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엄마가 나한테 머리 자르는 거 큰 결심일 텐데 어려운 결정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아이가 7살 때였다. 라푼젤이 되고 싶었던 우리 첫째는 머리를 계속 길렀다. 고개 숙여서 머리 감는 걸 오랫동안 무서워했고,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나는 아기 때처럼 아이를 안고 머리를 감기곤 했다. 그런데 몸집이 점점 커지고, 머리도 점점 길어지니 그렇게 안고 감기는 게 너무 힘들어졌더랬다. 그렇게 하다가 아이가 다칠까 봐 무서웠고, 이제는 나이도 꽤 되었으니 방법을 바꿔보자 싶었다.
머리카락을 좀 자르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아이는 싫다고 했다. 라푼젤이 꿈인데 쉽게 잘라서야 되겠나. 나는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머리 감기는 게 너무 힘들고, 이렇게 머리를 감는 건 위험하다고. 머리를 다듬으면 더 예쁘게 기를 수 있다고... 온갖 가능한 말로 설득했었겠지? 사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원활동을 했던 고아원의 아이들이 머리를 빡빡 밀리고 나서 울던 장면이었다. 아이들은 예쁘게 기르고 싶어 했는데, 고아원에서는 일일이 아이들을 케어하기가 힘들었고, 그곳은 빈대와 이가 아주 많은 못 사는 나라였으니까. 기관에서 아이들의 선호를 반영해 주기는 어려웠다. 그런 아이들이 무척 안타깝고 안쓰러웠던 기억.
아직 어린아이지만, 머리카락은 아이의 것이었으니까 억지로 자르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서러울 것 같아서. 네 몸은 네 거야, 네가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나. 자기주장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아이는 자기 머리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설득에 설득을 하다가, 마지막엔 머리카락을 자르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꼬시기도 했다. 정말 어렵게 허락을 받아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을 땐 얼마나 기뻤는지! 세상 제일 어려운 상대가 우리 집에 있었다. 진심으로 고마워서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드디어 아이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왜? 아이스크림 사줘서?"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아니. 나한테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대답했다. 순간 심장이 덜컹, 했던가 두근, 했던가.
7살 어린아이라서,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는 너무 귀여운 꼬마인데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어서 놀랐던 기억. 엄마가 고맙다고 말해주는 게 고맙구나. 이제 그런 생각을 할 줄 아는구나. 아이스크림보다 그게 더 고맙다니. 우리 꼬마가 부쩍 큰 것 같기도 하고, 어리지만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그때 내 마음은 참 복잡했던 것 같다.
자기 전에 하는 기도에서 저렇게 말했다. "하나님, 엄마가 나한테 머리 자르는 거 큰 결심일 텐데 어려운 결정 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7살 어린이. 아이스크림이 제일 좋을 때일 것 같은데, 엄마의 한 마디를 고마워하는 우리 예쁜 어린이.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가볍게 볼 수가 없다. 작고 어리지만 다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건, 어른들이 아이들을 다 몰라서- 혹은 자신의 옛날을 기억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 어린이들에게, 그렇게 다 느끼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넌 어리니까, 여긴 들어오지 마."라고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받을 상처와 모멸감을 어떻게 책임지시려고. (노키즈존 이야기하면 나는 또 열이 오르니까 여기까지.)
라푼젤이 되고 싶었던 어린이는 앞머리를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고민한다. 매일 이 옷을 입었다가, 저 옷을 입었다가 어떻게 입으면 예쁠지 따져보며 거울 앞에 선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이 한창 신경 쓰일 10대 언니가 되었다. 그래도 늘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 눈에 네가 어떻게 비치든, 너는 정말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엄마한테 이만큼이나 소중하니, 너는 너 자신을 꼭 더-더-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