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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ul 21. 2023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프랑크 마르텔라




한달 전쯤에 발목을 다쳐서 여태 달리기를 못하고 있었다. 운동 중에 유일하게 재미를 느낀 러닝인데, 못하게 되니까 삶의 루틴이 깨지고 우울감이 몰려왔다. 운동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이 나의 감정 상태에 아주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이제는 신체 건강 뿐 아니라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다. 


난 어릴 때부터 인간 실존에 대해 고민하던 감수성 넘치는 초딩이었다. 태권도 학원을 가던 봉고차 안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나는 왜 사는거지?' 라고 나름 심각하게 생각했던 모습이 기억 한켠에 아직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너무 엄하게 키워서, 하고싶은 일은 다 못하게 했으니 그런 생각을 했나 싶긴하다. 그 고민을 하던 태권도 학원조차 억지로 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중·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고민이 해결될 것 같았고, 대학을 가고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새로운 경험들을 좇느라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처음해 본 경험들에 취해 간간히 찾아오는 공허함은 술로 달래며 현실도피하면서 살아왔다. 책 한 권 읽었는데 갑자기 인생 전반을 돌아보게 되서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지만, 아무튼 나의 '공허함의 역사'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깊게 고민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왜 사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애초에 답이 없는건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초딩때부터 나름 20여년간 안고 살던 고민이지만 지금까지의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해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이 단순하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삶을 지속해나가고 있고 이왕이면 재미있고 보람차게 살고 싶다.


그냥 죽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는다는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서른이 넘었지만 주사 맞는 것도 싫어서 감기는 자력으로 이겨내려고 하는 편인데, 이에 비할 수 없는 고통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않다. (코로나 백신은 어쩔 수 없으니 꾹 참고 3차까지 맞았다...) 그래서 이왕 이어 나가는 삶 새로운 경험들로 채우며 재밌게 살고 싶다고 결론 내렸다. 


돌고 돌아 책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왜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지 설명하고, 현대인들이 실존적 불안을 느끼게 된 역사적 이유를 검토한 뒤, 좀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문이 끝난 뒤 아래와 같이 시작하는데 첫 문장부터 너무너무너무 내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하는 문장이라 책 자체가 술술 읽혔다.


당신은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누구도 당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누구도 당신에게 지침서를 주지 않았지만 당신은 여기, 이 세상에 던져졌고, 당신에게 주어진 제한된 존재의 시간 안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 필요가,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늦기 전에, 그 뭔가를 빨리 생각해내는게 좋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 나오는 에드워드 노튼의 내레이션 처럼 "이건 당신 인생이고, 1분씩 1분씩 끝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맹목적으로 따르던 종교, 정치체재 등 전통적인 세계관이 무너지면서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않던 인생의 의미를 개인적으로 찾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치만 거창한 인생의 의미는 평생을 고민해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에 각자의 인생 안에서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행동을 이미 알고 있기에, 지금 이순간 이 곳에서 최근 경험들을 잠시 성찰하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매번 일기에 쓰고 있는 '건강한 삶'의 구체적인 방법들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의미 있는 삶이겠지.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해질 수 있게 알고 있는 방법들을 실천하자. 더 이상 술로 도피하지 말자. 건강한 삶을 살아야 공허함과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인생의 공허함과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하진 않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는데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정리가 안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책 속으로

(들어가며)

인생의 공허함이 엄습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중략)  이 세상은 한 치도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어떤가? (중략)  지금껏 내가 정말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인생이라고 하는 이 미치도록 하찮은 것에 그래도 뭔가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을지도.


걱정마시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이 책에서 당신은 존재의 하찮음을 정면으로 상대하다가 유의미함이라는 긍정과 활기가 가득한 정반대편에 이르게 된 숱한 사상가와 철학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려면, 자기 배를 직접 조종하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당신에게는 삶의 도전과제를 헤쳐 나가는 데 유익한 몇 가지 핵심 가치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당신은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서 일생일대의 선택을 놓고 심사숙고하며, 수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의심을 마주해야한다.


(life 1) 어느 날 갑자기 무의미함이 찾아왔다

톨스토이가 <고백록>에 썼다시피 "이미 알게 된 것을 알기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인간의 삶에 내재된 우주적 가치가 없을 가능성에 한번 눈을 뜨고 나면 당신은 절대 그 점을 완전히 망각하지 못한다. 퇴로가 없으니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즐겁게 애쓰고, 창조하고, 살아갈 방법이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당신은 자신이 마음껏 동원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바로 여기, 지금 이순간, 더 의미 있는 삶을 빚어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을 직시하기보다는 회피하기 위해 딴 짓에 몰두한다.


전통문화의 기틀은 때로 굴레가 되기도 했지만 인간에게 안정감,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 방향감각, 의미를 제공했다. 다시 말해 전통문화의 기틀은 인간에게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는 확고한 기분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이제 이런 기틀이 사라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인생이 가치 있어지는지를 알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새롭게 해방된 문화는 적절한 또는 위로가 되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고, 이는 많은 사람에게 불안과 고립감, 근심, 방향 감각의 상실을 안겼다. 해방이 실현되어야 했지만 대신 그 해방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종속되어, 사람들은 어떤 권위자든 인생의 큰 질문에 대한 확고한 대답을 기꺼이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그러므로 그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필요로 하던 안정감에 몸을 던졌다.


당신이 이미 자신의 인생에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훨씬 좋은 의미의 원천을 탐색하는 것은 가능하며, 이는 삶을 튼튼하게 만들 때가 많다. 이는 공허함을 메우기 위한 절박한 시도가 아니라, 당신의 하루하루를 더 의미 있게 해줄 수 있는 활동, 선택, 관계와 조화를 이루는 더 많은 삶의 방법들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일종의 초대와도 같다. 우리는 미완의 상태에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인간으로서의 즐거움은 우리가 이 사실을 아는 데, 우리 각자에게는 더 많이 이해하고 개선하고 개인적 성취를 이룰 여지가 있음을 근본적으로 아는 데 있다. 당신에게 없는 것을 붙들고 한탄하기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그것을 토대로 삼을 방법을 찾으라. 당신 자신을 자유롭게 하여 당신이 이미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당신의 인생은 이미 의미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성찰적으로 이해하라.


(life 2) 우리가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무엇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과학적 세계관이 퍼져 나가고 그로 인해 세계가 마법에서 깨어나면서 발명된 질문인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간을 비롯한 우주 전체에는 자명한 목적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생각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잃어버린 것을 요청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그리고 한때 우리에게 있었던 것을 묘사하기 위한 표현이 발명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라는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된 모든 책임을 과학에 떠넘기지는 말자. 과학적 세계관이 인간의 의식에 진입한 이후, 누군가는 우리가 삶을 유의미한 어떤 것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을 발명해야 했다.


인생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다가 결국 인생은 부조리하고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하다는 말로 마무리가되면 사람들은 절망하게 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인 의미는 없고,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에 부여한 의미, 개별적인 의미가 있을 뿐이다. 한 명 한 명이 개별적인 소설책 한 권에 해당하는 개별적인 줄거리가 있을 뿐 -아나이스 닌, 일기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 우주의 기원 같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문제에서 시작하지 마라. 대신 당신의 삶의 경험에서 시작하라.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시작하라. 최근 경험에 대해 잠시 성찰하라. 어떤 경험이 다른 경험보다 더 의미 있었는가. 그리고 어떤 경험이 별로 의미가 없었는가. 지금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면 미래에 그런 경험을 더 많이 보장하는 선택을 하는 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라면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더 자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라. 어떤 업무가 다른 일에 비해 당신에게 더 의미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 재주를 더 잘 이용하는 경력을 쌓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라. 자신의 인생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유의미함과 충만함의 감각을 키워라. 


인생은 어째서 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아주 좋은 질문이다. 음, 나는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좋다, 내 경우는 하나만 꼽자면 그루초 마르크스 그리고 윌리 메이스, <주피터 심포니> 2악장, 루이 암스토롱의 포테이토 헤드 블루스 음만, 스웨덴 영화, 당연히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말런 브랜도, 프랭크 시나트라, 세잔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사과와 배들, 샘우식당의 게 요리, 트레이시의 얼굴... - 우디 앨런, 맨해튼


(life 3) 의미있는 삶을 회복하는 자기결정의 4가지 도구

무엇이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가와 관련하여, 나는 기꺼이 자율성, 유능감, 관계 맺음, 그리고 선의에 내 돈을 걸겠다.

-자율성: 자기 인생의 저자가 되는 것

-유능감: 당신 인생에서 통제권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

-관계맺음: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을 돌보고 돌봄을 받기도 한다는 기분

-선의: 다른 사람들의 삶, 사회, 또는 세상 일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는 욕망


사람은 섬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을 돌보려는 욕구와 다른 사람을 돌보려는 욕구 모두를 갖고 있다. 자신만을 돌보거나, 다른 사람만을 돌보는 극단의 선택이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을 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인간성의 일부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질식한다.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뻔뻔하게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시대에 이런 균형에 도달하려면 주변인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의식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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