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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Jan 29. 2024

전주 콩나물 국밥

삼백집

 요즘 살면서 느끼는 아이러니함은 쉰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인 것 같다. 항상 정해진 일과와 일정표 속에 수십 년을 달려온 시간 속에 하얀 백지가 눈앞에 있다는 것이 어색하다. 쉬고 노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건만 현대인들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부지런한 개미의 습성에 배짱이의 배포를 따라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막상 내게 주어진 쉼표 사이에서 나는 오히려 불안하며 갈팡질팡한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 둘 메모해 보았다. 꽤나 빼곡히 적힌 것들 사이에서는 대부분 미루 두고 지나친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없어 여유 자금이 없어 귀찮아서 다양한 핑계들로 후순위가 된 꿈들은 생기를 잃고 거품처럼 사라졌다. 겨우  챗바퀴를 탈출한 다람쥐는 어디로 이정표를 정해야 하는 걸까라는 답을 망설인다.


 일단 도토리를 찾아 숲으로 발걸음을 떼어야겠다는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나는 발목을 잡고 있는 틀에 박힌 일상을 깨어볼 배짱이가 되어보련다. 나의 즐거운 노래를 멋지게 만들어보자. 마음가짐은 준비가 되었고 인제 멋진 가사를 적기 위한 소재가 필요하다. 어떻겠을 적어 볼까라는 생각에 원초적인 것들을 생각했다. 삶에서 어렵지 않게 가장 즐거운 시간을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결국 나온 답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맛있는 한 끼의 식사였고 나는 주저 없이 발걸음을 앞으로 향해 나가 보았다.



전주


 서른을 부쩍 넘은 내게 삶의 경계선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았고 가끔 그런 곳들은 동경하여 막연하게 떠나는 상상을 해보았다. 대부분은 해외 명소들이었지만 국내에서도 한번 가보자하는 도시들도 꽤나 있었다. 사실 마음을 먹고 움직이면 갈 수 있는 곳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울타리를 넘어 벗어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결국 그냥 집안에 걸어 둔 액자 속 그림으로만 간직하였다.


 나는 지금 그렇게 쌓인 먼지 가득한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골라야 했다. 왜냐면 나는 배짱이가 되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이정표를 삼을 후보지를 찾아본다. 유독 하나의 도시에서 멈칫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왠지 이곳으로 가보게 된다면 후회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즐겁게 노래 부르고 웃기 위해 채비를 하고 떠나 보았다. 나의 행선지는 바로 전주였다.


 막상 떠나고자 마음먹고 이동하는 수단을 검색하여 보았으나 역시나 교통편이 많지는 않았다. 기차와 버스 두 가지의 방법이 있었고 서로 장단점이 있었다. 기차는 상대적으로 시간대별로 갈 수 있었지만 갈아타야 하기에 비용도 비싸진다. 그리고 버스는 상대적으로 기차보다는 배차간격이 많지는 않았지만 한 번에 가며 비용도 저렴하였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고려해 봐도 효율적인 수단은 버스라고 생각되었다.


  아침 7 시 편을 예매하여 약간의 여유를 두고 도착하였더니 고요하고 조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터미널은 의외로 많은 인파들이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괜한 호기심과 여행을 가는 느낌이 느껴져서 설레었다. 시간을 맞추어 정차가 되어있는 전주행 버스를 탔다. 터미널의 붐비는 분위기와 달리 이 공간은 조용하였다. 출발 전까지 5명이 탑승하였고 버스는 가볍게 출발하였다.


 이른 새벽의 하늘은 미처 어둠의 커튼이 다 걷어지지 못하였고 차가움이 느껴졌다. 멍하니 달리는 차량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전주는 어떤 모습을지 그려보았다. 휴대폰을 열어 전주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본다. 수많은 정보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하나 둘 읽어보면서 학습을 해본다. 아직 울타리를 처음 넘어선 양은 낯섦에 호기심과 두려움이 오락가락하였다.


  전라북도에 위치한 전주는 전라도의 통틀어 2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의 본인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전주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호남과 윗지방의 중간 위치적인 부분으로 상당히 발전되고 주목받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래도 현대사와 멀지 않은 부분과 보존된 흔적이  남겨진 도시들이 꽤나 있다. 그중 아무래도 조선의 근간이 된 곳이기에 전주라는 공간은 더더욱이 역사적인 도시로 느껴지는 부분이 컸다.


 전주에 대한 나름의 정보를 습득하며 정리하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올 시간만큼 정차였다. 그리고 버스가 다시 출발하며 조금은 피곤함이 몰려왔고 눈이 스르륵 감겼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버스의 속도가 점차 줄어듬과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을 뜨고 일어나 보니 전주 시내로 들어왔다.  한층 밝아진 아침의 햇살은 다시 여행의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몇 번의 신호를 받고 멈춘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주시외버스터미널이 눈에 들어왔다.


전주 콩나물 국밥

 

 빈 옆자리에 두었던 가방을 질끈 메고 좌석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나가면서 기사님께 나지막이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네고 내렸다. 전주에서 처음 자주한 찬 공기가 코끝을 자극하며 정신을 뚜렷하게 만들었다. 휴대폰에 비친 시간을 확인하니  숙소 체크인 전까지는 여유가 많았다. 생각보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에는 추위에 대한 영향도 있었지만 허기짐의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전주라는 도시는 상당히 많은 먹거리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전주비빔밥과 전주 콩나물국밥을 꼽았다. 나 또한 여정의 적어도 한 끼는 두 가지 음식들을 먹어볼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선택의 순간에 살짝 고민이 들었으나 답은 빠르게 정해졌다.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 있던 전주 콩나물 국밥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콩나물을 밥상 위에 올려놓는 국가는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채소를 무침으로도 국으로도 죽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즐겨 먹는다. 아삭한 식감과 담백한 맛은 콩나물의 매력인데 숙취에도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더더욱이 사람들에게 선호도가 크다. 거기다 많은 양을 싸게 사서 간단히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전주 콩나물 국밥이 근원을 거슬러보면 조선시대로 가게 된다. 이 도시는 조선시대 물류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보부상들이  자연스레 방문하게 되었다. 이들에게 콩나물 국밥은 간단히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에 즐겨 먹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이 음식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전주의 콩나물이 유독 유명해진 부분에 일부 가설 중 하나로 물이 맑고 철분함량이 여타의 곳보다 커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삼백집 


 전주를 대표하는 콩나물 국밥집으로는 전통 남문식을 따르는 현대옥과 하루에 삼백그릇만 판매한다고 하여 삼백집이라는 이름을 지은 두 곳이 있다.  특히나 삼백집은 허영만 화백의 시객에서 재미난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곳의 원조 사장님은 욕쟁이 할머니로 거의 시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삼백집이 맛이 좋아 방문도 하였지만 구수하고 정겨운 투박한 말들에 매력을 느껴서 오기도 하였다.


 어느 날 지방 시찰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전주에 오게 되었다. 애주가로도 유명한 그는 속을 달래줄 음식을 찾았고 동반한 인원들이 전주의 삼백집의 콩나물 국밥을 추천하였다. 그래서 경호원들이 가게에 방문하여 포장하고자 하였으나 이 욕쟁이 할머니는 "이 썩을 놈아 너네는 발도 없냐 와서 먹어"라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결국 경호원들이 돌아가 박정희 대통령한테 이야기하니 직접 방문하겠다 하면서 가였다고 한다. 그렇게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보고 주인 할머니가 "이 썩을 놈이 박정희와 똑같이 생겼네 하며 계란 하나 더 먹어"라며 계란을 추가로 주었다고 한다.



 현대옥 또한 삼백집만큼 오래되고 전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가게 중 하나이다. 전통 남문식으로 뚝배기를 끓이지 않고 미리 데워둔 육수에 토렴을 한 방식을 따른다. 두 곳 다 참 매력적인 가게들이지만 앞서 선택에 이유로 거리가 적용되었고 조금 더 가까운 삼백짐으로 발길을 향해보았다. 설레는 마음에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 앞에 도착하였다.


  예전에는 파란 간판에 노포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외관이었는데 지금은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2010년도 이후로 전국적으로 체인점들이 확대해지고 유명해지며 세월의 흔적은 아쉽게도 사라졌다. 평일의 이른 아침이기에 매장 내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자리 한편을 잡고 외투와 메고 있던 짐을 놓아두었다.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과 김치와 수란 장조림등의 기본찬들을  먼저 가져다주었다. 주문은 역시나 목적에 부합되게 콩나물 국밥으로 하였다.



 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는  뚝배기가 테이블 위로 올라졌다. 하얀 연기가 잠시 걷어지고 보인 첫인상은 기대에 충족을 시켜주었다. 한가득 담긴 콩나물을 조금 걷어내 보니 국물 안에도 계란이 들어있었고 밥도 함께 들어가 있었다. 수저에 국물을 떠서 마주한 첫 느낌은 와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기를 입으로 불어 살짝 식히기 다시 한번 먹어보았다.



 캬~하라는 의성어가 나오면서 뒷말로 시원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밥과 콩나물을 한 아름 퍼서 먹어보았다. 아삭한 콩나물의 식감과 밥과 들어간 계란이 어울려져 상당히 밸런스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국물이 조금은 식어지니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의 즐거움은 더해진다. 간을 맞추기 위해 제공되는 새우젓이 있었는데 반찬으로 인식했던 장조림도 그 용도로 활용이 되었다.


 그냥 먹기에는 상당히 짠맛이었다. 또 재미난 것은 포장된 김 한 봉지가 반찬으로 제공되었는데  콩나물과 밥 위에 살짝 얹어 먹는 것이 별미라는데 설명이 벽에 붙어있었다.  따라서 해보니 정말 묘하게 맛이 있었다. 콩나물국밥을 먹으며 전날에 음주를 하지는 않았지만  숙취가 말끔히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말 신기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었다. 내용물이라고는 콩나물과 밥 계란 그리고 마늘, 파, 고추 가라 등 특별할 거 아닌 재료들이 들어갔는데 맛은 정말 특별하다.


사실 인생에 즐거움도 이런 콩나물 국밥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소소하고 크게 별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서 알고 보면 있는 것 같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다르고 큰 이벤트만이 삶의 재미를 줄 거라 꿈꾸며 왜 내게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아쉬움만을 가졌다. 하지만 결국 나는 눈앞에 있는 파랑새를 남의 담장만 바라보고 동경을 한 것이다.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도 들면서 이제라도 즐기기 위해 아낌없이 살아보고자라는 마음에 신이 났다. 전주 콩나물 국밥이 전해 준 감동에 이 도시를 기억 속에 가슴속에 꽤나 오래도록 간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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