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집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
그라운드 룰 세 가지
8평 집으로 오면서 굳어지게 된 생활 패턴이 몇 가지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알게 되면서부터 다짐이야 했었지만, 작은 집으로 오고 나서야 실생활 속에 자리를 잡았다. 2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제는 몸에 배어버린 루틴이지만, 그러면서도 아직 매일 수련해야 하는 것도 있다. 그중 작은 집 살이를 할 만하게 해 주는, 어쩌면 필수적인 세 가지 그라운드 룰을 떠올려 본다.
첫 번째는 "먼지청소는 매일"이다.
전에 살던 25평 집에서는 사실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다. 주로 머무는 공간인 거실이나 안방이야 신경 쓴다 해도 서재나 옷방 같은 공간은 며칠에 한번 꼴로 청소기를 돌리는 정도였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널찍하니 티가 잘 안 났다. 그래서 가끔 내가 살림을 그래도 꽤 하는 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반면, 작은 집에서는 먼지를 점차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밝아진 바닥 컬러 때문에 더욱 눈에 먼지가 잘 띌뿐더러, (보통 작은 집들의 바닥 컬러는 밝은 편이다. 넓어 보이는 효과를 위해) 공간이 작으니 방금 전에 본 작은 먼지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작은 집 전체 바닥 먼지청소쯤이야 꼼꼼히 해도 넉넉잡아 5분 컷. 청소가 순식간에 되다 보니 청소기를 들게 되기까지의 고뇌, 높은 진입장벽이 사라졌다. 만만하니 더 자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욱 만족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
아무래도 이건 내가 깔끔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게을러서 만족도가 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런들 어떠랴. 작은 집에서 때때로 겪는 불편함 들을 '퉁'치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가장 큰 매력인 것을.
자주 청소기를 돌리고 닦아내도 먼지는 샘솟는다. 큰 도로 가에 위치한 집도 아닌데, 사람이 뿜어내는 먼지가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이가 흘린 굳은 밥풀이나 잔멸치 한 마리, 과자 가루, 머리카락, 섬유 부스러기가 어느샌가 자리를 틀고 앉는 것이다.
매일 퇴근 후에는 5분 청소로 저녁을 맞는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지만, 특히 하루 종일 되는 일이라곤 없던 날이면, 내 맘대로 되는 먼지청소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일 먼지를 벗고 나서 안온하고 작은 둥지에 드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설거지는 곧바로" 한다는 것.
미니멀 라이프를 알게 되면서부터 이것만은 몸에 완전히 익어버린 듯하다.
다른 집안일은 모르겠는데 나는 설거지만큼은 미룰수록 안 하고 싶어 지는 강도가 더욱 세게 느껴진다. 그래서 설거지 감이 온기를 잃고 지저분하게 느껴지기 전에, 식사가 끝나면 바로 일어나 후다닥 해치운다. 어쩌다 요리를 좀 했다 해도, 준비하는 단계에서 틈틈이 도마나 칼, 양념 그릇, 수저 같은 것들은 씻어두어 결국 나중에 씻을 것이 많지 않게 만들어 두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 집은 식사 준비와 설거지라는 가사 영역에서 남편과 나의 역할 분담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그때그때 할 만한 사람이 알아서 하는 것인데... 설거지만큼은 요새 거의 누가 먼저 잡느냐의 눈치게임 수준이다.
후다닥 치워버리고 싶은 나와,
느릿-느릿- 굼뜬 남편의 스피드는 애초에 비교가 안 되기에 웬만하면 내가 해 버리는 편인데,
설거지 시간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유튜브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남편이 요즘 필사적으로 엉덩이를 빨리 떼고 있다. 내가 일어서는 찰나에 다급하게 '내가 할게!'를 외치는 것... 그럴 때면 못 이기는 척 비켜주는데, 덕분에 식사 준비에서 설거지까지 논스톱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만세! 이제 나도 좀 내려놓자.
마지막으로 "식탁은 비워둔다"는 것.
내게는 이것이야말로 고수를 구분하는 영역인가 싶다.
작은 집은 들어서자마자 정면의 2인용 원목 식탁을 기준으로 오른편은 부엌, 왼편은 거실로 사용하고 있다. 이름을 구분 지어 놓았지만 실은 한 공간에 둘 다 있는 셈이다.
거실엔 키 큰 책장이 있고, 아이의 놀이공간을 부려놓았다. 소파는 둘 수가 없다 보니 (이유는 당연히, 좁아서다^^)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공간은 식탁이 되었다. 마주 앉아 밥을 먹거나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이는 바로 옆 놀이 공간과 식탁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밥을 먹고, 요리할 때 조리대로 쓰고, 아이 어린이집 수첩을 쓰거나, 책을 읽고, 부부가 노트북을 켜고 업무, 과제를 하는 곳도 모두 이 작은 식탁이다. 작은 집으로 올 걸 예견이라도 했는지 7년 전 혼수를 장만할 때 확장이 되는 2인용 식탁을 골랐다.
나에게도 식탁을 비워두는 일은 고행이다. 그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작은 집에서는 무언가를 올려놓을 수 있는 곳이 귀하다. 그러니 많은 종류의 물건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하루에도 수십 번 식탁 위에 발을 걸친다. 집안 동선의 중심에 있다 보니 뭘 올려두어도 편리하다는 점이 더욱 그렇게 만든다. 돌아서면 자잘한 무언가가 올려져 있기 십상인데, 볼 때마다 부지런히, 지치지 않고 치운다. 아이가 노는 공간이 어질러진 것은 보아도, 식탁만은 최소한의 것만 남겨 뭐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아마 식탁 비우기가 저절로 되는 날,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완성이 될 것 같다.
세 가지를 꼽고 보니 모두 부지런함과 연결돼있는 것 같다. 들고 난 자리를 부지런히, 다시 한번 살피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기본인 것을 새기며, 오늘도 5분 청소로 저녁시간을 맞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