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사시
거대한 산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과연 저곳을 오를 수 있을까라는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 정상에 마주한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 순간에 느낀 짜릿한 감정의 여운은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마주한 다음의 웅장한 서사의 앞에서는 이젠 낯섦과 두려움이 없다. 설레는 감정 한 스푼을 먹고 당당하게 맨 앞으로 나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한다.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단조롭고 간단하지는 않은 길이다. 가끔은 흐름을 잡지 못해 헤맬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이 서사의 매력이다. 다시 정상의 궤도에 들어가고 한발 한발 올라감에 끝이 보인다. 가슴이 쿵쾅쿵쾅 거린다. 저 꼭대기 위에 펼쳐질 이야기의 압도적인 힘에 감탄할 순간을 마주할 것을 알기에 말이다. 나는 듄이라는 영화의 서사를 마주하고 매료되고 빠져들어 버렸다.
10191년 세계는 황제라는 불리는 존재가 통치하고 있다. 이 지배 구조에는 다수의 세력이 지지와 협력이 따라 유지되고 있다. 크게 세력의 분류로 대표적 5대 가문이 나누고 있다. 이들 중 아트레이드와 하코넨은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다. 두 가문 모두 자신의 세력 규합에 응집력이 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원천적으로 추구하는 통치의 가치는 차이가 있다. 아트레이드는 인망 있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통한 덕이 하코넨은 강력한 무력을 통한 공포를 근원으로 한다.
이런 상반된 가치와 더불어 역사적인 배경이 맞물려 두 가문은 적대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아트레이드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하코넨 가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황제도 아트레이드에 대한 아니 그 가문의 통치자인 레토공 작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레토공작의 인망이 좋기에 여타 다른 가문들의 지지와 우호적 관계 속에 세력이 커지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결국 황제는 그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 계획의 첫 단추는 바로 아라키스로 이주였다. 그곳은 척박하고 사람이 살기 힘든 사막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바로 스파이스라는 물질을 채취할 수 있기에 말이다. 이 물질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류는 예전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문제로 인해 홍역을 겪고 세대를 거치며 근본적으로 이 기술을 세상에서 없애버린다. 그로 인한 대체재로 발견되고 이용된 것이 스파이스이다.
이것을 활용하면 미래가 예측이 가능하고 심지어 수명에도 영향을 주는 등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질이다. 그러기에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가 우주를 지배할 수 있을 말들이 돌정도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황제가 레토공작에게 주는 상처럼 보이지만 아라키스를 이전에 관리했던 하코넨 가문에게 명분을 준 것이다. 자신의 것을 빼앗겼기에 전쟁을 통해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그리고 최고통치자의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졌기에 거칠 거 싱 없다. 그렇게 일어난 대규모 분쟁의 결과는 아트레이드의 멸문으로 끝이 난다.
이 과정에서 겨우 살아난 존재는 레토 공작의 아들 폴과 그의 어머니 제시카 정도이다. 그들은 아라키스 사막에 던져지고 생존과정 중 이곳의 원주민 격인 프레맨들과 마주한다. 그들은 외부사람들에 대한 배척과 불신이 가득하다. 의지할 곳 없는 이 두 모자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프레맨만의 방식으로 결투를 하여야 했다. 그렇게 폴이 그들의 전사 대표와 사투 끝에 인정을 받는다. 여기까지가 바로 듄 파트 1부의 줄거리를 압축하여 이야기한 것이다.
2부는 그렇게 살아남은 폴과 제시카의 아라키스의 적응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앞선 줄거리에서 생략된 중요한 내용 중 하나로 폴은 스파이스를 흡입하여 예지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가 본 미래의 파편은 대규모 전투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성전같이 보인다. 이러한 폴의 출생은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세계관 속에 흑막인 베네 게세리트로 이다. 이 집단은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스파이스를 통해 각성된 능력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말로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 그리고 잉태된 아이의 성별도 변경이 가능하다.
베네 게세리트로의 목표는 퀴사츠 헤드락이라는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린다. 이들이 보는 미래는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조각의 은유로 정확히 파악이 힘들다. 하지만 이 퀴사츠 헤드락이라는 존재는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고 무수한 선택의 수를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베네 게세리트로는 이 메시아의 탄생을 위해 무려 90세대를 걸쳐 명망 있는 가문의 유전자를 개량하고 조작해 왔다. 폴의 어머니인 제시카도 이 집단의 일원이었다. 원래 베네 게세리트로의 계획되로라면 그녀는 레토공작의 딸을 출산해야 했다.
하지만 지시를 어기고 사랑하는 사람의 바람인 아들을 출산한다. 그로 인해 폴은 베네 게세리트로에게는 예기치 못한 통제 불가한 변수이고 한편으로는 퀴사츠헤드락 후보군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런 불안전한 상황의 존재들이 아라키스에 살아 있다는 것이 불안하고 두렵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대적할 자이며 또 다른 퀴사츠헤드락 존재가 될 수도 있는 하코넨 가문의 페이드로타와 접촉한다.
한편 폴과 제시카는 아라키스에서의 적응이 쉽지가 않다. 여전히 그들을 향한 불신의 눈길은 사라지지 않고 발목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제시카는 아들을 지켜달라는 레토 공작의 유언과 복수를 위해 프레맨의 대모가 되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아라키스의 신적인 존재이며 스파이스를 만들어내는 샤이훌루드라는 모래벌레의 분비물을 마셔야 했다. 생명의 물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것을 먹게 되면 이전에 살았던 모든 프레멘의 선조들의 유전적 기억을 부여받게 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지식과 능력이 해금된다.
제시카가 대모가 되어 프레맨의 집단 속에 녹아들었다면 폴은 프레맨의 전사가 되기에 앞장선다. 그 과정 속에 그를 이끌어주는 존재로 스틸가와 챠니가 있다. 스틸 가는 프레맨을 낙원으로 이끌어 줄 메시아로 구전되는 리산알가입을 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진정한 전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 반면 챠니는 앞서 폴이 스파이스를 흡입하고 보게 된 미래의 파편 속에 나온 인물이다. 그러기에 그는 그녀에 대한 관심과 묘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챠니 또한 처음에는 배척적인 마인드에서 벗어나 점점 프레맨으로 적응해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스틸가가 믿는 리산알가입은 사실 베네 게세리트로가가 아라키스의 오래전 침입하여 전파한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메시아인 퀴사츠 헤드락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기 위한 밑작업을 이미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폴은 스틸가를 제외한 그를 불신하는 존재 앞에서 자신을 증명한다. 프레맨들의 방식을 습득하고 문화를 이해하고 종국에는 샤이훌루드를 타는 마지막 시험대까지 통과한다. 스틸가가 뿐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는 다수가 그가 아라키스의 메시아인 리산알가입으로 불린다.
하지만 폴은 그것이 썩 반갑지는 않다. 자신은 메시아가 아닐뿐더러 그 리산알가입의 존재로 인정되게 된다면 어마 어마한 인명피해와 처참한 전쟁의 상황이 일어나는 미래의 파편을 보았기 때문에 거부한다. 하지만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제시카는 대모가 되어 폴의 존재를 구원으로 부각한다.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고 폴은 그렇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간다. 복수와 구원의 길에 기다리는 전쟁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렇게 위대한 영웅의 성전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이 영화는 방대한 서사시이다. 마치 내가 반지제왕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웅장함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 가시지 않는 여운은 감탄의 찬사가 절로 내뱉어진다. 사실 원작 소설이 대단한 작품이고 이전에 영화한 작품들도 괜찮았다는 후문을 들었기에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1편에서는 뭔가 에이 그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이 과장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 후속 편이 나온다 하여 의무감에 관람을 하였는데 이제야 그 매력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일단 이번 파트 2가 좋았던 부분은 생각보다 빠른 전개였다. 아무래도 방대한 세계관과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을 했다면 이번 작품은 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그래서 곁가지의 이야기에 대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상당한 인물에 대한 몰입감이 높다. 폴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감정적인 고뇌와 흔들림에 대해서도 집중해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운명의 수레 앞에서 갈등하는 내면의 연기가 돋보인 것도 이러한 전개 방식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상미 또한 빠질 것 없이 웅장하고 멋있었다. 이번 작품의 주 배경이 되는 곳이 사막인데 거대하면서 삭만 한 공간에 생동감과 생명력이 느껴지게 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보였다. 이러한 연출을 위해 다양한 화각으로 촬영을 하였다고 한다. 특히나 폴이 프레맨으로 인정받기 위해 샤이훌리드를 타는 장면은 장엄함의 방점을 찍어버린다. 더불어 페이드로타의 검투씬은 흑백으로 표현한 것은 상당히 독특하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페이드로타와 하코넨이 영웅에 반대하는 느낌으로 연출하기 위해 단색의 느낌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파트 2에서는 전편에 비해 액션씬들도 뛰어났다. 프레맨의 전투의 방식은 상당히 역동적이고 신선함이 느껴졌다. 영화 전반부 챠니와 폴이 펼치는 게릴라 작전은 그러한 부분이 잘 살려진 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더불어 후반부 절정의 액션씬은 과장 한 스푼 보태서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의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전편에 비해 선함 이들이나 기계들을 활용한 액션 장면들도 다양하게 표현되어 보는 재미가 꽤나 있었다.
한스짐머가 맡은 음악은 상당히 적재적소에 잘 입혀져 서사의 웅장함을 극대화시켜 준다. 초반부에는 상당히 절제하면서 점차 그러데이션처럼 입혀지는 소리가 완급 조절이 기가 막히게 연출되어 있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의 분위기는 보는 이들로 한 매력의 포인트가 된다. 더불어 한스짐머의 음악이 더 돋보였 던 것은 그런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그 공간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서 기가 막히게 사운드에 질감을 입혀 관객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을 한다. 개인적으로 그가 작업한 작품들 중 역작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것 없이 만족스러웠다. 영웅의 탄생과 서사라는 점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폴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는 정말 뛰어난 연기였다. 유약한 공작의 아들에서 프레맨의 전사 그리고 종국에는 리산알가입으로 메시아가 돼 가는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는 감정의 변화와 대사의 전달력은 상당한 몰입감을 준다. 그동안 글로 보고 상상했던 신화의 한 장면을 눈으로 확인해 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의 주변인들로 나오는 인물들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일단 퀴사츠헤드락의 또 다른 후보인 페드로로타의 광기의 모습은 섬뜩하였다. 영웅의 탄생에 있어 필연적인 대적자의 일부로 확실히 대비되는 존재로서의 느낌을 확실히 살리고 있다. 더불어 이야기에서 큰 역할을 하는 믿음의 신도이자 폴의 프레맨 스승인 스틸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리산알가입이라는 메시아에 대한 신념이 강한 부분이 자칫 서사의 전개 과정에서 오버스럽고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려는 하비에르바르뎀의 연기 하나로 사그라든다. 그의 강약을 조절하는 톤과 표정은 역시 클래스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 속 여인들의 캐릭터들도 연기가 마음에 들었고 눈길이 갔다. 어머니를 연기한 제시카도 선택으로 인한 감정이 입체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를 레베카 퍼거슨이 잘 살려주었다. 차곡차곡 쌓여가 종국에서 폭발해 나가는 인물의 모습은 그녀가 전편에서 베네 게세리트에 순종적이고 저항하지 못한 부분과는 상반되어 보인다. 더불어 극 초반 이번편의 이야기 확장으로 도입부에서 흐름을 잡아주는 이룰 란 공주의 연기를 한 폴라렉스 퓨도 인상적이었다. 차후 다음이야기에서 어떻게 폴과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며 기대감이 들었다.
영웅의 연인인 챠니라는 캐릭터도 흥미로웠다. 그동안 이 역할을 연기한 젠데이아를 떠올리면 스파이더맨의 MJ를 먼저 연상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이미지는 구함을 받고 위기로부터 지켜지는 느낌이 나에게는 강렬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자립적이고 또한 위기에 맞서 강렬히 대응하는 전사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연기가 흥미로웠던 것은 이야기 속에 폴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 메시아의 존재로서 인식한다. 하지만 단 한 명 챠니만은 인간 폴로 바라보고 연민하며 그의 거대한 짐을 안타까워한다. 이를 젠데이아가 잘 살려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재관람을 하고 싶은 영화였다. 웅장하지만 그 여정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빠른 전개에 압축적이고 생략된 부분들도 있지만 함유된 은유는 묵직하다. 벌써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들었고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를 바라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왠지 막이 올라가고 사람들이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들을 보고 다들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기 전 꼭 전편을 복습하고 보아야 된다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