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엄마는 어디서 이렇게 예쁜 내복을 샀니?"
시어머님께서 우리 아이들 내복을 보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렇게 특별난 내복도 아니었는데, 요즘 애들 내복 디자인이 예뻐 보이셨는지 좋아하며 하신 말씀.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또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나도 나중에 며느리가 생기면 저 대사를 꼭 따라 해야겠다며 한 글자 한 글자 깊이 꼭꼭 씹어먹었다.
그러니까, 그건 내복 칭찬이 아니라 내 칭찬이니까. 그냥 흔한 내복 중의 하나일 뿐인데, 며느리가 어디서 이렇게 예쁜 내복을 사 온 건지 감탄하신 거니까. 나는 그냥 애를 키우고 있을 뿐인데, 칭찬받은 거니까.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는 어른에게 더 큰 어른의 칭찬은 귀한 거니까.
남편이 나를 시댁에 처음 데려갔을 때부터 '검소함'을 강조한 우리 시어머님은, 검소하고 담백하신 분이다. 결혼 기간을 돌아보면 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어머님은 시어머니이고 나는 며느리인 그 관계를 적당한 상식 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나를 향한 어머님의 태도가 좋았다. 다행히 나는 어머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치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님은 유독 아버님한테 짜증을 더 내셨는데, 살다 보니 그것도 이해가 되더라. 대체로 무던하고 무감한 이 집의 남자들은 짜증 정도는 내줘야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의 다급함과 중요함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건 우리 남편도 그렇다.) 절대 집에서 노는 법이 없으신 시아버님과 각자의 생활로 바쁜 아들 둘을 키우는 우리 어머님이 몇십 년간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며, 나는 시댁에 가면 의도적 수다쟁이가 되곤 했다.
당연히 처음엔 어색했지만,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이제는 할 말도 많아졌다. 에피소드 하나. 아이들이 어릴 때, 시댁에서 밥을 먹는데 어머님께서 친구 딸이 애 키우는 거 너무 힘들어하더라며, 우리 며느리는 별말 없이 키우던데 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고 말씀하셨더랬다. 듣고 있던 형님께서 "동서라고 안 힘들겠어요? 말을 안 하는 걸꺼에요.“하고 내 편을 들어주셨고, 기회를 얻은 나는 "어머님, 저도 몇 번 울었어요..." 했더니 순간 숙연해진 밥상.
그래서 그랬나. 어느 순간부터 어머님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다. "우리 OO, OO는 엄마가 잘 키워서 잘 컸지." 하고. 아는 이 하나 없었던 동네에서 울며 웃으며 오로지 혼자 둘을 다 키웠으니까, 나도 그런 자부심은 있었다. 내 손으로 키웠다는 자부심. 그래도 잘 큰 건 다 내 덕은 아닌데,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은 아버님도, 친정엄마아빠도 해주지 않는다. 내 아이들 키우면서 누군가에게 꼭 그런 말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인정받은 기분이 들고 내 수고를 알아주는 느낌이 드는 건 나도 어쩔 수 없지. 내가 그 말에 편안함을 느끼는 건, 우리 아이들이 지금 그대로도 괜찮고 멋있다는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거나, 사람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거나, 그래서 이런 걸 해야 한다 등등... 어떤 요구나 기대를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시고 인정해 주는 느낌이어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담백함은 어머님을 닮기도 했다.
치매예방을 위해 컬러링북을 하신다고 보여주셨는데 색연필 색깔이 너무 적어서, 남편에게 큰 거 사드리라고 했다. 120색이었나, 160색이었나... 아들 덕분에 이런 것도 써본다고 엄청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나도 나중에 더 나이 들면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할머니.
어머님,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저는 어머님이 진심으로 좋아요.
좋아하는 어른이 제 곁에 계셔주신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사는 게 든든한 것 같아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아이들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증손주 낳고 키우는 거 까지...
곁에서 다 지켜봐 주세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