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리
내 집중력은 정말 도둑맞은게 분명하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인스타그램을 들어가고 카톡을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5분도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아서 책 표지를 볼때마다 자꾸 양심에 찔린다.
요새는 진짜 쇼츠, 릴스같은 각종 숏폼에 중독된 것 같다. 20분 넘어가는 영상은 끝까지 보기도 쉽지 않다. 어린아이들이 짧고 자극적인 광고 영상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미디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요새 몰입해서 할 일이 별로 없었기에 집중력 자체를 스스로 없애고 있지않았나 싶었다.
이 책의 저자도 집중력의 위기를 느끼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부터 분리된 생활을 시도한다. 휴대폰을 통화만 가능한 기종으로 바꾸고,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노트북을 들고 오직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집중하고자 노력한다. 이후에도 많은 논문을 찾아보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깊게 고민한 흔적이 책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
저자는 구글 등 거대 테크기업이 집중을 할 수 없게 하는 사회를 조성한다고 말한다. 특히 '무한 스크롤 기술'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버튼을 찾아 누르지 않고 그저 아래로 내리면 되는 기술을 개발하여 무분별하게 컨텐츠만 소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 전체가 우리를 산만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과도한 업무량, 건강하지 않는 식단, 모자란 수면시간 등이 집중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다고 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 싶었다. 집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로 살펴본 것은 좋지만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느껴졌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집중력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대충 읽게되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 본인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집중력이 엉망이라는걸 보니 집중력 위기는 어려운 문제가 맞다. 개인이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할 수 밖에는 없었겠지. 이 현상 자체를 심도있게 다뤄준 것만으로 가치 있는 책일것이다.
그래도 집중력이 0에 수렴해가는 나의 요즘이 온전히 내 탓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주고 있어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p.21) 나는 우리가 집중력에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깊이 오해해왔다고 믿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집중이 안 될 때마다 화를 내며 내 스스로를 탓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게을러, 자제력이 없어, 정신 바짝 차려야 해. 그게 아니면 핸드폰을 탓하거나, 핸드폰에 격노하거나, 핸드폰이 아예 발명되지 않았으면 좋았을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사람 대다수도 똑같이 반응한다. 그러나 사실은 개인의 실패나 하나의 새로운 발명품보다 훨씬 심오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p.72) 일상 속에서 우리 다수는 그저 쓰러짐으로써 산만함에서 벗어나려 한다. 텔레비전 앞에 드러누움으로써 하루치의 과부하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p.82) 스키너는 이 원칙으로 인간의 행동을 거의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우리는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믿는다. 자신이 선택을 내린다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일지 결정하는 복잡한 정신을 가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건 다 환상이다. 우리와 우리의 집중력은 그동안 살면서 경험한 강화 훈련의 총합일 뿐이다.
(p.88) 그러므로 몰입 상태가 되려면 단일한 목표를 택해야 하고, 그 목표가 반드시 자신에게 유의미해야 하고, 능력의 한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여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해서 몰입에 빠져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데, 몰입은 특별한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몰입한 사람은 자신이 오로지 현재에 머무는 기분을 느낀다. 자의식이 사라지는 상태를 경험한다. 자아가 소멸해 목표와 내가 하나되는 느낌과 비슷하다. 내가 기어오르는 암벽이 곧 내가 되는 것이다.
(p.119) 집중력 개선을 위해 해야 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알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명백한 역설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많은 일이 따분할 만큼 뻔하다. 속도를 늦추고,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고, 잠을 더 자면 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정반대로 하고 있다. 속도를 높이고, 전환을 더 많이 하고, 잠을 적게 잔다. 우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행동과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행동 사이의 괴리 속에 산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그 괴리를 만드는가? 사람들은 왜 명백히 집중력을 개선해줄 행동들을 하지 못하는가? 어떤 힘이 우리를 막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알아내는 데 남은 여정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p.149) 독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도 그렇다. 딴 생각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조너선은 내게 "딴생각을 하지 못하면 다른 수많은 것들이 사라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딴생각을 많이 할수록 더욱 체계적인 목표를 세우고 더 창의적이며, 끈기 있는 장기적 결정을 더 잘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신이 표류하면서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삶을 이해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더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
(p.185) 그거 발명한 기능의 결과로, 총 20만 명이 넘는 인간의 삶(태어나서 죽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매일 화면을 스크롤 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시간들은 무한 스크롤이 없었다면 다른 활동에 쓰였을 것이었다.
(p.407) 이 책이 자기계발서였다면 유쾌할 만큼 단순한 결론을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책들은 매우 만족스러운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문제를 파악한 뒤 자신이 개인적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말한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도 저처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거예요. 그러나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며,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야 할 내용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즉, 나 역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음을 먼저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엉망이다.
(p.421) 집중력을 되찾기 위한 운동
먼저 세 가지 거대하고 대담한 목표에서부터 시작하려 한다. 첫째, 감시 자본주의를 금지해야 한다. 고의적인 해킹으로 중독된 사람들은 집중할 수 없기 떄문이다. 둘째, 주4일제를 도입해야 한다. 늘 탈진 상태인 사람들은 주의를 기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아이들이 (자기 동네와 학교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아야 한다. 집 안에 갇힌 아이들은 건강한 집중력을 발달시킬 수 없기 떄문이다. 우리가 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사람들의 집중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극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집중력의 단단한 기반이 생길 것이고, 그 기반 위에서 더욱 치열하게 싸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