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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두어야 건강하다

<4>

by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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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물리적 그리고 정신적 거리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최근에 겪었던 코로나 사태가 좋은 예일 것이다. 감염 외에도 일정한 물리적 거리 유지가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피 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으면 우선은 떼어 놓는 것이 부작용이 덜하다. 그대로 방치하면 한쪽이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갓집 신세 지지 않겠다 는 말이나 시어머니는 설탕으로 만든다 한들 쓴 존재다"라는 것처럼 처가나 시댁과 물리적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게 우리들 마음이다. 가까이 함으로써 얻는 것도 많지만 제약, 간섭이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우면 덴다고 했다.


지지고 볶고 산다? 무리를 지어야만 유리했던 농경사회나, 상호 협력이 필요한 비상 시기에는 유효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전히 관계가 중요한 세상이긴 하지만 이제는 자신만의 영역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늘 가까이서 부대끼다 보면 마음의 상처는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정신적 거리 두기란 같이하면서도 상대를 놓아주는 것이다. 무관심하거나 그냥 멀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식이라도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다. 사람들 간에 합의된 사회적 규칙인, 선을 지키는 일은 가까운 사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가까운 이 가 준다고 한다.


서로 간에 경계를 넘으면 관계는 엉클어진다. 아홉 번을 잘해주어도 한번 잘못한 것만 기억하는 게 우리 심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선 넘치는 관심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요청도 없는데 남의 인생 기웃거리지 말고 꼭 할 말이 있거든 개입해도 좋은지 반드시 먼저 묻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부간 일심동체를 말한다. 물론 가정을 일으키고 자녀를 키우는 시기에는 의기투합하는 게 당연하다. 시간이 흐르고 자녀가 독립할 때쯤이면 '이심이체'가 되는 게 현명해 보인다. 그간 부득이 미루어 두었던 자신의 꿈을 이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함께하지만 자기만의 영역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자녀들은 결혼여부와 관계없이 분가해서 사는 게 순리에 맞는다고 본다. 경제적 이유로 함께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후일에 돌이켜보면 잃는 게 더 많을지 모른다. 기약 없는 뒤치다꺼리로 부모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식의 홀로서기 능력 또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현실의 집과 마음속의 집에 적당한 높이의 담장을 세우는 건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 나는 이를 ‘안전거리’라고 통칭하고 싶다. 우리의 본능은 마음껏 드러내 과시하고 싶으면서도 꽁꽁 숨기고 싶은 것 또한 많기 때문이다. 완전한 개방보다는 조금은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게 더 매력적이다.


무리를 지으면 관계 유지 노력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위계가 필수불가결하다. 영역에만 집중하면 생존을 위해 쏟는 에너지가 더 필요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존립하기 어렵다. 어는 경우라도 극단에 치우친 삶은 어렵다는 뜻이다. 균형과 조화로움으로 간극을 메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움이 필요할 땐 상대가 소중하지만 자신에게 아무 일 없으면 실증을 느끼는 게 우리네 본성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만의 고유한 공간을 확보해야만 한다. 거리 두기가 너무 심한 경우가 있다. 아파트 주민 간 소통이 전혀 없는 세상이다. 그간 집단주의에 기반한 관계에 지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관계와 영역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게 우리들의 향후 과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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