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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Feb 12. 2024

군산

한우 무우굿 (한일옥)

 삶에서 한 번쯤 가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곳들이 있다. 그리고 대게는 그런 공간들은 가지 못하고 생각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 또한 떠나지 못하는 것은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하나 둘 차곡차곡 쌓아진 희망 리스트 중에는 당장 내가 갈 수 있는 곳들도 큰 마음을 먹고 준비해야 하는 곳들도 섞여있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없다는 바쁘다는 핑계가 발걸음을 잡고 있었다.


 이젠  얽매여 있는 소속도 지켜야 할 일정도 없어졌다. 더 이상의 핑계가 사라졌기에 선택을 하여야 했다. 장바구니에 담아둔 행선지들을 펼쳐본다. 많은 항목들 사이에서 내가 우선해야 하는 가치가 어떤 것일까라는 고민을 해본다. 그리고 문득 하나의 공간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내게 추억이 있고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는 아련한 기억이었다.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다시 재생해 보았다.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가 플레이 리스트였고 나는 이야기 속 공간인 군산으로 떠나보았다.



군산

   

 군산은 우리에게 항구도시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서해안에 인접한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독재를 견제하고자 영국의 조력하에 일본이 나서서 몇 개의 추가로 개항이 되었다. 그중 군산항도 이에 해당되는 곳들 중 하나였다. 일본은 호남지역의 곡창지대로 알려진 옥구평야와 김제평야에 쌀들을 수탈하기 위한 용도로 이 항구를 이용하였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군산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큰 공업도시로서 발전하였다. 엄청나게 많은 쌀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쌀의 군산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기술한 부분이 있다. 당시 군산에서는 일본인들이 상당히 거주하였다.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다수의 일제근현대식 주조물들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중 히로쓰가옥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군의 아들, 타짜, 범죄와의 전쟁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중이다. 군산의 개항장으로서의 가치 때문에 전라북도에서 제일 먼저 시가 되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화물량이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집중하게 되면서 도시의 쇠락을 마주한다.  침체의 반등의 기회는  2000년대 초 새만금 사업을 통해 간척된 땅이 군산으로 다수 편입 됨에 따라 다시 찾아왔다.



 이로 인해 다수의 대기업들이 유치되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공장등은 지역발전의 큰 영향을 주었다.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이지만 말이다. 17년도 조선소 폐쇄 18년도 자동차공장이 연달아 폐쇄되면서 발전은 뒷걸음치는 도시가 되었다. 이렇게 멈춰진 공간이 되어버린 군산에 내가 흥미가 느껴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후퇴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빠른 도시의 템포가 아닌 이 지역은 느리게 흘러가기에 과거를 음미할 수 있다. 편의의 발전만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유지되고 변하지 않는 것이 그립고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군산을 가기 위한 이동루트는 역시나 번거로움이 따랐다. 일단 기차의 경우는 환승을 해야 했고 버스의 경우는 이전 전주여행과 마찬가지로 배차간격이 컸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의 선택은 버스였다. 여유를 부리다 타고자 했던 버스 시간을 놓쳤다. 이미 떠나 버린 버스 뒤에 일정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애매하였다. 정류장 근처에 음식점에 들어가 가락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여 먹었다. 그래도 넉넉하게 남은 여유에 예약된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을 검색해 보였다. 군산에 대한 검색을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윽고 나의 군산행 버스가 도착하였고 예약한 좌석으로 탑승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놀라웠다. 알고 보니 전주와 익산에 정차를 하였기에 탑승객이 많았었던 것이었다. 잠깐 눈을 감고 피곤함을 녹여내었다. 줄어드는 속도를 체감하고 눈을 떠보니 전주에 도착하였다. 대부분이 내렸고 버스 안에는 나와한 명의 고객만이 남았었다. 그렇게 익산에 한차례 정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인 군산에 도착하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인생 영화라 불리는 작품들 다들 가슴 한 편에 있을 것이다. 내게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바로 그에 해당된다. 90년대를 풍미하며 인기 절정의 한석규 배우와 심은하 배우가 주연으로 연기한 작품이다. 연출은 '라면 먹고 갈래'의 대사로 유명한 봄날의 간다의 허진호 감독이다. 개인적으로 한석규 배우를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중 최애의 한편을 골라보라고 하면 나는 단연코 이 작품을 꼽을 것이다.


 상대 배역의 심은하 이러한 기준을 대입해 봐도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작품과 고민은 하겠지만 최고라는 같은 선택이 된다. 그만큼 이 작품을 통해 두 배우의 매력을 한껏 보였다. 재미난 비화로 그들의 커리어에서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일정 때문에 캐스팅이 되지 않을 뻔하였다고 한다. 극 중 심은하가 연기한 다림역의 또 다른 후보군으로는 김현주 배우와 최강희 배우가 리스트에 있었다고 한다.



 영화는 한 남자의 급작스러운 불치병에 마주한 순간 만나게 된 풋풋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내가 매료되었던 것은 슬픔을 억지로 지어 짜는 신파의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그냥 평범하게 내뱉는 서정적인 대사에 매료되었고 김광석 노래 같이 느껴졌다. 공교롭게 글을 적으면서 찾다 보니 나의 이런 생각이 일정 부분 맞아떨어졌다. 허진호 감독은 김광석 영정 사진에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서 착안하여 정원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 아버지에게 정원이 비디오 작동법을 설명하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에 아버지에게 최소한 비디오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데 나이가 들어 잘 알아듣지 못함에 결국 짜증을 내며 나간다. 이후에 방에서 종이에 큰 글씨로 작동법을 적는다. 보통은 한국 영화에 대부분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부둥켜안고 서로 울음 한바탕 터뜨리지만 상당히 절제된 연출로 슬픔의 여운을 깊이 있게 터뜨린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인생영화 중 하나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군산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였다. 특히 영화 속 초원사진관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다. 군산 터미널에서 내려 가슴이 막 뛰기 시작하고 설레었다. 드디어 나의 장바구니 속에 담긴 꿈의 공간에 가볼 수 있다는 것에 말이다.


 한일옥


 하나가 밀리니 연쇄적으로 밀리는 도미노 효과가 일어났다. 군산에 도착하면 간단히 미리 알아본 행선지 몇 곳을 방문 후 체크인을 하고 잠시 충전을 한 뒤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터미널에 내려 마주한 시계 속 시간은 나의 계획들의 일부를 삭제시켰다. 결국 숙소를 먼저 찾아서 체크인을 하러 갔다. 뚜벅뚜벅 다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대기를 하였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갈 수 있는 공간이 어떻게 되는지 말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숙소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였고 탑승하였다. 대략 15~20분이 소요되는 코스였고 멍하니 차창밖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여행을 온 것을 실감해 본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도착 직전이 되자 안내방송에 집중하며 부저를 누를 준비를 하였다.


  긴장의 끈을 잘 잡고 다행히 목적지 인근의 정류장에서 하차를 하였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서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걸어갔다. 길치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구조물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어 약간은 해머 었다. 그래도 잘 도착하여 체크인 후 카드를 전달받고 입실하였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가방을 먼저 내팽개치고 녹초가 된 핸드폰 배터리도 충전하였다.


  다시 채워진 게이지가 가득 찼을 때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결국 저녁 식사가 일정에서 우선순위가 되었다.  미리 알아본 나의 행선지는 숙소와 거리가 멀지 않았다. 가방 속 카메라와 삼각대를 제외한 나머지를 비우고 메고 발길을 나섰다.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니 나의 희망 리스트인 초원사진관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문이 닫힌 입구 앞에서 멍하니 서서 간직하고 있던 영화의 여운을 느껴보았다.


 아쉽지만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오리라 마음을 먹으며 돌아섰다. 바로 초원사진관  맞은편 가고자 했던 음식점이 있었다. 한옥과 일본식 가옥의 구조물로 무려 83년 동안 유지된 공간인 한일옥이 바로 그곳이었다.  이 매장은 40년 동안 영업을 하며 전통을 유지하였는데 한우 뭇국이 대표 메뉴이다. 내부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오래된 건물의 흔적이 그리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해 보였다. 일단 자리 한편에 앉아 한우 뭇국과 모주 한잔을 시켰다.



 뭇국은 저렴하게 재료로 이용할 수 있는 무를 주로 활용한 국이다. 소고기나 바지락을 넣어서 끓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수도권은 대체적으로 소고기를 넣는 방면 대체적으로 다른 지역들은 무만을 넣어 만든다고 한다. 수도권 방식은 뭇국은 경상도의 탕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전라도지역도 대체적으로 무를 듬뿍 채 썰어 넣는 방식으로 시원함이 별미로서 느낄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된다.


  근데 한일옥에 시킨 한우 뭇국은 메뉴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소고기가 들어간다. 기본찬들이 먼저 세팅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뭇국이 열기를 뿜으며 테이블에 놓아졌다. 무는 큼직하게 큼직한 크기로 들어가 있었다. 일단 먼저 국물을 먼저 한번 떠먹어보았다. 고기의 구수함과 기름에서 나온 고소함과 무의 달큼함이 아주 적절한 조합으로 혀에 느껴졌다. 맛이 있다는 말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내부에 들어가 고기를 씹어 먹어보았다. 고기는 힘줄 부위가 일부 들어가 있었는데 적당히 씹히는 식감이 만족스러웠다. 밥을 말아 열기가 조금은 식혀 지기를 바라며 이리저리 숟가락으로 섞어 주었다. 찬으로 나온 깍두기는 적당히 익혀져 새콤한 맛이 잘 느껴졌다. 맑은 뭇국의 시원함이 참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주었는데 색다른 방법으로 먹기를 도전해 보았다. 고춧가루를 살짝 넣어 보니 묘하게 육개장이 느낌이 났다. 이 또한 참 맛이 흥미롭고 좋다.


 주문하고 깜박하고 있던 모주가 눈에 들어왔다. 한 모금 조심스레 목 넘김을 즐겨본다. 계피향과 단맛이 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흡사 수정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근데 이게 첫 모금은 신기함에 눈길이 그다음 모금에는 묘하게 다시 손이 간다. 왜 전라도를 여행 가면 이 모주를 먹는지 이해가 되었다. 어릴 적은 뭇국이 별로 좋은 음식은 아니었다. 그냥 무슨 매력이 느껴져서 사람들은 찾는 걸까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원한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 온몸을 데워주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것이 따뜻하고 포근하다는 생각이 드며 아 이게 이 음식의 매력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한 끼의 식사 이후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고요한 거리의 적막을 느껴보았다. 딜레이가 된 일정에 대한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 어때 여행은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게 또 묘미이니 즐겨보자 생각하였다. 모주의 약간의 취기가 느껴지며 군산이 나에게 보여줄 매력을 기대하며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장바구니 속 목록이 주문을 통해 도착 한 선물을 이제 한 꺼풀 벗겨보았다. 일단 나의 흥미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이 밤이 빨리 지나가 마주하는 내일의 시간이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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