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 are deeply moved

by your presence."

by 디디





“Others are deeply moved by your presence."


에너지가 바닥인 채로 그저 떠밀려 가던 것처럼, 전혀 기대도 설렘도 없던 여행에서 만났던 포춘쿠키 속의 저 문장. 나는 신이 내게 보내주신 문장이라고 믿는다.






최근 몇 년 전까지도 내 삶에 자부심이 있다면, 그건 내가 내 인생을 운전하는 주인이었고 핸들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핸들을 손에 꽉 쥐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주시하면서, 나는 그곳으로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래야 덜 억울한 거 아니야? 하며.




우연히 확인한 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내 진로에 대한 부모님의 희망직업은 3년 내내 교사였지만, 나는 작가였다가 시인이었다가 사회과학자였다. 보고 웃음이 나왔다. 한 번쯤은 교사라고 적을 법도 한데 내 고집도 참... 여하튼 나는 똥고집이라 내 인생에 대한 결정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진로 선택도 그랬고, 대학 선택도 그랬다.




결혼도 그랬고, 출산도 그랬다. 결혼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을 기다리고 설득해서 내가 원하는 때에 결혼하고야 말았고, 아기가 내 눈앞에 어른거리고 꿈에 나타나자 결심하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임신했다. 어려서 몰랐다. 임신이 하고 싶다고 다 되는 게 아닌데, 원하는 때에 임신하게 된 내 아이가 마치 선물 같았고 그러니 어떤 일에 항상 내 결심이 먼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삶에 후회가 없다고 믿었다. 남들 보기 어떨진 모르겠지만,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었으니까. 그걸 따라서 왔으니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슴 벅차게 행복하기도 했고,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다가, 다시 나의 일로 돌아가려던 그때. 어떤 시를 읽고 나는 인정하게 되었다. 시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내 선택에 자신감 넘치던 내게도 후회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나는 엉엉 울고 말았다. 이제 막 꿈에서 깨어난 듯, 현실의 내가 너무 초라해서. 현타라고 하나. 내가 이 세상에서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거구나,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이렇게 된 건가? 하는. 목숨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아이들도 어쩔 수 없는 타인이라는 걸 깨닫고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지금도 그 느낌을 떠올리니 목이 멘다.




그 느낌을 발로 딛고 쓰디쓴 현실감을 삼키며 나의 일을 열심히 하던 중에, 내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버리는 사건을 겪었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치달았다. 당황했고, 무서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내 역할은 해야 하니까,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매일 아침 따뜻한 물에 샤워하며 욕조 속에서 기도했다. 충격받은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출근하고 퇴근하던 몇 개월.




온 가족이 여행을 가야 하는데 아무 준비도 할 수 없어 남편에게 모든 걸 맡겼다. 우리 집에서 여행을 가면 내가 다 주도하고 계획을 짜는데 그때는 그럴 틈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비행기에 실려가듯이, 에너지 0%로 그곳에 갔다. 여행지에 가서도 나는 다른 사람이 짜준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해주시는 음식을 그저 먹고, 잠을 많이 잤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그렇게 수동적인 때가 없었다. 핸들을 그냥 놓아버렸다. 잡고 있을 힘이 없어서.




가족들과 함께 간 중식당에서 포춘쿠키를 뽑았는데, 저 문장이 나왔다. "Others are deeply moved by your presence." 어이가 없었다. 내가 이만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때가 없는데,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너무 웃기다고 남편한테 보여줬더니, 상황을 알고 있는 남편도 황당해했다. "뭐야~"




처음엔 어이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presence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존재만으로. 존재만으로. 내 존재만으로. 그냥 moved가 아니고 deeply moved. 왜? 왜 이런 시기에 이런 문장이 나에게 왔지?




우연이라고 말하기엔, 내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존재만으로 내게 감동을 받는다니. 내가 실수했다고 생각하고 벌벌 떨고 있던 나에게, 견디느라 에너지가 모두 떨어져 아무 의지도 실행도 할 수 없는 나에게, 나를 비난하느라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나의 존재만으로도 깊이 감동받는다니.




붙잡고 싶었다. 신이 나에게 주신 위로인 거라고.




실제로 아무 기대도, 설렘도 없던 그 여행은 너무나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하늘과 구름을 실컷 보고, 깨끗한 바람을 한껏 맞았으며, 친절한 가족들과 24시간 함께 했고, 보고 싶었던 친구를 수년 만에 만났다. 내가 소진되는 사건과 여행계획은 별개의 일이었지만, 어쩜 타이밍이 그랬는지 나는 그 시간 동안 위로받고 충전되었다.




그 뒤로도 몇 개월이 더 필요했지만, 자기 비난이 지긋지긋해질 때쯤 나는 멈추기로 했다. 그만하자. 나한테 그만 뭐라고 하자. 그렇게 애쓰고 최선을 다한 것도 사실이잖아. 끝까지 있었던 것도 나였잖아. 그러니까 나를 그만 힘들게 하자, 하고. 여행에서 만난 시간들과 문장은 나를 도와주었다.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손에 쥐고 운전했다고 생각한 내 인생도 100% 만족할 수가 없다. 사람이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지,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인지... 그런데 정말 그 핸들이 내 손에 있던 것은 맞나? 내가 착각하고 있던 건 아닌가? 이제는 그런 느낌이 든다. 철부지 같은 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이리로 저리로 가니까, 나를 사랑하는 신이 내가 다칠까 봐 이렇게 저렇게 막아주고 보호해 줬다는 느낌. 불쌍한 저 애를 어쩌나 싶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줬고, 일상 속에 스치는 작은 것들에도 감동받게 해 줬고, 가끔은 어떤 문장들을 내 마음에 들어오게 해 줬다는 것.




신에게 내 인생의 핸들을 맡긴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신이 내게 직접 얘기해 주면 좋으련만, 왜 이렇게 안갯속을 걷는 느낌으로 더듬더듬하며 가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으니까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에 그냥 충실해본다. 그의 선함을 믿으며, 그가 나를 이끄는 그 길에 또 어렵고 힘든 일들을 만나도 그때처럼 눈 꼭 감고 견디며 지나가다 보면 내 삶 곳곳에 숨어있는 그의 뜻과 위로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대신 마음을 담는다. 나를 향한 그의 말을 어디에 숨겨두셨는지 궁금해하며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한다.


감사해요, 하나님. 제 손 꽉 붙잡아주세요.

저는 이제 믿고 그냥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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