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땅은 좁다. 거기에다 사람들마저 한 군데 몰려있으니 인구밀도는 높다. 이런 곳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게 뭘까? 바로 숨 막히는 경쟁이다. 재화는 희소하거나 한정적이다. 더구나 소수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남는 몫은 더욱 적다. 그래서 조각이라도 먼저 가지려 여기저기서 달려드니 체면이고 뭐고 머리부터 들이민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선착순 판매다. 보통 그들(VIP)만의 리그를 마친 다음 세일, 특판, 분양이란 광고를 내걸고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판매기법으로 활용한다.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도움만 된다면 하룻밤 세우며 기다리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처럼 줄 서기 싫어하는 사람에겐 아무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을 때도 남보다 빨라야만 했다. 툭하면 선착순 얼차려를 받았고 앞줄에 서야 짧은 휴식이나 건빵 같은 간식이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 늦으면 부상(副賞) 대신 철모에 머리 박는 자세 취하며 쉬는 게 그나마 성은이 망극한 하사품이었다. 굼뜨면 인생길이 고달팠다. 서둘지 않고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으랴...
일등이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다. 아이들도 젖만 떼고 나면 경쟁 터로 내몰린다. 개성이고 적성이고 필요 없다. 오로지 앞줄에 서야만 하니까... “아름답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란 말 한마디가 모든 걸 대변한다.
붐비는 지하철 내에서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까지 움직인다. 남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해야 성취감을 느끼는 기질이 무의식 중에 작동한다. 당장 나에게 필요 없는 것조차도 남이 갖지 못하도록 훼방 놓는다.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긴다. 온 국민의 머릿속엔 경쟁과 시기심으로만 가득 채워진 이상한 나라다.
아마 남보다 유일하게 늦게 가고 싶은 경우가 있을 터인데 저승길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는 죽음에 대한 논의조차 금기시한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무슨 무슨 음식이 건강과 정력에 좋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다. 온 국민이 한의사인 셈이다. 영양 과잉 시대임에도 보신식품을 변함없이 찾는다.
물론 우리가 이 정도까지 오는 데에는 빨리빨리 문화와 무한 경쟁이 기여한 바 지대하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만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왜 등장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눈을 들었더니 "황천(黃泉) 역"이 코앞이라면 너무 당황스럽지 않을까?
장벽을 만나고 나서야 인생이 허무하다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 반복하면 실없어 보이고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하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으면 역시 최후의 당신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이 정상이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 들”이란 말의 의미를 새겨 볼 일이다. 눈은 속도가 빠를 경우 제한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고속도로에서 속력을 높여보라! 바로 눈앞 새카만 아스팔트 밖에 볼 수 없다. 천천히 가야 전방이 입체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다양하게 무언가를 유심히 보고 관찰했을 때 사고의 폭도 넓어진다고 했다.
완급조절은 운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의 여정도 동일하다. 조화로운 능력을 기르는 데는 비법이 따로 없고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삶도 준비된 자에게만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한다. 바로 지금 내 사고, 행동 방식이 인생이란 여정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달리려고만 하지 말고, 꼭 필요한 때 한해서 전속력으로 질주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