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해 Oct 13. 2021

살고 싶은 곳도, 인간만큼 거기서 거기

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과 건축에 대한 건축학자의 다양한 분석을 담은 책이다. 별생각 없이 둘러보는 공간과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끔 한다. 특히 학교와 사옥에 관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접근은 한국의 건축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었지만 여전히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져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수직 공간에서 수평 공간으로 해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유효하지만, 좁아터졌으며 자원 하나 나지 않는 대한민국의 땅덩어리에선 애초에 어려운 설계이기도 하고.


공간은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쳐서, 이를 색다르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의식 전반(무의식까지 포함하여)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덧붙이며 책에 대한 서평은 급하게 마무리하고, 오늘 접했던 영상과 관련하여 전반적인 나의 생각을 전개해 보고자 한다(책에서 다루는 내용과 일부 연관이 됨을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0EbYER8T8

오늘 우연히 용산공원과 관련한 위의 영상을 봤다. 용산공원 문제와 관련하여 신동아아파트(용산공원 개발에 가장 큰 호재성 수혜를 받는 아파트다. 현재 시세 최소 25억 이상)에 거주하는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용산공원 부지는 백만 평에 가까운 넓이로 미국의 센트럴파크와 그 면적이 흡사하다. 그런데 최근 임대주택과 관련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여당이 이 용산공원 부지에 20퍼센트가량을 공공 임대주택 부지로 사용하겠다고 법을 개정하려 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는 건축법과 관련한 디테일 문제 등이 대두된다. 과밀 개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현행법상 500%로 규제한 용적률을 두 배로 늘린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용산공원에 관한 문제는 부동산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된다. '임대주택'과 관련되어 고질적으로 따라오는 문제나 편견, 계층 간의 갈등과 경제적 불평등, 임대 사업/공원 조성과 관련한 자금 문제, 평등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까지. 수많은 의견이 얽혀 있어 섣불리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긴 하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도 답을 내리자는 태도는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고(그러나 이 선을 긋는 행동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한 면피성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시간이 있다면 길지만 이 영상을 시청하는 것을 추천한다. 용산 투자자라면 공감을, 용산 투자자가 아니라면 생생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재산권이라는 문제로 직접적으로 연결된 그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임대주택을 당장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임대주택에 관련한 고질적인 편견, 이를테면 임대주택을 사는 사람들의 '민도(그것이 다르다는 게 사실일지언정 결국 거기서 거기인 인간인데.)' 차이를 비롯해 비용 문제, 미관 문제 등이 산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집값이 떨어진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자본주의의 성질을 대체로 긍정하는 나로서도 커다란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의견이 영상에서 언급되었다. (용산에 투자했던 이들이 그토록 싫어했을) '박원순 시장'의 발언이었음을 강조하며, '임대주택 지하화'를 아이디어랍시고 제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햇빛을 지하로 들이는 기술이라느니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그런 기술이 개발되고 지상에 온전히 백만 평짜리 공원이 들어오게 된다면 자신은 그 임대주택에 들어갈 것 같다는 식이다(아무리 가정이라지만 그 임대주택에는 절대 들어갈 일이 없는 신동아아파트의 주민이라는 것을 모순으로 꼽아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고는 해도 그런 식으로 위선을 떨어가면서까지 임대주택 백지화(대안으로 지하화를 제시당했으니 뭐)를 주장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솔직히 역겹기까지 했다. 절대적인 인구의 감소와 계층 간의 단절, 양극화가 불러오는 문제를 정녕 모르는 것인가? 돈이 없으면 서울 변두리에나 살라는, 용산 같은 고급 부지에는 발도 들일 생각하지 말라는 그들의 뻔뻔스러운 주장이 꼴사나웠다(실제로 댓글로 가득했던 의견이었다. 이 유튜버는 이미 거대한 자산을 형성했고, 구독을 한 사람들도 기득권이거나 지킬 재산들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의견이긴 하다). 


나 역시 끊어져 버린 사다리를 어떻게든 이어서 올라가겠다는 의지로, 이런저런 공부를 하며 자본주의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이었다. ('좋은 집'에 대한 열망이 특히 강한 나는 각종 호화 아파트 등을 리뷰하는 이 유튜버의 영상을 종종 보기도 했다) '끝없는 자유'를 부르짖으며 신자유주의가 제시하는 '아메리칸드림'에 열광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나일 수 있다는 믿음은 그러나 얼마나 저버리기 쉬운 허상이었던가. 

기득권은 모두가 평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계층 이동이 유연화된다는 것은 곧 기득권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약삭빠르고 영리한 그들은 계층 이동을 틀어막기 위해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수많은 방법들이 이미 시행되었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지역을 고수하고 임대의 형태로나마 그 지역을 침범하는 것을 방어하는 형식으로도 그것은 작동한다. 


카르텔을 번역하면 '고인 물'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서울의 센트럴파크 용산 공원의 아름다운 경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초석'이라는 그럴듯한 가치로 포장하여 그들의 이권을 지키고 자신의 구역을 '캐슬'화시키는 행동이 곧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몰락을 가져오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이 추측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중간 과정은 여타 경제서에 많이 드러나므로 생략한다.) 결국 경제의 팽창과 순환은 절대적인 인구수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논지가 너무 가벼워 보일까 간략히 보충한다. 먼저 <어디서 살 것인가> 297~298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만드는 자는 흥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소통하는 자가 발전하고 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새롭게 재건축되는 대형 아파트 단지 주변을 가다 보면 단지를 둘러싼 담장이 가장 크게 눈에 띈다. 톤유쿠크가 말하는 '성'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아파트 브랜드 이름에 '캐슬'이 들어가는 것도 있다. 이러한 벽을 세우고 성을 만드는 것은 소통을 막는 것이고, 이는 곧 갈등의 씨앗이 된다. 


최근 읽고 있는 책 <불쉿 잡> 내용에 따르면 기득권은 결국 불필요한 일자리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경제활동에 참여시킬 수밖에 없다. 호텔의 도어 맨이나 건물 관리인 등이 대표적인 직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없어도 되는 일을 하며 보수를 받고, 생계활동과 소비를 이어가면서 어떤 식으로든 경제에 기여한다. 이러한 직업 외에도 '불쉿 잡'의 숫자는 생각보다 거대해서 그들의 경제활동은 지구의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은 좋지만 '공존'이라는 가치를 내던질 때 그것이 자신의 파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는 계산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당부를 (협박처럼 들리긴 하나) 해주고 싶다. 알다시피 기득권은 다수가 될 수 없고, 다수의 분노가 가중될 때 어떤 식으로든 혁명은 일어나니까.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자라 혁명이 되어 세계를 뒤덮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이 균형을 잘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어쩌면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이고, 이것이 지금 한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람의 성격은 제각각이라지만 본질적으로 얼마간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살고 싶은 곳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이 문제가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초석이 될 수 있겠다.


이 의견이 가지지 못한 자의 저주 혹은 푸념(언더도그마성 발언)이라고 치부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감히 단정하건대 당신은 둘 중 하나다.

기득권이거나, 멍청이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