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떨어질 때도 되었어.”

by 디디

"이제 떨어질 때도 되었어."




불합격의 결과 앞에서 그 어떤 말보다도 내게 위로가 되었던 말.




나는 분명 들떠있었다. 지방의 조용한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어떻게 공부하다 보니 내신보다는 모의고사 성적이 더 잘 나왔다. 과외는 받아본 적 없고, 수학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짧게 단과학원을 다녔지만 주로 혼자 공부하고 학습지를 풀었다. 안 그런 애들도 있었겠지만, 내 친구들은 주로 다 그랬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떡볶이 먹고, 야자하고 그랬다. 교육열이 세지 않았고, 시골학교의 아이들은 착했기 때문에 나는 경쟁의 압박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나에겐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저 친구만큼 성적이 안 나오지?라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지만, 전국의 수많은 애들을 두고 바로 옆의 내 친구를 적으로 여기는 건 바보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친구가 소중했기 때문에. 모르는 건 서로 알려주고, 서로 격려하며 지나왔던 수험기간. 매일 늦게까지 야자 하면서 내가 가고 싶은 학교와 학과를 생각하며, 가고 싶은 동아리까지 정해두고 나름의 목표에 열심을 다했다. 수시에선 떨어졌지만, 정시에 합격했고 동아리카페에 먼저 그 소식을 알리는 바람에 동아리 선배들은 내가 입학하기도 전에 한 신입생의 존재를 알았다. (아, 부끄럽다.)




나에게 공부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책을 매번 사다 주셨다. 공부를 좀 하니까 그때 부모님들이 그러셨듯이 교사를 추천했지만, 고집쟁이인 나는 3년 내내 다른 과를 주장했다. 시골학교의 장점을 안고 원하는 학과를 중심으로 썼던 서울과 경기권 대학 3개에 다 합격하고, 아빠에게 알렸던 때가 떠오른다. 아빠도 담담하게 축하한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에선 내가 대학에 처음 가는 사람이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나는 대학에 가서야 천천히 깨달았던 것 같다. 서울의 학교에 입학하고 초반에는 시골학교의 장점을 얻었던 게 스스로 반칙처럼 느껴졌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보고 나서는 그건 내 권리였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그 아이들이 다녔던 학원, 그 아이들이 했던 과외, 그 아이들이 누렸던 문화사회경제적 이점들은 분명 서울과 도시의 것이었다. 나도 그런 수혜를 받았다면, 나도 저 정도는 했으리라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떳떳하기로 했다. 너네랑 나랑 다른 거 없어. 네가 더 잘하겠지만, 나도 내가 했던 노력 + 다른 환경이었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어. 뭐 그런 마음.




대학생활은 즐거웠고, 가정사에 휴학도 했다가, 내가 원하는 활동도 하고,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을 때... 대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대학원은 내 돈으로 가자.' 생각하고는 관련 자격증으로 임용고시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학부 수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임용고시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노량진 학원도 가고, 임용시험공부를 몇 개월 하던 중 TO발표가 났다. 전국에 7명. 이건 될 자신도 없고, 된다고 해도 어디로 발령 날지 모르는 상황. 임용시험이 가장 원하는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미련 없이 노선을 바꿨다. 대학원 가야겠구나, 하고.




그렇게 급하게 대학원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재수, 삼수도 한다는 그 전공에 어쩌다 바로 붙어버렸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냥, 교직과정을 이수할 때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실습수업에서 발표를 자원했었는데 그 수업의 교수님께 추천서를 받았던 것이 유효하지 않았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교수님과 나의 지도교수님이 업무적으로 가까울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그 수업에서 발표를 자원하지 않았다면, 추천서를 받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고, 추천서를 받지 못했다면 대학원 입학도 불투명했을 것이고...라고 생각하니, 어쨌든 열심히 한 내가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니 어린 나에게는 성취감 획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학부 때는 성적장학금도 두 번 받아서, 그 돈은 두고두고 내 용돈으로 쓰기도 했다. 나는 분명 둥둥 떠있었다.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내가 노력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아침 일찍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대학원 생활도 젊은 체력과 엉덩이 싸움으로 해나갔다. 수업과 과제의 연속, 조교생활까지 빡빡했지만 하고 싶은 공부니까 긴장 속에서 하나씩 해치웠다. 그러면서 성취의 압박에 숨이 찼던 것 같기도 하다. 프로포절을 앞두고 블랙아웃도 한 번 경험하고, 수업에서 발표를 못해서 "저 못하겠어요." 하기도 했으니까.




졸업 시점에 나는 원하는 공부과정을 위해 준비했다.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 곳만 생각했고 틀림없이 되리라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교만했다. 주변 사람들도 너는 될 거라고 했고, 나는 되고 나서 원하는 공부를 할 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보기 좋게 똑- 떨어졌다. 그곳이 아니면 안 가리라 생각하고 다른 곳은 지원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겐 다른 결과를 기다릴 기회도 없었다. '어? 이제 어떡하지?' 하고 너무 당황했다. 불합격의 상황을 0%도 생각하지 않았던 건지, 당황해서 멘붕이었다. 20대 중반의 나야, 어쩜 그럴 수 있었니.



그런 나에게 친한 선배가 해준 말이었다.

“이제 떨어질 때도 되었어."




그때의 나는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성취들에 취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내가 아는 세계는 넓지 않았으니까. 그 안에서 나는 분명 겸손하지 못했고, 은연중에 그런 것들이 티가 났는지도. 내가 무척 좋아했던 선배가 그런 나를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다가 내뱉었을 그 한 마디.




그런가. 지금까지는 한창 붙을 때였고, 지금은 떨어질 때인가. 내가 그 선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나에 대한 그 선배의 선함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의미 있게 곱씹었던 것 같다. 그냥 그런 때가 온 거라고,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떨어질 때가 있는 것인지, 그 뒤로는 자꾸 떨어지기만 했다.




20대 초중반은 붙기만 했었는데, 그때부터 30대 중후반까지는 자꾸 떨어졌다. 결혼과 출산, 육아의 시기가 겹쳐있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그 길을 가려고 하는데 자꾸 떨어졌다. 처음에 떨어질 때는 충격이었고, 그래서 선택지를 넓혀가는 데도 떨어졌다. 자꾸 떨어지니까 충격의 정도도 줄어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때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이 때는 언제 끝나는 것인가, 그 선배는 내가 붙을 때도 이야기 좀 해주지, 하고.




영화배우 조여정이 영화에 대한 자기 마음은 짝사랑이라고 표현한 걸 보고, 내 마음도 그렇구나 싶었다. 나만 하고 싶어 하고, 나만 좋아하고, 나만 가까이 가려고 하는 짝사랑. 이게 뭐라고 자꾸 떨어지는 거야... 그런데 돌아보면, 또 이유가 있었다. 그 면접에선 내가 말을 이렇게 한 게 실수였구나, 이렇게 한 게 잘못이었구나 하고. 내가 경험한 세계에서 나는 우물 안 작은 개구리였던 거고,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다양한 측면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지금은 내가 원하는 일 그 언저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모르겠다는 거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매일 고민하고 질문하는 게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답이 얻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그냥 일단 한다. 매일 아침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지.' 생각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쌓이면 경력이 되겠고, 그러다 뭐가 잡힐 수도 있겠지 하면서. 이건 붙은 건가, 떨어진 건가.




지금의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떨어져도 된다는 것. 그래도 내 인생이 그렇게 크게 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이 있다. 다른 길도 차근차근 걸어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또 좋은 누군가를 만나고 배울 수 있다. 내가 처음 원했던 그 길을 가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한다. 그리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분명 잘못한 것도 있겠지만, 세상 모든 일이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 불합격한 누군가에게, 떨어진 누군가에게 '네가 더 열심히 했어야지.'라는 말을 나는 할 수 없다.




있잖아-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야. 나는 그때를 알 순 없지만, 너에게 이런 시간만 있지는 않을 거야. 이 시간 속에서도 너는 하나의 과정을 지나고 있고, 배우고 있는 거야. 누군가는 이런 마음을 정신승리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너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네가 어떤 마음으로 살지는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니겠니. 처음엔 괴롭지만, 그게 니 인생이 망하는 걸 뜻하는 건 아니야. 괜찮고, 괜찮을 거야.




누군가에게 말해주면서, 나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더 친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자랑스럽다고 말하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나에겐 애틋하게 느껴지는 내 걸음들. 그렇게 걸어와서 만든, 나만의 사랑스러운 내 인생. 괜찮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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