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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에 간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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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딤돌
20240214_152105.jpg (봉은사 입구 전면)


봉은사 하면 독자 여러분은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강남의 노른자 땅에 있는 사찰 또는 부자 절을 연상했는지 모르겠다. 필자도 코엑스 근처의 요지에 있는 사찰로서 비교적 최근에 내부 이해 관련 문제로 세속적인 다툼이 있었고 어느 정권과는 대척점에 서기도 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사바세계 기준의 시선을 거두고 보면 봉은사는 애초부터 그냥 거기에 있었다는 생각이다.


2월 초순에 이게 겨울 날씨일까 싶을 정도로 더운 어느 날, 봉은사역 1번 출구를 통해 잠깐 걸으니 도심 속의 별천지가 보인다.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띄고 잠시 쉼을 갖기 위해 인근 직장인으로 보이는 방문객도 있다. 상주 인력과 불공을 드리러 오는 신도들의 발걸음이 평일임에도 분주해 보인다. 절 외곽을 따라 조성해 놓은 비포장 길은 사색의 장소로 그만이다. 밤에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산비탈을 경계로 종로에서 이전해 온 경기고등학교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봉은사(奉恩寺)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하면 신라시대 794년 <연회국사>께서 선정릉 가까이에 위치한 장소에 견성사(見性寺)란 절을 최초로 창건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으므로 사찰 유지가 쉽지 않았으나, 임금이나 왕후의 능을 살피는 일을 절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능침사찰>이라 불렀다. 동사찰이 이경우에 해당한다.


유림들의 눈치를 보긴 했지만 사적으로는 불심이 깊은 왕들이 있었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모후로서, 수렴청정이란 수식이 최초로 붙은 문정왕후는 물밑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불교를 지원했다. 동 사찰은 왕후와 명종의 도움으로 수도산(修道山)에 자리를 할 수 있도록 조정으로부터 토지를 하사 받았고 이에 대해 은혜를 받든다는 의미로 봉은사로 이름을 명명하게 되었다.


유교중심 세상에서 과거 불교의 중흥을 꿈꾸었던 보우선사가 주지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두호 화백>의 역사만화를 보면 절 안에 넘쳐나는 시주 물품을 <임꺽정>이라는 대도가 주지를 겁박하여 사찰건립에 동원되어 지치고 굶주린 민초들에게 물품을 나누어 주게 하는 장면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재정적으로 풍요로운 곳이었나 보다.


이곳은 승과(僧科) 시험장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운 휴정(서산대사)과 유정(사명대사) 의병장 모두 승려 과거시험을 거쳐 간 인재들이었다. 강력한 후원자 문정왕후가 죽고 보우선사마저 제주도 유배 중 *장살(杖殺)을 당하면서 불교의 중흥노력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다. 이후에도 유생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수많은 논쟁 끝에 폐찰은 면하고 명맥만 유지할 수 있었던 듯하다.


20240214_150446.jpg (추사 김정희 기적비)


과천 인근에 살면서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명필 추사 김정희는 판전이란 현판을 썼는데 세상을 뜨기 3일 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대다수 사찰 내 건물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중 소실되었다가 중건했고 일제강점기 큰 화재와 한국전쟁 중 훼손되어 새로 지은 경우가 많으나 판전이란 편액이 걸려있는 건축물만큼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모습이다.


다운로드 (1).jpg (추사의 현판 서체 네이버)


일제 강점기 시절 사찰의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영향을 받아 처자식이 있는 승려, 즉 대처승(帶妻僧)과 결혼하지 않고 출가한 비구승(比丘僧) 간에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절의 부지 일부가 대처승들에 의해 처분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별도의 둥지를 틀어 부양가족이 있게 되면 조금은 세속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강점기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비구승들이 주류로서 자리했다.


대처승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면 이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종파가 있는데 바로 <태고종>이다. 원융무애(圓融無碍) 사상을 주창하고 있는데 그 뜻은 여러 개가 "화합하여 하나로 되어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승려가 되기 위해선 세간(世間 :결혼)과 출세간(出世間 : 비혼)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설명에도 원융사상을 원용한다. 일제에 대한 저항시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만해 한용운 선사는 독립투쟁 역사상 중요 인물 중 한 명이다.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었던 선생도 대처승 신분이었다.


20240214_145646.jpg (미륵대불상)


천년고찰인 봉은사는 종로에 소재하는 <조계사>의 *말사(末寺) 지위에 있다. 한편 조계종을 대표하는 선종 *수사찰이며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고 절의 상징인 미륵대불상은 인자한 미소로 중생들을 굽어보고 계신다. 근거리에 위치한 선정릉과 더불어 이곳 사찰은 유서 깊은 명소이기도 하고 도심 속에서 녹지로서의 기능 또한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봄이면 홍매화, 산수유 등이 벗을 하자고 한다 하니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거든 발걸음을 떼보는 건 어떨까?


* 장살 : 곤장을 쳐서 죽임

* 말사 : 기업에 비유하면 조계사는 본점, 봉은사는 지점에 해당한다.

* 수사찰 : 수는 한자 의미로 머리에 해당한다. 여러 사찰 중 첫째에 해당하는 절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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