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어 플러그를 사다
집주인의 새벽 실시간 주의 통보 이후로 아랫집은 제법 소음이 줄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수준이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큰 음악소리와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소리가 사라졌다고 해서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에 적어도 밤 ‘11시’부터는 조용해달라고 언급해서인지 그쯤 되기까지는 떠드는 소리와 생활 소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나는 또 새벽까지 그 소음이 지속될지 더 늦은 밤이 되면 그래도 조용해질지 알 수 없었다. 조용해지겠지 하며 참고 기다리며 새벽 2시까지 밤을 지새운 적이 이미 수차례였다.
이제 22시쯤 자리에 누우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음은 스트레스 시작 버튼이었다. 낮에도 여전히 음악소리와 커다란 말소리가 들릴 때가 있었지만 그 빈도가 적고 낮에는 내가 거의 집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패턴도 주로 저녁 귀가인 듯 늦은 저녁부터는 소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지 파티 수준의 고성방가가 아닐 뿐 여전히 그들은 조심성이 없었다. 소리치고 웃고 무언갈 두드리고 늘 떠들었다.
저런 그들에게 우리가 더 할 얘기는 없었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새벽이든 저녁이든 낮이든 층간소음은 피해가 될 수 있으니 너무 크게 떠들거나 너무 크게 음악을 틀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세게 뛰어다니지 않는 등 신경을 써야 한다 ‘라는 것을 스스로 학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정말 인지하지 못한 채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음 때문에 세 차례의 방문과 두 번의 집주인 연락까지 받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타인의 입장이라는 것을 결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현실적으로 우리는 타협을 해야 했다. 수면시간을 보장해야 했고 아랫집의 소음은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음은 조건반사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속수무책으로 손 놓고 스트레스를 정면으로 다 받아낼 수는 없었다. 수면의 질과 더불어 삶의 질을 끌어올려야 했다.
일단 이어 플러그를 대량구매했다. 노랗고 말랑말랑한 흔히 보던 제품이었지만 실제로 이어 플러그를 껴고 자본적이 없어 불편할 줄 알았는데 그보다 조용함이 가져다주는 편안함이 훨씬 컸다. 나도 모르게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펴지고 있었다. 고요 속으로 들어가며 몸이 이완되었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긴장하고 신경이 곤두서있었는가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렇게 이어 플러그와의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음이 날라치면 바로 이어 플러그를 꼈다. 그 소리에 신경을 쏟는 시간을 과감히 잘라내고 고요 속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안 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소음이 차단되니 금방 잠에 들어 그 뒷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조용한 밤에도 이제 자연스럽게 이어 플러그를 착용하고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듯 방음의 세계로 잠수했다. 소음이란 언제 부지불식간에 찾아올지 모르는 것. 증오로 내 마음의 에너지를 낭비하기 전에 이어플러그로 구멍을 틀어막는 편이 훨씬 안정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는 미간을 평평하게 편 채 잠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