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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Jul 21. 2023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는 과거의 수많은 선택이 쌓여서 만들어졌을텐데, 그 때 그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바꼈을지 한번쯤은 상상해봤으리라.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그런 상상이 구체화된 책이다. 주인공 노라가 더 이상 내일을 살고 싶지 않아서 자살을 시도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 공간인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눈을 뜬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노라가 살 수 있었던 수 많은 평행세계가 책으로 담겨있는 도서관이었다. 후회했던 선택들과는 다른 삶들을 경험해보며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내용이다.


나는 과거의 내 결정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선택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물론 현재의 내 모습이 백퍼센트 만족스러운건 아니지만 이제는 모난 부분조차 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결점이 다 고쳐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싫다. 


그래도 여러 갈림길의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지는 자주 상상해보고는 한다. 특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인 그 친구가 붙잡았을 때 다시 만났더라면, 지금처럼 공허한 채 살지 않고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고 누리면서 살았을까 싶은 막연한 상상을 많이 한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은 없었을거라는 생각에 현실로 금방 돌아오긴 하지만 말이다.


주인공 노라도 결혼까지 할 뻔했던 남자친구 댄과 헤어진걸 후회하고 그와 결혼한 삶이 담겨있는 책을 가장 먼저 펼쳐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와의 결혼 생활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기억속의 댄과 달리 그의 말투와 행동은 가벼웠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워놓고 당당했다. 실망한 노라는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에도 노라는 수 많은 책(평행세계) 속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여러 인생을 살아본다. 밴드가수나 수영선수로 성공한 삶,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삶,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안온한 삶 등등... 그럼에도 어느 삶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노라 본인의 삶이 아닌 것 같아 허무하기만 했다. 


사실 책 중반부부터 결말은 뻔해 보였다. 어느정도 결말을 스포하자면 노라는 현실로 돌아와서 지금의 삶에 초첨을 맞추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노라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은 희망이 생겨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저자도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해봐서 그런지 주인공 노라의 감정이나 행동 묘사를 잘 표현했다. 인생에 우울이 찾아온 사람들이 읽기에 좋은 소설이었다. 그리고 평행세계, 메타버스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읽다보니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도 떠오르기도 하고!



책 속으로


(p.7)  나는 결코 되고 싶은 사람이 다 될 수 없고, 원하는 삶을 모두 살아볼 수도 없다. 원하는 기술을 모두 배울 수도 없다. 그런데도 왜 그러길 바라는가? 난 내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의 모든 음영과 색조와 변주를 살아내고 느끼고 싶다. -실비아 플라스


(p.59) 버트런드 러셀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생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4분의 3이 죽어 있는 상태다"라고 했다. 


(p.124) 자극이 없으면 물고기는 우울증에 걸린다. 자극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있어야 한다. 돌이나 나무, 수초가 없는 수조에서 그냥 둥둥 떠다니기만 하면 물고기는 우울증에 걸린다.


(p.185) 예전에 밤이 되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노라는 그 이유가 고독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진정한 고독을 느끼지 못해서였다. 분주한 도시에서는 외로운 마음이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마음은 인간과 인간의 연결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211) "맞습니다. 그 사람. 슈뢰딩거는 양자 물리학에서 모든 대체 가능성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모두 한꺼번에요. 같은 장소에서. 양자 중첩이죠. 상자에 든 고양이는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있습니다. 상자를 열면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어요. 원래 그렇죠.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상자를 연 뒤에도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습니다. 모든 우주는 다른 모든 우주와 중첩되어 존재합니다."


(p.217) "안 해본 일이 없고, 지구상의 모든 대륙에서도 살아봤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내가 원하는 삶은 찾지 못했어요. 영원히 이 상태로 사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진심으로 영원히 삶고 싶은 삶은 결코 없을 겁니다. 난 호기심이 너무 많고,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갈망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슬픈 일이 아니니까. 난 이 불확실한 상태가 행복해요."


(p.308)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p.364)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을 방문한 초창기에 엘름 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삶에는 수백만 개의 결정이 수반된단다. 중요한 결정도 있고, 사소한 결정도 있어. 하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결과는 달라져.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기고, 이는 더 많은 변화로 이어지지......."


(p.391)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바로 이 후회가 우리를 쪼글쪼글 시들게 하고, 우리 자신과 다름 사람을 원수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다른 삶을 사는 우리가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지 못한 삶들이 진행되고 있는 건 사살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삶도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략)

 우리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앞에 있는 와인을 음미하고, 연주되는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다른 삶에서처럼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살아 있으며, 동일한 범주의 감정에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한 존재만 느끼면 된다.

 모든 것이 되기 위해 모든 일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무한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늘 다양한 가능성의 미래를 품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자. 가끔 서 있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다. 어느 세상에 서 있든지 간에 머리 위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

 어제 나는 내게 미래가 없다고 확신했다. 도저히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와 똑같이 엉망진창인 삶이 희망으로, 잠재력으로 가득 차 보인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으리라.



(p.402) 또한 모든 게 달라진 이유는 거의 죽을 뻔했다가 이제는 살아 있기 떄문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선택이기 때문이었다. 살기로 한 선택, 노라는 삶이 얼마나 광활한지 경험했고, 그녀가 봤던 그 광활함 속에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뿐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감정도 한없이 다양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안에는 다름 음계와 곡조가 있었다. (중략) 또한 모든 게 달라진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무겁고 고통스러운 <후회의 책>이 활활 타버려 재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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