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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Sep 27. 2022

나를 세워가는 방식에 관하여

한없이 죽어버리는 마음, 위축된 자아를 일깨우기

병원을 다닌 지는 꽤 오래 되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이 몰려들어 괴로워하는 것을 본 지인분께서 주변의 병원을 추천해주셨다. 간단한 검사지와 사전 상담에 의해 불면증과 기면증, 조울증,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라는 병명을 득템하게 되었다. 무려 1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사회생활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증상이 많이 좋아졌다. 불안정한 정서를 드러내면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내지만, 그런 마음들도 결국 나를 이루는 것들이라 여기면 타인의 경계심 따위는 가볍게 웃어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는 이사를 하게 되면서 치료를 끊게 되었는데, 선생님이 순수하게 딱한 청년 하나를 구제해주는 셈 치고 치료를 맡아주신 거라, 참으로 죄송한 마음이었다.


나는 겉잡을 수 없는 불안감을 내면에 꽁꽁 감춰두고, 일상을 견뎌야 했다. 공허감과 오락가락하는 기분을 홀로 처리해야 했는데 때로는 그런 점이 퍽 서글프기도 해서 종종 길을 걷다 울어 버렸다. 겉으로 보이기에 멀쩡한 사람일지라도 그 속내는 얼마나 곯아 터지고 있는지를, 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타인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이나마 그들의 마음이 유쾌해질 수 있도록 재롱 아닌 재롱을 부렸다. 리액션은 크고 과감하게, 웃음은 최대한 다정하고 밝게. 이런 점들이 매력적이었는지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주었다. 울음을 견뎌야 하는 빈도가 잦아질 수록 웃어야'만' 하는 나날이 커져갔고, 어느새 나는 사람들에게 "라이트 노벨"같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냥 라이트 노벨도 아니고 많이많이 라이트한 라이트 퍼슨.


조금 지난 얘기이지만 분당선을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에 공황장애가 발생했다. 공황발작의 전조가 보일 때면 얼른 자리를 피하거나 해왔는데, 이번에는 만원 지하철에서 겨우 매달려 탑승하는 중이라 내 몸을 어떻게 가눌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아차, 싶었는데 아쉽게도 내 앞의 탑승객들은 하나같이 먼 길을 가려는 듯 눈을 지긋이 감고만 있다. 그러다 문이 열리고 지금이라도 어떻게 내리려고 움직여볼까 싶었는데, 이미 다리가 마비되어 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곧 어떤 노인분이 올라타셨고, 내 앞자리의 승객은 아주 착한 말씨로 그분에게 앉으시라고 자리를 선뜻 건넸다. 나는 움직일 수 없어 꼿꼿이 서있었고, 젊은 사람이 쉽게 비켜주지 않는 통에 그분은 어렵사리 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정수리에서부터 이마, 속눈썹, 안경, 턱까지 해서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시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대신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차라리 "젊은 것이..."로 이어지는 시비보다야 이렇게 외면하는 편이 더 낫다. 땀방울의 정도를 넘어 세수의 경지에 이르자, 손잡이를 잡고있던 손에서도 땀이 흥건해져서 자꾸만 미끌해졌다. 지탱하던 몸이 종잇장처럼 흔들거렸고, 예전에 몇 차례 쓰러진 기억들이 재차 떠올랐다. 몇 정류장에 매달리며 너덜거렸고 다른 정류장보다는 텀이 조금 더 긴 정류장에 도착했을때 다리를 질질 끌면서 겨우 하차할 수 있었다.


혀가 마비되기 전에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현재 증상보다는 가장 먼저 나의 마음상태를 살폈다.

"불안하고 초조해? 아니면 우울하고 막 그래?"

신체가 마비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 마음이 잔뜩 멎어버린다는 증상임을, 그는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일단 10분 가량 기다려보고 마비가 풀리지 않으면 119를 부르자고 했다. 차분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곧 나아질 것만 같았다. 괜찮다, 는 목소리가 내 입이 아니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에 비로소 마비와 떨림이 잦아드는 것인지 도무지 알 턱이 없었지만.


어지러운 건강 상황이 있음에도 동시에 생계를 위한 일을 지속해야 했다. 불건강한 정서를 지니고 있으면 생계와 관련한 일의 클라이언트들은 다 떨어져나갈 것이다. 까닭에 오늘 아침, 밖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외치는 구호는 "건강하고 무탈하게"이다. 해가 지고 현관에서 하루의 먼지를 털어 버리는 의식을 치르고 있노라면, 무탈한 하루에 감사 기도를 한다. 오늘은 떨리지 않은 날임에 감사합니다, 하고. 동시에 누구도 나의 병에 대해 오해하지 않아서 라고 하염없이 일상의 감사 속에 빠져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다. 일과 속에 한없이 위축된 나는 늦은 저녁에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면서 쪼그라든 자아를 펼쳐간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이렇게 글을 씀으로서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내가 빼꼼히 고개를 든다. 그러니까 나의 하루는 글을 쓰는 시간부터 진정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일상을 견디며 상당한 마음이 스러진다. 나는 흩어진 정서의 조각들을 셀로판테이프로 겨우 이어붙이다가 저녁 11시에라야 책상에 앉을 수 있다. 이럴 때에 불면증은 상당히 큰 도움을 준다. 잠이 오지 않아서 나는 쓸 수 있으니. 새벽을 깨워 맑은 정신으로 쓸 수 없는 몸이지만, 안정감을 주는 시간과 진정한 자아로 발가벗겨진 순간에 나다운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온종일 흔들리던 내면을 일깨울 수 있는 나만의 시간. 골목길 사이로 들려오는 가벼운 소음들과 향기로운 티, 나를 톱아보는 글을 쓸 수 있는 순간들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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