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리고 그 후
이어플러그라는 참 훌륭한 발명템과 계속해서 함께하며 곤두섰던 신경을 점차 이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소음이 계속 있기에 이어플러그와 함께 하는 중이라는 뜻도 된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소음은 계속되고 있다... 역시 안타깝게도 우리는 당분간은 여기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음에 대한 면역이 아주 조금은 생겼다는 것이다.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사라지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면서 어느 정도는 그냥 넘겨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자잘한 이유들이 있는데 그간 쌓인 이유들을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어느 날 한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우리가 사는 지역 번화가에는 클럽들이 있는데 어느 클럽을 불시 단속했더니 마약을 한 사람들이 대거 적발되었다고 한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 마약을 한 사람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었고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아래층 청년들은 술을 좋아했고 저리 친구들과 밤새 노는 걸 좋아하니 클럽도 다닐 것 같았다. 그렇기에 만에 하나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운이 나쁘면 괜히 그들과 트러블을 키웠다가 무슨 일이 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사건사고가 많은 층간소음 문제인데 홧김에 무슨 일이든 날 수 있는 것 아닌가... 과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애초에 배려 따위 없는 비상식적인 사람들로부터는 안전이 우선이다.
2.
이후로도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소음들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들려왔다. 그래서 하루는 실시간으로 집주인에게 또다시 연락을 했다. 언제든 연락 달라던 집주인은 그날도 역시 바로 답을 주었고 아래층에 연락을 해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또다시 집주인에게 불편한 연락을 해야 했기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고 아래층에 짜증이 가득한 상태였다. 그러나 몇 분 뒤 집주인의 메시지를 보고 우리는 빵 터지고 말았다.
‘전화를 안 받네요 썅노무 XX들이ㅎ’
참고로 우리의 집주인은 계약 당시 대면 계약을 요청했더니 지방에 살고 있음에도 바로 오케이 하고 몇 시간을 달려오신 쿨남이셨으며 한눈에도 우람한 체격의 중년 아저씨였다.
여하튼 생각지도 못했던 날 것 그대로의 문자에 우리는 저항 없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우리의 마음을 대신하는 듯 통쾌한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쯤 되니 확실히 깨달았다. 집주인의 전화도 무시하는데 우리의 배려와 이해가 얼마나 무의미할까. 기대가 사라지니 노력할 필요도 없었고 고민할 것도 없었다.
위의 이유들과 더불어 조금은 무뎌진 걸까? 여하튼 전보다는 훨씬 적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럭저럭 공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음이 새벽에 계속 들려오면 한 번씩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초연할 수는 없다.
층간소음이 주는 분노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이 참 무서운 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가 나면 매 소리마다 폭발 직전의 분노 상태가 된다. 전에는 이 상태로 층간소음이 줄어들기를 기다렸었는데 이젠 빠르게 방안을 찾는다. 금방 소음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버리고 이어플러그를 꽂거나 집주인에게 연락을 함으로써 이 유독한 스트레스 상황을 얼른 차단한다.
.
.
.
.
.
.
오늘도 또 새벽 두 시에 노래를 틀어놓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들은 집주인의 전화를 또 받지 않는다고 한다. 전화는 안 받아도 어쨌든 전화가 가면 실시간으로 조용해지긴 한다. 헛웃음이 난다. 이제 조용해졌으니 잠을 자야겠다.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겠지만 오늘은 오늘의 평화를 얻었으니 얼른 잠에 들어야지...
사이다 같은 후기가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현실은 늘 뜻대로 되지는 않는 법... 이 글을 마지막으로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신 전국의 이웃들에게 동지애를 느끼며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