하고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차곡차곡 브랜딩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으로 고객 덕분에 배민에 어울리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셈이죠.


<무한도전>의 자막은 정말 예술이에요. 그래서 어떤 생생함 같은 것들이 살아있죠.


인터넷 서비스가 꼭 애플처럼 깔끔하고 점잖을 필요가 없다. 기존에 짜인 쇼 프로그램처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재미있게 할 수도 있겠단 확신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성격(personality)이 있으며, 개인의 진짜 성격은 자신마저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의 성격대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내향적이라 해도 필요에 따라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하듯,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기업과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간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격을 페르소나(persona)라 하는데, 잘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페르소나를 상대방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맞춰 반응한다. 그러므로 제대로 성숙한 성인이라면, 성격의 단점을 보완하고 페르소나를 잘 가꾸어야 한다.


'애플은 천재 같다'라거나 '구글은 캐주얼하다'라고 말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것이다. 또는 '다이소는 값이 싸다'라거나 '삼성은 품질이 좋다'라고 말해도 사람들이 수긍할 것이다.

그런데 '천재 같다'거나 '캐주얼하다'라는 표현은 사람에게 써도 어울리는 말이지만, '값이 싸다'거나 '품질이 좋다'는 표현은 사람에게 대고 쓰기엔 적절치 않다. 바로 애플이나 구글은 페르소나가 있는 것이고, 다이소나 삼성은 없다는 방증이다. <라이코노믹스>의 저자 로히트 바르가바는 페르소나가 뚜렷한 기업은 사람들의 호감을 사며,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라고 주장한다.


저희가 내린 결론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면 아무도 만족할 수 없고, 단 한 사람을 제대로 만족시키면 모두가 만족한다'입니다. 모두에게 맞추려고 하는 순간,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을 거예요.


미국의 한 코미디언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성공의 열쇠는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실패의 열쇠라는 것은 안다(I don't know the key to success, but the key to failure is trying to please everybody)."


어떻게 해야 고객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배민 이용자를 위한 목표가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사장님을 위한 목표는 수익창출의 기회 제공일 것이다. 배민은 소비자와 사장님 모두에게 즐거움과 이익을 돌려줘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배민의 또 다른 고객인 사장님들과는 좀 더 돈독한, 다른 성격의 '신뢰'가 필요하다.


사장님(가맹점주)들이 가장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매출 증대예요. 저희와 함께 함으로써 돈을 얼마나 더 벌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게 중요하겠구나 생각했죠.


가맹점주들은 모두가 VIP 고객이다. 단순히 거래업자로서의 성과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인정'해줄 때, 진정한 신뢰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그래서 파리바게뜨 전신인 삼미당 정신을 다 같이 되새기고 있어요. '빵을 수백만 개 만들어도 고객은 빵 하나로 평가한다'는 거요. 주옥같은 말이죠. 우리는 수십만 건의 주문을 취급하지만 고객들은 하나하나의 주문이 자신의 소중한 체험이잖아요.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SAS 항공을 단번에 턴어라운드 시킨 얀 칼슨 사장이 <비즈니스 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옮겨본다. "우리가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보니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짐을 잃었다가 찾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승객의 짐을 찾아주는 문제해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짐을 잃고 걱정하고 염려했을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하면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짐을 잃었던 고객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영원한 충성고객이 됩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족스러웠던 고객에게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을 잘해주면 확실한 충성고객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에게 불만을 가진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도록 정성을 기울인다면 오히려 확실한 우리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이 있거든, 귀찮아하기보다 우리의 소중한 친구로 만들어보자. 그들의 쓴소리야말로 우리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고객 유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고객 유지'이며,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고객평생가치(CLV: Customer Lifetime Value)이다. 이는 누군가가 어느 기업의 고객으로 머무는 기간 동안 창출하는 총이익을 의미한다. CLV의 관점에서 보면, 고객을 새로 개발하는데 드는 마케팅 비용보다 재거래 고객을 유지하는 비용이 저렴하며, 거래금액이 절더라도 거래 빈도가 높은 고객이 더 가치가 있다.

아울러 재거래 고객이 다른 고객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하는 고객추천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추천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를 '순수 추천고객 지수(NPS: Net Promoter Score)'로 계량화하여 관리하기도 한다.


3장. 커뮤니케이션: 어떻게 사람들에게 파고들 것인가

배민만의 감성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회사마다 주는 경품은 엇비슷해요. 그래서 어느 회사가 준 건지 기억에 잘 남지도 않잖아요. 당시에는 '이벤트경품' 하면 '아이패드'가 떠오를 만큼 많이 줬는데, 경품의 수준을 높여서 명품 백이나 고급 승용차를 줘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타갔다고 화제가 될 순 있어도 히스토리가 되진 않죠. 어마어마한 경품만 기억하지 누가 그 회사를 기억하겠어요. 결국 논의 끝에 배민의 고객이 좋아할 만한 것 중, 배민다운 경품을 주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사실 프로모션 때마다 마케터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그런 거잖아요. 경품을 좀 좋은 걸로 걸면 체리피커들이 경품만 타가고 사라지잖아요. 저희는 굳이 큰돈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경품을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쌓으려 애썼어요. 경품이 아니라 우리 브랜드를 기억하고 좋아하게 해야죠. 막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을 계속 경품으로 걸었어요.


사실, 마케팅의 1차 목적은 소문나게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고객이 무얼 좋아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겠죠. 좋아하는 걸 줘야지, 남들하고 똑같은 상품 받았다고 소문 낼 사람은 없잖아요. 그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이해하지 않으면 그런 아이디어가 안 나오겠지요.


앞에서 한 경품이벤트나 잡지테러나 옥외광고나 전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알려주자는 거죠.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고객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누구 이야기를 해야 가장 효과적일까 생각했어요. 생각해 보니 마케터가 사로잡아야 할 최고의 타깃은, 바로 다른 회사의 마케터인 것 같더라고요. 마케터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좋으면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잖아요. 평균보다 감각적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반응이 오면 성공한 것 아니겠어요?


배달의민족이 어떤 서비스인지, 어떤 앱인지 구구절절 홍보해 봤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잖아요. 대신 광고에 판교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회사 자랑, 승진 자랑, 사내 결혼, 프러포즈, 야근 중지 요청, 뒷담화, 주 1회 치킨을 사달라, 연봉 올려달라 등등 어떤 내용이어도 좋으니 배달의민족 블로그에 비밀댓글로 신청하라고 공지를 올렸어요.


역시나 대중을 잡으려면 여성들을 잡아야 한다는 걸 또 배웠죠. 남자들은 아무리 좋은 걸 해줘도 소문을 안 내지만, 여성들은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더라고요.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게 이런 겁니다.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아무도 감동받지 못하지만, 단 한 사람을 제대로 감동시키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어서 모든 사람이 감동받는구나'라는 거요.


팬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저도 디자인을 해봐서 알거든요. 진짜 노력과 실력을 발휘해서 만든 자기만족을 위한 안이 있지만, 보통은 고객에게 현실과 적절하게 타협한 안을 가져오죠.


배우가 정해지고 나서 콘티를 만드는데, 류승룡 씨가 여름쯤에 나오는 <명량>이라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거예요. 당연히 이순신 장군으로 나오는 줄 알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하는 카피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맙소사, 왜장으로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배민 광고에서는 류승룡 배우가 정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전략을 '점증적 숙성과정'이라고 한 것과 만나는 말이다. 바둑을 두면서 진행될 모든 수를 미리 다 예측할 수 없듯이, 전략을 한꺼번에 다 짜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두뇌의 한계이자 과정상의 한계이기도 하다. 더구나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략은 집행과정을 통해, 발효하듯 천천히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좋은 전략은 있을지언정 완벽한 전략이란 있을 수 없다. 전략의 집행이란 분명한 시작도 뚜렷한 종지부도 없는 점증적인 숙성과정인 것이다.


지속적 성장의 핵심은 사람들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중심 컨셉은 변하지 않되, 컨셉의 표현은 디자인을 통해서든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는 계속 진화해 가면서 '자기다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때 '중심 컨셉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진화의 창의성'이 지속성의 핵심이다.

1991년 이래, 디젤 청바지의 중심 컨셉은 초지일관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for successful living)'이다. 여기서 '성공'이란 사회적인 성공을 의미한다기보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나답게 사는 것이며, 도전하는 삶을 말한다.


나다운 삶을 위한 캠페인 중 하나는 '바보처럼 살자(Be stupid)' 광고 시리즈를 보면, 핵심 컨셉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광고가 눈길을 끈다.

'똑똑한 사람은 머리에 귀 기울이고, 바보는 가슴에 귀 기울인다.(Smart listens to the head. Stupid listens to the heart)',

'바보는 실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Stupid might fail. Smart doesn't even try)',

'바보는 뭐라도 만들려고 한다. 똑똑한 사람은 비평만 한다.(Stupid creates. Smart critiques)',

'똑똑한 사람은 두뇌가 있을지 모르나, 바보는 배짱이 있다.(Smart may have the brains, but stupid has the balls)'.


어떻게 해야 고객과 잘 놀 수 있을까?

급기야 2004년 파산 위기에 직면한 레고는 가족경영 방침에서 벗어나 외르겐 비 크누드스토르프를 새로운 CEO로 영입한다. 그는 사업확장 전략을 접고, '다시 블록으로(Back to brick)'를 외치며 핵심사업인 '블록'에 집중하기로 한다. 확장이 아니라 본질로 돌아가 진화를 통한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꼭 우리 회사를 알려야겠다, 홍보해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참여시키기가 어렵다고 봐요. 사실 제가 고객이어도 기업 홍보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럴만한 이유나 명분을 줘야죠.


무엇보다 아이디어를 비방하지 않고 받아주는 문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참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와도 '그게 뭐냐'라고 하면, 다시 말할 엄두가 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황당한 아이디어라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면 현실적으로 쓸 만한 결과가 나오니까 다들 신나게 아이디어를 내요. 회의가 거의 아이디어 배틀처럼 되기도 해요.


4장. 사업의 방향: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수수료를 0%로 할까?

뭔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결국 당시 기준으로 매출의 30%를 차지하던 수수료의 전면 폐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이고, 배달의민족 브랜드의 손상은 이후 2차, 3차 브랜드의 확장에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얻은 게 있어요. 진짜 크게 얻은 건 브랜드예요. '배달의민족'이라는 브랜드요. 저희 고객들이 대학생들이고 젊은 친구들인데 자기들이 배민을 쓰면서 찝찝하게 느꼈던 거예요. 배민이 수수료를 가져간다고 하니 마치 자신이 음식점 사장님한테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 불편했던 마음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그게 되니까 브랜드 확장이 가능해졌어요. 배민프레시, 배민라이더스 모두 배민과 관련된 브랜드잖아요. 배민이 망가져버리면 뒤에 다른 브랜드들이 설 수 없죠. 투자자들에게 이러한 논리로 설득했죠. 푸드 e-커머스 시장은 엄청나게 큰데, 배민이라는 메인 비즈니스, 브랜드가 손상을 입으면 다른 관련사업은 하나도 못한다고요.


경쟁할 때는 경쟁자가 아니라 나만 의식하는 게 가장 맞지 않나 싶어요. 경쟁자를 의식하면 경쟁자랑 비슷해지잖아요. 그런데 별로 의식하지 않고 내 길을 그냥 뚜벅뚜벅 가면, 오히려 경쟁자가 나를 의식해서 나를 따라 하겠죠. 내가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여 만든 것과 저 사람이 저렇게 하고 있으니 나도 해야지 하면서 만든 것과는 본질적으로나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다음 저희가 내보낸 TV광고가 효과가 있었잖아요. 류승룡 배우님이 출연한 광고로 저희 인지도가 급격히 높아졌죠. 그러자 경쟁사도 갑자기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자기스럽지 않은, 감성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광고 캠페인을 하더라고요. 저희가 그렇게 해서 잘된 걸 보고 따라 했죠.

그렇게 하면 결국 그들은 우리 쪽으로 계속 넘어오는 거예요. 저희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격이죠. 공성전을 할 때 보면 성을 지키는 쪽이 무조건 유리하잖아요. 저희는 계속 그 전략을 써요. 같은 광고비라도 경쟁사가 쓰는 비용의 절반만 썼어요. 공성전은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기 때문에 저희는 계속 그 전략을 고수하려고 해요. 무리가 먼저 찍고, 우리의 방향으로 끌고 들어오자. 그리고 그때부터 방어에 들어간다. 상대가 만드는 이슈에 절대 따라가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에요. 상대방의 영역에 들어가야 한다 해도 충분히 때를 기다려 전력을 모아서 집중 포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를 어디까지 확장할까?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왜 살까(Why people buy things they don't need)>라는 책이 있다.

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니즈(needs)가 아닌 원츠(wants) 때문이다.


'원츠'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편리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싼 가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안 사도 될 걸 사게 만들고, 고장 나지 않았는데도 또 사게 만들고, 더 비싸게 사도록 만드는 것이 원츠이지만, 그를 통해 사람들의 행복감과 만족은 더 높아진다. 원츠의 세상에서는 가격의 제한도 없고, 수요의 끝도 없다. 원츠를 자극할 수 있다면, 바로 그곳에 블루오션 시장의 기회가 있다.


배민이 겨냥하는 원츠 시장은 뭔가요?

일단 다이어트 같은 부분은 '니즈'가 아닌 '원츠'의 영역인 것 같아요. 사실 배민프레시는 건강이나 다이어트, 웰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덕을 봤죠. 신선식품 말고도 오프라인에서 인기 있는 음식들을 입점시키면서 매출이 증가했으니까요.


플랫폼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해 나가는 사업은 일본의 서점, 츠타야도 좋은 예다. 일반적으로 서점은 중고생의 학습지로 많은 수익을 올리지만, 츠타야는 학습지를 취급하지 않는다. 타깃이 아니기 때문이다. 츠타야의 타깃은 1970~8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어내고 지금은 대다수가 은퇴한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다. 그들은 시간의 여유뿐 아니라 자금의 여유도 있다. 츠타야는 그들을 정조준해 각 지역에 걸맞은 도심 속 여유로운 공간을 연출하여 플랫폼을 조성하고 있다. 그 공간을 찾아 츠타야에 온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서비스와 콘텐츠를 개발하며, 책이나 음반을 넘어 여행상품에서 고급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활용품을 팔고 있다.


우리가 지불하는 음식 가격에는 20~30% 정도의 부동산비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온라인에서 시켜 먹는 음식을 보면 객단가가 1회 2만 원 정도예요. 그중 6000원 정도가 부동산 비용인 셈이죠. 6000원이면 우리나라 물류비로 집 앞까지 친절하게 배달해 주고도 남는 돈이잖아요.


고객이 레스토랑까지 걸어오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하게 되면 한 레스토랑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잖아요. 그럼 훨씬 더 적은 수의 레스토랑만 운영해도 되겠죠. 부동산비용, 가맹비가 확 줄어들면서 산업 전반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큰 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제로투원(Zero to One)>에서 미래를 향한 진보에는 수평적 진보와 수직적 진보가 있다고 주장한다. 수평적 진보는 효과가 입증된 것을 흉내 내어 만드는 것, 즉 1에서 n으로 확장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수직적 진보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 즉 0에서 1로 집약시키는 것을 뜻한다.

사람 간의 음성통화가 가능한 전화기를 보고 다른 모양이나 다른 색깔의 전화기를 만들었다면 수평적 진보(1 to n)다. 그러나 전화기에 근거해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면 수직적 진보(0 to 1)다. 수직적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인데, 특히 최근 급속한 발전을 한 IT 기술의 영향이 크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남긴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경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에 있다"라는 말이 되새겨지는 순간이다.


5장. 아이덴티티: 어떻게 배민스러움을 쌓아갈 것인가

조직에 어떻게 고유의 색을 입힐까?

많은 기업들이 업의 개념이라든지 미션, 비전 등을 설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든 것이라도 그것을 액자에 걸어놓거나 홈페이지 첫 화면에 띄워놓기만 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회사 구성원에게 미션이나 비전을 내재화(internalize)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을 뒤집어 보면 강점이 되는 법. 올드해 보이는 듯한 이미지는 성숙해 보인다든지 직장인 느낌이 난다든지 세련되어 보인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 느낌을 집약해서 그들은 '이지적(intellectual)'이라 표현했다.


어떤 '브랜드 개념'은 소비자들에게 마케팅적으로 표현하기에 앞서 구성원들에게 우선적으로 내재화되어야 한다. 리츠칼튼 호텔의 유명한 모토인 "우리는 신사숙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사숙녀입니다(We are ladies and gentlemen serving ladies and gentlemen)."는 고객을 위한 슬로건이기도 하지만, 직원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다듬는 역할도 크다.

브랜드 개념이 구성원들 간에 공유되고 정신과 행동으로 체화되면, 기업의 역량을 집결하는 구심점이 되고 나침반이 되어 시너지를 창출하게 된다. 이러한 내재화 과정을 일컬어 '내부 브랜딩(internal branding)'이라 부른다.


우리만의 서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저희가 하얀 바탕에 까만 글씨로 '다 때가 있다'는 때수건을 만들었잖아요. 모 타월회사에서 저희 서체로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라고 써서 팔더라고요. 저희 마케터나 디자이너들은 너무 똑같이 따라 하는 것 아니냐고 스트레스를 받던데, 저는 좋았어요.

브랜드가 성공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척도 중 하나가 짝퉁 아닐까요. 짝퉁이 많으면 성공한 브랜드겠죠. '나이키'가 정말 멋지니까 '나이스'가 나온 것처럼 말이에요. 저희 브랜드를 따라 한 것들 하나하나가 저희에게 훈장처럼 쌓인다고 생각해요.


공간이 정체성 구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무실에 활기가 넘치고 돈독한 관계를 쌓아가다 보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할 때에도 본인의 의사를 쉽게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오픈된 공간에서 회의가 진행되다 보니 일에 대한 의사결정이 팀 리더의 강압으로 결정된 것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죠.


저희 회사가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넘쳐나는 비결이 궁금하다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회의실을 디자인할 것인지, 회의를 디자인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이죠. 저희는 회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회의실이며, 보다 편안하게 언제 어디서든 회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덩치가 커져도 배민스러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마스다 무네아키는 정말 엄청난 일들을 해냈죠. 디자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 같아요. 그의 저서, <지적자본론>에서 '디자인은 부가가치가 아니라 본질적 가치'라고 말한 것 자체가 충격이었죠.


예전에는 디자인을 장식미술이라 불렀고, 원래 있던 형태나 기능에 덧칠해 더 예쁘게 만들어서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취급했잖아요. 그러니까 부가가치라고 했죠. 하지만 지금의 디자인은 외관을 유려하게 그리거나 예쁘게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태나 기능에서부터 컨셉을 중심으로 움직이죠. 컨셉이 그대로 들어가서 관여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부가가치가 아니라 본질적 가치라는 거죠.


사실 저도 무네아키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디자인을 부가가치라고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그걸 영향력 있는 경영자가 나서서 주장했다는 게 대단히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하라켄야가 무인양품의 제품들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의미 있게 한 일이 '빼기'였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 디자인은 더하는 디자인이었거든요. 마트 가서 세숫대야 사려고 할 때마다 아내에게 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 세숫대야에 그려진 토끼그림만 빼면 살 것 같다고. 컵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거 안 넣어도 될 것 같은데 그전까지 워낙 디자인이 부가가치라고 교육받아서 형태를 만들고 첨가하고 덧칠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 게 사실 무인양품이죠. 형태 자체가 기능이고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태의 디자인이에요. 그건 단순한 제품을 넘어선 전체적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거든요. 이제까지의 우리는 항상 뭔가 더 갖고 싶어 하는 삶을 살았는데,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늘 간결하고 절제된 삶을 보여주잖아요. 담백한 컬러와 튀지 않는 제품, 가장 기능에 최적화된 형태죠. 그 시절에 그걸 시도했다는 건 혁명적이죠.


마쓰이 타다미쓰 사장은 두 가지 핵심전략으로 무인양품을 재기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나는 모든 업무의 매뉴얼 작업화이다. 그는 무분별하게 늘어난 매장들이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어떤 사소한 작업이라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이를 표준화했다. 그 집적이 2000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 '무지그램(Mujigram)'이다. 그는 다른 기업도 너무 비대해지기 전에 미리 업무의 중심이 되는 분명한 룰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철학과 컨셉을 눈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이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하라 켄야는 공(empty)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잡고 최소한의 디자인을 하되 '비움'은 소비자가 채워나가게 한다는 철학을 내세웠다. 그가 쓴 <디자인의 디자인(Design of Design)> 책이 설명하듯이, 비어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다 포용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철학은 제품뿐 아니라 매장이나 광고, 포장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무인양품의 단순성(simple), 편리성(convenient), 실용성(practical), 합리성(rational)이란 이미지를 소비자가 일관되게 인식하도록 전하면서 턴어라운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애플이 재기한 데는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조너선 아이브라는 출중한 디자이너를 만났기에 가능하다. 철학 있는 경영자와 궁합이 잘 맞는 디자이너의 결합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정채영 부회장님에게 투자자들을 어떻게 설득하는지에 대해 여쭤봤어요. 그랬더니 브랜드에 공을 들이는 대신 연초에 투자자들에게 계획했던 숫자를 반드시 맞춘다고 하더라고요. 그 안에서 브랜딩을 하는 거죠.

사실 회사의 브랜딩과 제품 마케팅은 또 달라요. 브랜딩은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서 페르소나를 만들고, 정체성을 쌓고, 인격체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만드는 거잖아요. 마케팅은 반기, 분기별로 실적이 나와야 하니까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나가는 게 아니라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해야 하는 거죠.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의 분석 결과, 기업이 성장을 멈추거나 망하는 85%의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한다. 주된 원인은 그들이 펴낸 책 제목처럼 <창업자 정신(Founder's Mentality)>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창업자 정신'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반란자의 사명의식(insurgent's mission), 최전선에의 집착(frontline obsession), 주인의식의 공유(owner's mindset)이다.

창업자는 기존 산업의 비효율성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반란자이다.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자는 반란 당시의 사명의식을 상실하면 자유낙하는 시간문제다. 문제는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너무나 쉽게 창업자 정신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시대 유행했던 것을 잘하는 사람은 잠깐의 인기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깊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스타일대로 꾸준히 자기 것만을 고집했던 사람들은 결국 자기 존재감을 나타내더라고요.


모든 고민은 하나예요. '어떻게 하면 잘 팔지?'가 아닌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들지?'인 거죠. 그래서 저희 구성원들은 정말 모두들 배민스러워요. 저희끼리 다들 미친 사람 같다고 웃어요. 저희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인사관리하고, 코딩하고, 재무를 해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레고도 디즈니도 자기만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잖아요. 배민스러운 사람들이 모여서 계속 배민스럽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인터널 브랜딩의 핵심이라고 믿어요. 일하는 직원들이 계속 배민을 사랑하게 만드는 거요.


6장. 조직의 분위기: 룰이 있는 창의 기업을 만들어볼까

창의적 기업에는 어떤 룰이 필요할까?

자유와 자율은 다르죠. 회사는 개인이 더 오랫동안 몰두하고 연구하며 자율적으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 거지, 자유로운 문화를 거저 선사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원칙 없이 세워진 자유로운 문화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을 칭찬하지 않아요.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도 "이거 누구 아이디어야?"라고 묻지 않아요. 대부분의 조직에는 "이거 누가 했어?" 하면서 반드시 한 명을 찾아내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을 본보기로 치켜세워주죠. 사실 팀들끼리 작업하면서 다 함께 주고받은 내용에서 나온 건데도요. 그렇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남을 돕지 않아요. 어시스트는 사라지고 스트라이커는 자기가 잘나서 골을 넣을 줄 아는 거죠. 조직적으로 그런 문화를 피하려고 해요.


일하기 전에 신뢰가 쌓이고 유대관계가 형성되어야만 일이 잘된다고 생각해요. 소소한 잡담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이는 신뢰로 발전할 수 있죠.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 잊어버리고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만 남지요.


잡담의 효과랄까 목적은 또 있어요. 반복적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변형하거나 수정하는 데 익숙해지는 거예요. 내 아이디어를 누군가 반대해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회사는 오로지 일만 하는 조직이 아니잖아요. 서로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어떤 마음, 서로 헌신할 수 있는 마음들이 유기적으로 모여야 잘 돌아가는 곳이잖아요.


정확한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좋은 전략수립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잘못된 전략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칼의 노래>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본 것을 본 대로 이야기하고, 들은 것을 들은 대로 얘기하고, 본 것과 들은 것을 분리해서 얘기하고, 보지 않고 듣지 않은 것은 일언반구도 이야기하지 말라. 이 팩트에 기반한 전략으로 23전 23승을 거두었다.' 정말 너무 공감 가는 얘기였어요.


예상 산출물(expected output)은 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얻는 결과죠. 기획서가 될 수도 있고, 컨셉이 될 수도 있고, 코딩이 될 수도 있겠지요. 말 그대로 산출물이에요. 그런데 예상 결과(expected results)는 그 산출물대로 진행했을 때 어떤 것들이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내용이죠. 한마디로 산출물은 각 부서에서 뭘 만들어오라는 거고, 결과는 산출물이 어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겁니다.


나 혼자 재밌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와 여러 사람이 토론하면서 발전시켜 내놓은 아이디어의 퀄리티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많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그 과정이 재미있으면 재미있을수록 결과물의 퀄리티가 정말 좋아져요. 저희는 그게 혼자 하는 생각과 집단사고의 차이라고 봐요.

마케팅이라는 게, 말하자면 내 생각을 사람들 사이에 던져주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반응할 때 내 아이디어도 실현되겠죠. 우리는 소비자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하니까 우리끼리 소비자의 반응을 볼 수가 있죠. 집단사고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CNN 창업자 테드 터너가 되게 멋진 말을 했어요.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Lead, Follow or Get out of the way)'라는 말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말인데요. 총대 메고 깃발 꽂고 이끌며 리더십을 발휘하든지, 아니면 확실하게 팔로우십을 발휘해야겠죠. 방광자가 되어서 불만만 갖는 사람은 조직에 필요 없다는 거죠.


상대방에게 잘못한 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내 맘은 그렇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서운한 맘이 드네'라고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끼는 서운함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앙금이 가라앉으니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직장이 과연 재밌는 놀이터가 될 수 있을까?

예전 세대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기 싫은 일이라도 억지로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다르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나 재미를 찾으면 신나서 일하지만, 아니면 손을 놓고 만다.

"고객만족이 최고의 마케팅이다. 그런데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직원을 먼저 만족시켜라"이다. 실제 직원들에게 원하는 것을 써내도록 하여 '우아한 버킷리스트'를 만들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먼저 자기 회사 직원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이유는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회사 생활에 불만이 많고 상처도 많은데 어떻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겠어요.


모든 기업은 그것이 무엇이든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문화가 희미하다면, 그것도 하나의 문화이다. 그런데 문화를 만드는 것은 바로 구성원이다. 그러기에 구성원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다.


에필로그: 나다운 브랜딩

'다움'을 형성하는 데는 두 가지 브랜딩 요소, 즉 내부 브랜딩과 장기적 브랜딩이 필요하다. 장기적 브랜딩에 관해서는 졸저 <나음보다 다름>에서 바뀌지 말아야 할 '본질 요소'와 시대 및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변화해야 할 '표면 요소'들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한결같다'는 단순히 '변함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만의 컬러를 지키되 트렌드에 맞춰 디테일하게 변해야 한결같다고 말한다. '볼보다움'이나 '구글스러움'이란 말을 들으려면, 브랜드 컨셉을 중심으로 세태에 맞추어 부지런히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일관된 브랜드 컨셉 하에 부지런히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는 브랜드의 핵심이다.

'다움'을 형성하는 또 다른 중요 요소는 내부 브랜딩이다. 브랜드의 개념이 외부에 드러나 보이는 것 못지않게 브랜드 개념이 내부 구성원들에 스며들어 그들 자신의 문화가 되고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배민 브랜드를 배민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내부 구성원들이기 때문이다.


창의력과 혁신은 반복되는 숙련도와 성실성을 전제로 할 때 나오므로, 창의성에 의존하는 기업일수록 규율은 오히려 더 중요하다. <업무의 기술(The art of work)>의 저자인 제프 고인스는 '창의력과 규율의 역설(paradox of creativity and discipline)'을 설명하면서 예술가에게 규율은 무서운 적이자 좋은 친구이듯이, 창의적인 일을 도모하는 데 확고한 규율은 필수요건이라고 강조한다. 배민의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만든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이란 룰은 놀랄 만큼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고, 이 회사의 중심 뼈대가 되어 있다.


" ...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도 미친 계획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면 무엇이든 100% 지지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결정은 오로지 제 몫으로 떨어졌죠. 결정은 어려웠습니다. 이때 제가 발견한 생각의 방식은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regret minimization framework)'였습니다.

저는 80세가 되어 인생을 돌아보는 제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앞으로 대박을 터트릴 것이라고 생각한 이 '인터넷 사업'에 뛰어든 것을 후회할 리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설령 제가 실패했다 하더라도, 저는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제가 시도조차 안 한다면, 그것을 후회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죽는 날까지 매일매일 미치도록 괴로워할 겁니다.

그래서 유망하게 잘 나가던 저는 다음 날 안정적인 직장에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연말까지만 참아도 엄청난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이게 무슨 일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