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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Feb 05. 2024

전주 한옥마을

베테랑 칼국수

 시간이 흘러감에 변해가는 것들이 즐거움보다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바뀌어지는 것들 사이에서 추억은 소멸된다. 어릴 적 미나리 밭을 지나 소 똥 냄새가 나던 시골 할머니 집이 그립다. 그리 크지 않았지만 뛰어놀 수 있는 마당도 있었고 직접 장을 담갔던 장독대들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할머니가 만들어준 감주를 마시며 솔솔 부는 바람의 재취를 느끼는 것이 참 좋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곳은 할머니도 집의 흔적도 사라졌다. 미나리 밭은 아스팔트로 변모하여 커다란 도로가 되었고 추억의 공간은 고층 아파트로 바뀌어졌다. 이제는 과거를  마주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감정이 든다. 그래서 나는 과거의 흔적이 유지되고 있는 곳을 알게 된다면 반가움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전주는 내 취향 코드를 저격한 도시였다.


   


전주 한옥마을


 전주는 호남 지역에서 여수 다음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이다. 연간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지역에 관광을 온다는 것은 볼거리들이 매력적이라는 부분을 입증한다. 2016년 CNN에서는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의 10대 명소' 중 하나로 전주를 소개하였다. 이 도시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여러 곳 있지만 그중 특히나 한옥마을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도심 내에 수많은 한옥들이 밀집하여 하나의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재미있는 요소로 느껴진다. 이 한옥마을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당시 일본인들이 국내 상권에 침입하여 잠식시키고 있었다. 자연스레 공간들도 우리의 것들은 사라지고 허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반발하는 마음과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을 맞기 위해 전주의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 2000년대 초 관광지 테마를 지역 산업으로 내 세우기 위해 정비산업을 시에서 진행하며 한옥마을도 리모델링을 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주국제영화제 및 다양한 지역 축제의 콘텐츠와 맞물려서 더더욱 홍보가 되어 지역 명소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전주에 발길을 담은 내게는 이 공간의 방문의 필연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숨 쉬고 있는 것은 한옥마을의 매력이다. 고층 빌딩의 숲 속에서 답답함이 가시어지는 감정을 내게 주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마을의 초입에서 전동성당이라는 건물이 눈에 마주하였다. 아름다운 구조물이라는 감정이 들면서 뭔가 묘하게 느껴졌다. 가장 동 양스러운 공간에서 가장 서양식스러운 건물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미사 간에는 신자 외에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아 외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외관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전동성당은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속의 장면에 나왔는데 그중 내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약속이었다. 박신양과 전도연이 나와 무릎 꿇고 사죄를 하던 장면의 촬영지였다. 미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부도 방문할 수 있다고 하니 다시 방문하게 되면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복을 대여해 주는 곳들이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이 복장들이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였다. 많은 인파들 속에서 있는 나를 보며 왠지 시간을 거슬러 시간여행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경기 전이라는 조선의 시간을 머금고 있는 공간이 보였다. 경기(慶基)라는 단어는  경사스러운 터라는 의미라고 한다. 조선의 건국의 시초인 이성계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라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관람료가 있어서 살짝 말성여졌지만 3,000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내부를 들어가니 생각보다 큰 공간을 거닐며 조선이라는 과거의 파편을 감상하기에 좋았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기도 하고 비둘기를 보며 사냥 본능을 보이려 탐스러운 궁둥이를 보이는 귀여운 고양이도 보았다. 다수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임에 그들에게 이 공간은 어떤 눈으로 비칠까 궁금하였다.



 경기 전 구경을 하고 나와 한옥구조물에 다양한 먹거리들의 가게들 사이를 지나감에 허기짐이 들었다. 역시 든든하게 뱃속을 채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는 때로는 어려움을 준다. 갈팡질팡하면서 거리를 배회하였고 기어코 한 가게를 선택하여 들어가게 되었다.  


베테랑 칼국수


 개인적으로 나는 면요리를 좋아한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어릴 적 부모님이 수술로 인해 한 달여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집에 홀로 동생과 지냈었는데 아무래도 식사가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인근에 살던 친척들이 시간을 내어 방문하여 반찬들을 만들어 주고 가셨다. 근데 막상 그 시절 나는 밥을 먹지 않고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였다. 당시 라면공장에 다니시던 큰어머니가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한 박스를 가져다주셨었다.


  한 달 내내 라면을 먹던 나는 결국 심각한 장염으로 큰탈이 났다. 보통은 이런 병치레를 알으면 트라우마에 조심하게 되지만 몸이 호전되고 나자마자 나는 팔도 비빔면을 끓여 먹었다. 그래서 뭔가 식당을 고르기에 고민될 때는 면요리를 하는 곳을 우선적으로 앞에 놓아두고 생각한다. 한옥마을을 방황하던 나의 발걸음도 결국 칼국수 전문점에 머무르게 된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까 싶다.



 칼국수라는 단어가 재미나다. 한글이 서툴고 낯선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칼이 포함된 국수인가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칼국수는 국수의 반죽을 펼쳐내 부엌칼로 썰어 뽑는 부분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대체로 굵은 면발이 일반 국수들과 다른 부분이 특징으로 여겨진다. 반죽을 다소 두껍게 펼쳐서 칼로 썰기 때문에 단면이 네모 모양이 경우가 많다.


  칼국수의 재미난 일화 중 하나로 김영상 대통령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의 칼국수의 사랑은 어마 어마하였다고 한다. 취임하고 청와대는 김영상 대통령의 단골 식당으로 알려진 소호정의 김남숙 여사에게 조리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는 청와대 요리사를 지낸 이근배 씨의 에세이집인 ‘청와대 요리사’에 해당 일화가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의 사랑은 청와대를 방문하는 내빈들을 통해 보인 적이 많다. 심지어 빌클린턴에게도 칼국수를 내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지금 내가 방문한 곳은 전주에서 유명한 맛집 중 하나이다. 1977년 오픈한 가게로 처음은 분식집이었다고 한다. 인근에 위치한 성심여중과 성심여고가 있어 학생들을 위주로 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내부를 들어가니 리모델링을 하여 별관까지 확장하여 본관과 연결된 공간이 생각보다 엄청 크게 느껴졌다. 한옥마을 다운 콘셉트에 맞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었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시점에 들어갔음에도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회전이 빨리되는 느낌이라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 한편이 나에게 부여되었다. 칼국수 하나를 주문하였고 찬으로 단무지와 깍두기를 먼저 직원이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옆쪽 노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전주 현지인은 아닌 것 같아 보였고 여행을 온 관광객 같아 보였다. 다정하게 온기를 서로 식혀주며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의 공허한 옆자리가 쓸쓸해 보였다.



 칼국수는 주문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왔다. 아무래도 인기가 많은 식당만의 장점이지 않나 싶다. 일단 육안으로 보이는 비주얼은 먹음직스럽게 느껴진다. 하얀 연기를 뿜고 있는 그릇 위에는 들깻가루, 고춧가루, 김가루가 수북하게 얹어져 있었다. 열기가 식어지기를 바라며 잠깐의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그리고 보인 칼국수의 국물은 상당히 걸쭉하게 보였다.


 젓가락으로 숨겨진 면발을 위로 올려주며 섞어주었다. 그리고 수저로 국물을 한 스푼 먹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입안에 감싸면서 맴돈다. 거기다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데 알고 보니 계란이 풀어져서 들어가 있었다. 면발을 한 움큼 퍼서 호로록 면치기를 해본다. 일반적인 칼국수 면발보다는 가늘어서 입안으로 잘 흡입되었다. 계란이 칼국수의 전반적인 부드러움을 주는 포인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고춧가루는 생각보다 맵지 않고 음 뭔가 계란의 느끼한 맛을 중화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들깨가루는 고소함과 식감으로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칼국수의 인상을 내게 주었다. 하지만 이 글을 적는 시점에서 다양한 후기들을 모니터링하니 유명세를 타며 변모하여 본질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국물의 맛은 변치 않은 것 같다는 말들을 대체적으로 있었다. 채소만으로 육수를 내는 방식이 이 가게의 비법이라는 글도 보았다.


  따뜻한 한 끼의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오며 왠지 발걸음에 힘이 실려졌다. 좋아하는 것들을 마구 즐길 수 있는 공간에서 있는 이 순간이 조금은 더디게 지나가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에 대함이 애잔하고 서글펐다. 다시 내가 이 공간에 오게 되더라도 변치 않음을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지만 그래도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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