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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Apr 13. 2022

달밤에, 이 무슨 개소리십니까?

[희곡 습작] 달 밝은 밤에 담너머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달밤에 마당에 통기타 하나를 들고 앉은 남자. 청년.


마당에는 담을 하나 사이로 뒤에 있는 이웃집들과 나뉘어 있다.

마치 미국의 시트콤 <Home Improvement>의 옆집 구조처럼.  


(커버 사진 출처: https://stockhead.com.au/aftermarket/unicorns-podcast-look-whos-moved-in-nextdoor/, 시트콤 Home Improvement의 한 장면)




청년은 달밤의 감상에 젖어 들어 기타를 퉁기며 발라드라도 한 곡조 해보려고 온갖 똥폼을 다 잡고 있다.

그러던 찰나, 어디서 동제 개가 짖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그러다 조금 더 거슬릴 정도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마당 너머로, 목소리로만 들려온다. 이웃집 식구들의 싸우는 소리다.


청년은 점점 거기에 흥미를 느끼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이 시전 하는 개소리에 몰입하게 된다.


처음에는 사다리를 가지고 와서 담 너머를 내다보지만 그냥 이웃집 안에서 나는 소리처럼 여겨져서 그는 다시 내려온다. 다시 앉아서 각을 잡고 기타 줄을 튕겨보려고 하는데 치고받고 육탄전을 벌이는지 우당탕- 하는 소리도 들려오고 갈수록 아주 난장판이다. 간간히 담 너머로 청년이 앉은 근처에까지 자잘한 물건들이 날아오기도 한다. 이를테면 신발 한 짝, 실내 슬리퍼, 신문 뭉치, 모자, 부침개 뒤지개 같은 일관성 없는 잡다한 물건들이다.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 청년은 들고 있던 통기타로 머리를 가리다가 이렇게 말한다.






청년:  아이고, 이러다 기타 부서질라. 이게 얼마 짜린데.


청년은 기타를 쓰다듬는다.

그러다 청년은 결국 담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청년: (큰소리로 외치듯 양손을 입가에 대고) 아, 거참 다 잘 밤에 시끄럽게 뭣들 하시는 겁니까? 이게 다 민폐라는 거 모르세요, 들?


목소리 1(장년층 남자): 그 짝은 빠지라고. 어디 남의 집안일에 껴들으려고 하고 있어?
목소리 2(장년층 여자): (목소리 1에게 하는 말) 당신이나 빠져, 당신이나! 남자면 다야? 이 잘 밤에 남우새스럽지도 않은지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어!


점점 무대는 어두워지고 퉁탕거리는 간헐적인 소리와 더불어 오로지 목소리들만이 들린다.


목소리 3(젊은 남자): 엄마나 아빠나 둘 다 다 똑같아. 진짜 이제 제발 그만 좀 하라고요.
목소리 4(젊은 여자): 이놈의 집구석은 바람 잘 날이 없지. 내가 나가고 만다 나가고 말어.


목소리 1&2: (동시에 외침) 이 다 잘 밤에 과년한 여자애가 어딜 싸돌아다니겠다는 거야?


목소리 4: 우와~ 방금 들었어? 이럴 때만 죽이 착착 맞아 합창도 기막히게 하지. 왜 다른 때는 이렇게 못하나들 몰라.


목소리 3: 엄마 아빠 하시는 말씀 못 들었어? 어디 과년한 여자애가 나갈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목소리 4: 야, 너나 잘하세요. 어디서 지도 꼴에 남자 새끼라고 엄빠처럼 굴으려고 해 이게 아주 그냥 누나한테 말야. 콱 그냥.
목소리 3: 그러니까 네가 비혼 비혼 하는 거야 이 노처녀 주제에. 누나 좋아하시네. 쌍둥이 사이에 누나가 어딨냐? 의사가 누구 먼저 꺼냈냐로 누나질이냐?
목소리 4: 야 너는 사회의 다양성을 존중해 줄 줄 모르는 구시대의 폐기물 덩어리야.
목소리 2: 아니 이놈의 자식들이 말 다한 거야? 어디서 어미 아비 앞에서 친 동기간에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거야?
목소리 1: 이게 다 당신이 끼고돌며 키우다가 저쪽 난 거 아니여. 이게 다 가장이 힘들게 밖에서 돈을 벌어다주면 여편네들이 조신히 애들을 지혜롭게 길러낼 생각들은 안 하고 말이야. 이러니까 결과물들을 좀 보라고. 그러다 어디 제비 새끼 한 마리한테 얻어 물려서 춤바람 나고 그 자식 밀린 월세까지 생활비서 꿍쳐서는 갖다 바치고 그런 호구 여편네가 세상에 어딨냐?


목소리 2: 아니, 여편네들이 뭐 어쨌다고요? 그게 벌써 언제 적 얘긴데? 어? 개미 콩만큼 벌어와서는 개밥 던지듯이 월급봉투만 던져줘 놓고 애들 자라날 때 변변한 지원도 제대로 못해주게 해 놓고. 그래 놓고 아주 박애정신은 남다르셔서 어디 가서 빚보증이나 덜컥 덜컥 서주고 오고.


목소리 3&4: 그래서 맨날 사채업자들한테 쫓겨다녔잖아 우리!
(으엉엉 갑자기 이들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목소리 1: 시끄러워. 다들 꼴 보기 싫어.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줬더니 여편네는 남편 알기를 개밥에 얹은 날파리만도 모르고 오갈 데 없는 노처녀 시집 못 갈까 봐 구제해주었더니만 말이야. 딸내미는 비혼인지 비건인지 지랄이고 아들이란 자식은 비트코인 설치다가 죄다 말아먹고. 이놈의 집구석이 바람 잘 날이 없다 이거야.
목소리 2: 당신 그런 거였어? 날 그렇게 감언이설로 꼬드기면서 별 볼일 없는 제까짓 거랑 결혼하면 용이라도 타고 승천할 듯이 해놓고서 나를 그렇게 구박하고 무시하더니.
목소리 3: 보태준 것도 없어놓고 내손으로 돈 좀 벌어본다고 투자하다가 한번 삐끗했을 뿐인데 그걸 두고 말아먹었다고 하면 어떡해 아버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목소리 4: 아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제가 아빠랑 엄마처럼 살까 봐 비혼 선언한 거예요. 제 대에서 끝내고 싶어요. 정말 지긋지긋하다고요. 비혼인지 비건인지 지랄이라뇨? 그렇게 생각을 하시니까 비혼과 비건도 구분도 못하시고 그렇게 비하를 하시니까 아빠 같은 기성세대들이 얼마나 우릴 힘 빠지게 하는 줄 알기나 아세요?





그러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담 너머에서 숨죽이며 아까 던져서 넘어온 신문 뭉치를 말아서 한쪽은 담벼락에 대고 다른 한쪽에는 귀를 대고 청진하듯이 듣고 있던 청년은 침을 꿀꺽 삼킨다.


청년: 어, 왜 갑자기 조용하지? 불안한데? 누구 하나 실려나가는 거 아냐? 가만있어봐, 119를 불러 놔야 하나?


갑자기 정적을 깨고 꽤 애 애액- 비명소리가 들린다.


청년의 눈은 휘둥그레 해지고 방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챙겨 나온다.

무대는 여전히 어두운 가운데 조명은 청년의 주변만을 원을 그리며 얼굴과 상반신만 드러나도록 비춘다.


청년: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니 무슨 집안싸움을 개싸움처럼 하냐? 신고해야 하나? 해야겠지?

(그러다 객석에 대고) 나 신고해야겠지? 선량한 이웃이라면 옆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두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거 맞지?

(다시 휴대폰을 쥐고) 가만있어봐 112... 아니 아니지, 119... 아 근데 아직 뭔 일이 난지 모르는데 그럼 둘 다 불러야 하나?

그 사이 다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목소리 1: 염병할! 이놈의 여편네가 미쳤나! 당신 아주 미친개야? 어디 눈을 부라리고 하늘 같은 남편 팔뚝을 물어뜯어 물어뜯기를, 뭘 잘했다고? 어? 네가 애 둘 낳은 거 말고 한 게 대체 뭐냐고?
목소리 4: 그게 대체 아내한테 할 소리세요? 아빠가 이러시니까 제가 결혼을 하기 싫다는 거예요. 결혼은 미친 짓이야 미친 짓! 또 모르죠, 무조건적으로 저한테만 충성한다고 목숨과 재산을 다 제 앞으로 바치는 남자면 몰라도 아빠 같은 가부장적 남자는 싫어요!
목소리 3: 목숨과 재산을 왜 너한테 바치냐? 그런 미친놈이 어딨냐? 미쳤냐? 재산을 바치게. 돈독이 올라가지고서는. 그나저나, 엄마, 괜찮아요? 엄마 아아 울지 말아요.
목소리 2: 별 개 쓰레기 같은 것들. 네 성씨 물려받은 것들 이 집안 따라지들 싹 다 보기 싫어. 썩 나가. 나가버려.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산다. (통곡하기 시작)




약간 어스름이 조명이 밝아져 있는 담 너머.


청년: (말아서 귀에 대고 있던 신문을 던지며)
휴우.. 그럼 그렇지. 신고 안 하길 잘했네. 저놈의 집구석은 뭐 식구들마다 돌아가면서 개소리냐?
(검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벼낸다)


그러다 진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로 인해서 청년은 잠깐 흠칫하다가 또 실없이 웃기도 한다.


청년: 아 진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진짜 개소리... 하 진짜...


왈왈- 왈왈왈- 점점 고조되는 개 짖는 소리.


목소리 1,2,3,4: 이제 하다 하다 개새끼까지 쳐 울고 지랄이야!


그러자 곧 그치는 개 짖는 소리.


청년: 아 나 진짜... (객석을 향해) 다들 들었죠? 진짜 이게 지금 완전 미친개들 아냐? (관자놀이에 양손으로 돌았다는 모션을 취하며) 뭐 이런 미친놈 가족이 다 있어? 이대로 두면 안될 거 같아.

나 진짜 한번 try는 해 봐야지. 츄롸~이.

이대로 그냥 두면 이 사람들 이거 안돼 안돼. 이웃된 도리로서 내가 신사적인 개입을 한다 내가 진짜.

 딱 잘 보라고 형 하는 거, 어? 잘 봐라. 형이 츄라이 해볼 테니까.


청년은 다시 사다리를 타고 담벼락 너머를 내다보며 소리친다.


청년: 아 진짜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싸움도 좀 작작들좀 하시죠. 애고 어른이고 진짜 개까지 짖고 진짜.


목소리 1,2,3,4가 저마다 내뱉은 소리들이 동시에 들려온다.

넌 누구야? 당신은 누구야? 쟨 뭐야? 야 이 자식아?


청년: 듣자듣자하니까 엄마 아빠는 완전 라떼 꼰대 가부장에 피해자 코스프레에 아들 딸은 완전 무개념에 그래도 되는 겁니까? 진짜? 게다가 거 애완견까지 너무 주인들 닮아서 시끄러운 거 아닙니까?


목소리 1,2,3,4: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여기까지 들리자 청년은 기가 막힌다.


청년: (사다리를 타고 선 채로 깔깔거린다) 아하... 아하하하하... 진짜 지금 누가 누굴 더러 개소리래.

저기요, 지금 좀... 되게... 콩가루 집안인 거는 아시죠?


갑자기 조용해진다.


머쓱해진 청년.


청년: (아차차, 말이 너무 셌나? 뒤통수를 긁적이며) 저.. 제 말은 그러니까. 너무 적나라한 가정사를 그렇게 아무리 화가 나셔도 이웃들도 다 듣는 귀가 있는데 오픈을 너무 많이 하시면 어떻게 하실 거냐 그런 말씀입니다.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한 가운데.


다급해진 청년.


청년: 아.. 그러니까, 제 말의 요지는.. (사다리에 올라 탄 상태에서 뒤돌아 객석을 향해 선다. 혹은 상체만 객석 쪽으로 돌리고, 그 사이 조명은 점 점 더 청년을 클로즈업하듯이 잡아주고)


청년은 이윽고 결심한듯한 표정으로 여전히 객석을 향한 상태에서.


청년: 저희 부모님도요.. 사실.. 제가 어릴 적에 많이들 다투시고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약간 PTSD가 있어요.


조용하던 가운데 갑자기 네 사람은 동시에 질문한다.


목소리 1,2,3,4: PTSD?


어랏? 하고 흠칫 놀라는 청년의 얼굴.


청년: 아 왜 그... (갑자기 엄청 과장해서 발음을 굴리는데 엄청 싼티나게) 포스트 트롸우마틱 스트뢰쓰 디스오더라고... 심각한 경험을 하고 나서 계속 그 비슷한 경험 하고 그러면 힘들어지고.. 아 왜 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그런 말도 있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게.. 말하자면요.
목소리 1,2,3,4: 아아~~ (바보 도 트는 소리)


그리고 다시 조용해진다.


청년: 그.. 그래서 말인데... 제가 (흠흠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썩 훌륭하진 않지만 여러분들 화 푸시라고 노래 한곡 해드릴 테니까요. 자장가 삼아 들으시고요. 싸우지들 마시고요. 빨리 화해하시고요. 제발 잠들 좀 자자고요.. 저.. 신... 신청곡도 받으니까요. 말씀해 보세요.


여전한 정적.


당황한 기색과 풀 죽은 기색이 역력한 청년의 얼굴 표정.


그때 갑자기 정적을 깨고 옆집 식구들은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한다.







목소리 1: 한 곡 가지고 되겠어?
목소리 2: 우리 노래 취향 다 다른데 식구 별로.
목소리 3: 난 클래식만 들어서 가사가 없는데.
목소리 4: 난 인디 취향이라 내 노래는 말해도 별로 모를 텐데.


그러고 나서


목소리 1,2,3,4가 저마다 서로에게 하는 비난이 뒤엉킨다.

인디 취향 운운하면서 어디서 야, 네가 밴드 음악을 알기나 해?
하하하 그럼 또 관광버스 뽕짝 매들리 타면 되려나?
당신 왜 그때 그 제비 새끼가 당신 꼬실 때 부른 노래 그거 신청하지 그래?
클래식 좋아하네 교향곡의 교자도 모르는 무식한 자식이 어디서 있는 척이야?


점점 절망하는 청년.

조용히 혼잣말로


청년: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터덜 터덜 사다리에서 내려오며) 아니야.. 잘못 생각했어. 말하는 게 아니었어. 괜히 벌집만 건드려서 다시 더 시끄러워졌잖아.


목소리들은 다시 저들끼리 말한다.

어? 사다리 치우는데?
내려갔어?
내려갔나 봐.


조명은 계속 청년을 비추는데 마당에서 터덜터덜 걸어서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닫힌 청년의 방문을 비추는 조명.


어이~ 거 총각~ 벌써 들어갔는가?
우리 아직 신청곡이 합의가 안돼서.
아 진짜 우리가 언제 합의한 적이 있어?
합의는 무슨, 합의는 이따가 나랑 당신이랑 날 밝으며 합의이혼하러 갈 때 쓰는 말이고!
아니 이 여편네가 어디서 이혼을 들먹여 하늘 같은 남편이 기회를 주려고 하는 마당에.





갑자기 부스럭 거리면서 방문이 열리고 다시 나온 청년은 기타를 들고 있고 밤무대 가수들이 입는 반짝이 재킷을 입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싼 티 나는 느낌.


조명은 어느새 노래방의 미러볼 돌아갈 때처럼 정신없는 색색들이 알록달록한 느낌으로 어느 정도 밝아진다.


청년은 아까 그 시작 부분에서 앉아서 기타 줄 튕기려고 하던 그 의자에 조용히 앉는다.

그러다가 한 번 드르릉- 하고 줄을 조금 튕긴다. 그러다 여기저기 튜닝을 하기도 하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조그마한 피크 주머니를 꺼내서 피크도 장착한다. 그 모든 행동들은 조금씩 과장되면서도 싼 티 나는 어딘지 조금 부족한 그런 느낌이다.


목소리 1,2,3,4는 갑자기 어린아이들처럼 환호하는데...


목소리 1,2,3,4: 아냐, 아냐 아냐. 다시 나왔어 나왔어. 우와 아아아 아아아 워 워 워!! (짝짝짝 등등 애드리브로)


갑작스러운 반응에 튜닝하다 말고 흠칫하는 청년.

그러다 스윽 입꼬리가 올라가며 손으로 한쪽 머리를 싹 넘기면서 우쭐거린다.


청년: (혼잣말처럼 그러다 객석을 바라보며) 아 나 또 은근히 또 인기가 있다~잉?

(하고 입을 살짝 벌리면서 과장된 윙크를 한번 날린다)


목소리 1,2,3,4: 에이, 윙크는 하지 말고!


청년은 헉! 하고 놀라다가 다시 고쳐 앉는다.

잔잔하게 기타로 반주 넣듯이 멜로디 만들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청년.


청년: 이 늦은 밤, 저를 찾아주신 관객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느끼한 멘트 날리며 반주 이어가고) 달밤에 바람 한점 없고 어디서 이웃에 개~ 짖는 ('개'에서 강세 넣어서 과장하고)...
아주 그냥 개~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이 밤....

이런 참... 으. 름. 드. 운...(어금니 악 물때 나오는 발음으로)... 밤이에요~ ('밤이에요'에서 갑자기 얼굴 표정 싹 바꾸면서 씩 웃는 식으로)

여러분의 평화와 저의 평화, 이 마을의 평화 그리고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마음 가득 담아.. 신청곡 한 곡 한 곡 정성 들여 바쳐.. 드리겠습니....


여기까지 말하고 있는데 다시 담 너머에서는 투닥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목소리 1: 내 노래가 먼저 나와야지 내가 명색이 가장인데.
목소리 2: 아이고 참... 그래 명색이 가장이 아주 벼슬이다 그래. 그래 봤자 또 매 그래 강변가요제 수상곡 그거 아냐 그거 대학 때 군대가 있는 동안 고무신 홀랑 거꾸로 신은 그 첫사랑이 좋아했다는 노래.
목소리 1: 어허! 지금 어디 사내의 로망에 흠집을 내?
목소리 3: 자빠졌다 기어나갈 생각하지 마. 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신청해야지~
목소리 4: 자꾸 그런 식으로 하시면 저 집 나가요. 홍대로 가요. 거기 가면 음악을 아는 사람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거든요.
목소리 1,2,3,4: (서로가 서로에게 외친다) 개소리들도 작작 좀 하라고.

아니 뭐야? 말 다한 거야?
이런 개 같은..
아 정말 개떡 같은 집구석!
진짜 개뼈다귀 같아!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
아이씨 나 나갈 거야!

(이런 식의 말들이 투닥투닥 들려오다가 다시금 와장창 투닥투닥거리다가 끼익 현관문 열렸다 닫히는 소리, 다시 몸싸움하는지 씩씩 거리는 소리 등이 들리다가 구겨진 종이 뭉치가 담 너머 청년의 뒤통수를 치고 떨어진다).


이미 혀를 내두르는 얼굴로  객석을 향해 앉아있던 청년은 뒤통수를 때리고 떨어진 종이뭉치를 주워서 편다.


청년: 하.. 진짜 뭐 이런 별 개떡 같은 밤이 다 있지?
이건 또 뭐야.. (부스럭부스럭 종이를 펼쳐본다) 이게 뭐야... 하... (실소하며)
이거... 진짜... 콩가루 집안이네에... (잠시 펼쳐서 아주 지저분하게 휘갈겨쓰고 직직 줄을 그어 지우기도 한 종이 면을 객석을 향해 보여준다) 이게 뭐냐면요.. 신청곡 적는다고... 적다가 합의가 안되어서... 하.. 나.. 참... 웃기지도 않네...


청년은 다시 구겨진 종이를 잘 펼쳐 놓고 의자에 앉아 기타를 무릎에 올린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잔잔한 연주를 시작한다. 노랫말은 없고 청년의 허밍이 함께 어우러진다. 그때부터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러다 허밍과 기타 선율은 점점 더 친숙한 멜로디로 바뀌는데... '잘 자라 우리 아기' 자장가 멜로디로 바뀐다.


연주가 끝나고.. 청년은 다시 싼티나게.


청년: 잘 자요- 우리 애기들~ (손 키스를 객석에 날린다. 이때 사전에 관객들과 합의되었다면 객석에서 몇몇 사람들이 우웩- 하는 등의 반응이 나오도록 한다)


어두워지는 무대.




다시 밝아지는 무대.

이미 새벽이 점점 밝아오려는 듯한 효과를 조명이 잡아둔다.

보아하니 청년은 잠시 기타를 치던 자세로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간간히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청년: (기타를 조용히 옆에 두며 하품을 하고) 아우, 벌써 날 다 샜네 샜어. 간밤에 편하게 못 잤더니... 찌뿌등.. 하네. 근데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조용해? 다들 자나?


담장 깨로 가서 노크를 시도한다.


청년: 저기요- (입으로 소리 내어서) 똑똑똑- 넉 넉 넉 (knock knock knock)-

(성대모사하며) '실례합니다~아앙~'

(아무 반응이 없자) 어라..?


다시 사다리를 가져다 담 너머를 본다.


청년: 안 보이네.. 불이 꺼지긴 했는데.


그러다 청년은 냅다 담을 아예 타고 넘어갔다.


무대에는 덩그러니 사다리와 담벼락 등만 보이고 그 너머로 넘어간 청년의 목소리만 멀리서 들려온다.


청년: 계세요~? 다들... 주무시는 거죠? 그렇죠?


잠시 조용한 정적.


다시 담을 넘어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청년. 내려오는 내내 피식피식 웃는다.

마당 한편에 세워둔 기타를 잡아드는 남자.


청년이 잠시 뒤돌아서 담벼락을 보다가 다시 기타를 챙기려는데 들려오는 이웃집 사람들의 단체 코 고는 소리. 점점 크게 들려온다.


'칫-' 하고 웃는 청년.


청년: 진짜 어이없네. 그렇게 치고받고 할 때는 언제고 다들 곯아떨어져서는...
집 나간다던 딸내미까지 가다 도로 왔는지.. (키득키득거리면서 객석을 향해 이야기해 주듯이) 아주 그냥 보니까 거실에 네 명이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더라고 치.. 그럴 거면 진작 좀 그러지. 괜히 개고생 했네.


청년은 기타를 챙겨서 자기 방문 앞에 다다랐다. 거기서 뒤돌아서 객석을 향해


청년: 에잇, 나도 이제 진짜 자러 들어간다 진짜. (객석을 향해 손짓하며) 그쪽들도 얼른 자요. 한참 늦었어 아주. 아유 진짜 못살아 이 동네 진짜 아.. (이런 류의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텅 빈 마당, 점점 어두워지는 조명. 끝끝내 청년이 앉아서 기타 치던 의자 부분에만은 조명을 비춰주다가 다시 어두워지고 코 고는 이웃들의 소리는 조금 더 과장되게 들려오고 그러다 끝에 가서 다시 강아지가 깨어나서 짓는 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내려오는 막.


잔잔한 기타 음악을 깔아주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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