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연애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 뿐이다. 대학 때 만난 첫사랑, 첫 번째 남자친구와 지금의 남편이 된 두 번째 남자친구. 첫 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너무 슬펐던 나는 '두번째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말아야지. 결혼할 사람이랑 연애해야지.'하고 어리지만 굳건한 결심을 했고, 그걸 실행으로 옮겼다. (와우!)
내가 어려서 그랬는지, 4년의 연애가 길었는지, 내가 그 애를 많이 좋아했던 건지... 첫사랑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좋아하고 나서 감정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헤어짐을 말하고, 펑펑 울었다. 그 순간이 믿어지지 않아서. 세상에서 가장 친한 내 친구를 잃어버린 느낌. 나는 그게 너무 슬펐다. 연애고 뭐고 다신 하지 말아야지.
나는 친구라는 선이 분명하면서도, 친구를 무척 좋아하고, 동성친구들과도 잘 싸우지 않는 사람이다. 한 번 절연했던 친구가 있지만, 그 일을 두고두고 마음속에서 불편해했다. 그런 내가, 내 마음 가장 가까이 두었던 사람과 헤어지는 일은 큰 충격이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가 왜 그랬을까 싶고 이별도 하고 또 하면 그 마음도 무뎌졌을텐데 싶지만, 나는 다시 돌아가도 그랬을 것 같다.
여튼 첫번째 남자친구였던 첫사랑과 두번째 남자친구였던 남편. 그 둘이 전부인 나의 연애. 데이터가 많이 없으니 비교할 것도 별로 없지만, 일단 그 둘은 외모가 다르다. 첫 번째 남자친구는 마르고, 무쌍에, 키가 작지 않은 편이었다. 두 번째 남자친구는 통뼈에, 큰 눈에 진한 쌍꺼풀, 키가 작은 편이었다. 내가 외모에 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막내에, 악기를 잘 다루고, 다소 엉뚱한 면이 귀엽기도 하고, 권위주의적인 남성상, 그러니까 마초같은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번째 남자친구와는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만나서, 이런 게 썸인줄도 모르고 썸을 타다가, 그 아이의 고백으로 자연스레 연애를 시작했다. 군대와 해외활동이 걸쳐진 4년의 시간동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더 좋아했을까 싶지만 이제는 모두 과거이니 그것도 별로 중요하진 않다. 구름 위를 걸어다니는 행복감, 순진하고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었던 한 때의 추억으로도 충분하니까.
두 번째 남자친구와는 친구의 소개팅으로 만났다. 첫 만남에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나는 정말 씩씩하고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 눈에도 나를 좋아라하는 게 눈에 너무 보였다. 예전같으면 그런 것도 싫었을텐데, 그 때의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내 눈도 그리 믿을 게 못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눈에 선하게 보이는 그 마음에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그렇게 만나고, 연애하다가, 결혼했다. 진짜 인생은 타이밍.
그 두 사람이 나에게 같은 말을 했다. 첫 번째 남자친구에게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대학생이지만 빠른 년생으로 친구들과 다른 우리의 처지에, 다소 풋풋하고 감상적인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 뭐 그런 동질감 같은 거 아닐까 생각했다. 어렴풋이 '얘가 나를 많이 좋아하나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우리의 외모는 너무 다르지만, 우리 마음이 비슷했을까 싶은.
두 번째 남자친구, 그러니까 남편이 저 말을 했을 땐 속으로 많이 놀랐다. '이거 뭐, 어디 영화에 나오는 멘트인가?' 하고. 사실 남편과 나는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나온 채로 태교여행을 갔을 때, 강원도 시장의 아주머니들이 "왜 남매가 손을 잡고 다니냐."라고 하셨더랬다. 남편을 처음 보여줬을 때 우리 엄마는, '지랑 똑 닮은 사람 데리고 왔네.'라고 생각하셨다고. 남편은 나에게서 자신과 닮은 얼굴을 본건가.
말한 사람은 그들이고, 듣고 나서 이 말을 간직한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나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내가 좋은 사람들과 연애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마음 가까이에 두고, 진실하게 대해줬다는 느낌이 든다. 가벼운 연애가 나쁜 건 아니겠지만, 나를 가볍게 생각했다면 나는 상처받았을 사람이라- 소중히 대해준 느낌이 나에겐 소중하다. 돌아보면, 실제로 두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다.
첫 남자친구는 나에게 가로등 같았다. 낯선 곳에서 수업을 듣고 나오던 날, 말도 없이 가로등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모습은 모든 게 생경하고 어색했던 그 때의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이 곳 지리도 모르면서 여기까지 어떻게 온거냐.' 타박하며 내가 걱정되어서 왔다고. 내가 좋아하는 애가 나를 걱정해주니까 나는 참 행복했지.
남편은 나에게 스케치북 같은 사람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나는 그리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의 마음인데, 남편은 그 어떤 비판이나 참견도 없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하얀 백지 그대로 내어주는 사람이다. "오빠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그럼 재미없지 않아?" 하고 되묻기도 하지만, 나와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걸 해주게 하면서 그도 행복해보인다. (아닌가?)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시작과 끝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는 단 두 사람과의 연애. 나쁘지 않다. 언제 다시 만나도 반가울 것 같고, 그 어디서든 자기 삶에서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내 남자친구들. 함께했던 시간에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