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와서 꼭 일하길 바라요.”

by 디디

“고향에 와서 꼭 일하길 바라요.”




지방에서 19년 살다가, 서울에서 7년 살다가, 경기도에서 13년 넘게 살고 있다. 나는 태어나서 19살까지 자란 나의 고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만난 나의 사람들과 추억들은 소중했지만, 나에겐 그곳이 너무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직장 때문에 자리 잡은 곳이라, 우리의 고향은 서로 다 달랐다.




그런 나에게 ‘고향’이란 단어가 각인된 것은 스물두 살 때쯤인가- 나중에 꼭 고향에 와서 일하라던 한 분의 말씀 때문이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겐 해결하지 못한 숙제처럼 남은 말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대학생들이 해외자원활동을 가던 게 유행이었다. 자원활동에 관심 있었던 나는 재학 중에 가난한 지역의 공부방 교사 활동을 했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지만, 돈이 삶에 미치는 영향과 차이를 보는 것은 즐겁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선진국이라는데,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는지가 이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또 어려서, 자원활동과 내 삶의 비중을 가늠해 보는 내가 별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데, 지금보다도 훨씬 이상을 꿈꾸던 어린 나는 내가 어디에도 발을 제대로 들이지 않는 느낌이었나 보다. 그런 고민 중에 대학내일에서 해외자원활동 모집글을 보고, 포스터 속 어린아이의 눈빛에 가슴이 마구 두근거려서 “아,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일로 갑자기 휴학을 했던 나는 휴학한 김에 해보자 생각하고 1년 뒤에 도전했다. 고향에 있을 때였고, 나름 규모가 있는 봉사단체에 지원했다. 서류를 통과하고, 고향의 자원봉사센터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분은 내 면접을 담당하셨고, 자원봉사센터장님이셨다.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셨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의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했겠지.




면접을 마칠 때쯤이었나, 합격 소식을 듣고 그다음번에 뵈었던가.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분은 처음 보는 나에게 여러 가지를 주셨다. 봉투에 든 10만 원, UN 무슨 기념 메달과 본인이 받으셨다는 물건들을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학생같이 똑똑한 학생들이 다 서울로 가면 지방에는 인재가 없어요. 좋은 경험하고 와서 나중에 꼭 고향에 와서 일하기를 바라요.” 하고.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호의를 보여주는 것도 놀라웠고, 어떤 미션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깔끔하고 젠틀하고 차분한 중년의 남자분이셨다. 나는 고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능력을 쌓고 나서 고향에 가서 일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고향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더 실감했다. 좋은 그림은 서울에서 잘 배우고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데, 그러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늘 생각한다. 어린 나에게 보여준 낯선 이의 호의와 마음을. 나도 나보다 어린 이에게, 젊은 이상을 품고 나아가려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격려해 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게 쉬운 것 같아도 쉽지가 않더라. 누군가는 왜 한국에도 어려운 애들 많은데 외국까지 가냐고도 했고, 추천서를 써주던 선생님은 도대체 이런 걸 왜 하냐고 물으셨었으니까.




한 때의 이상이어도 , 그때는 그걸 따라가 보는 것도 삶에서 소중한 일이라는 걸 꼭 응원해 줄 것이다. 그때 떠나서 경험한 5개월의 시간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큰 근거를 만들어줬으니- 내가 그랬다면 내 뒤의 어린 이들도 그럴 수 있을 테니까. 믿어주고 응원해 줄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고, 고향에 가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한 번씩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내가 있는 곳에서 소외된 자가 누구인지, 여러 혜택에서 배제된 자가 누구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그것도 쉽지는 않지만, 남겨진 말을 쉽게 잊지 못하는 나로서는 내 자리에서 나름의 노력을 해보고자 한다.




그때의 내가 마흔이 되었으니, 그분은 60대이시려나.




소장님. 제가 인재는 못 된 것 같지만, 그래도 삶에 그저 휩쓸리듯 살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때 배운 것, 받은 마음들, 인생에서 소중한 것을 생각하면서요. 받은 것이 있기에 주려고 생각하게 돼요. 저도 주는 사람이 될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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