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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Apr 07. 2024

부산 밀면

일미 밀면

 쉬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처음은 막연하였다. 무언가 갈 곳이 나를 찾는 곳이 없어졌음에 불안한 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나를 위해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걱정하지 않고 시간을 할애한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온전히 쉼을 즐기려 하고 꽤나 나름 실천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디로 가야 할까는 조금은 후순위로 밀어 두었다.


 그래서 떠나는 것이 이제는 그리 낯설지는 않다. 가방과 몇 가지 짐만 가지고 즉흥적으로 발길을 나선다. 그것이 꽤나 즐거운 유흥과 여운을 주기에  나는 이 시간을 소중하다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것이 무너지기도 한다. 본성적으로 눈치 보는 습성과 소심함이 그동안 직장생활로 인해 커져버려 무의식 중 툭툭 자제를 못하고 튀어나온다. 그것들 중 가장 나를 불편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그동안은 나름 안정적인 위치와 수입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럼에도 그리 그것을 낙관적이지 부정적이게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름의 생각도 하며 여러 길을 모색한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들의 눈에는 나를 걱정을 넘어 훈수를 두는 유흥을. 즐긴다. 그것이 유쾌하지 않고 씁쓸한 마음을 전달한다. 우리는 누구의 인생에 쉽게 평가를 할 수 없다.



  때로는 상황이 이리저리 바뀔 수도 있고 위치의 역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 항상 겸손하고 섣부르면 안 된다라 생각한다. 근데 이것을 넘어 나를 괴롭게 하는 시선이 있다. 바로 변해버린 거리감이다. 내가 무언가를 지고 있을 때는 가깝던 이들이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대하는 냉랭함이 나는 무섭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변함의 크기가 작기를 심정적으로 바랬다.


 같은 곳에서 일했던 직장 동료를 시간이 돼 매장에서 본 적이 있다. 미묘하게 나를 불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피해 주었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안녕을 하며 헤어졌다. 하지만 얼마 전 그 친구는 분명 거리에서 나를 보고 눈치를 보며 돌아서 길을 가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갑자기 내가 그렇게 취급받는 것이 억울함이 들었다. 호환마마도 아니고 돌아서 갈 정도인가라며 사람의 좁은 마음에 내가 가지고 있을 때 베풀어주고 해준 것들에 대해 생각이 났다. 그때는 받으며 기뻐하고 누리려 하고 감사의 연신하였는데 지금은 나를 이런 취급하는 것이 화가 나고 슬펐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지금은 그 자리가 아니니라는 것으로 상황을 자각시켰다.


 그래서 나는 쉼에 있어 찾으려 한다. 영원히 변치 않는 것들은 없다. 그래도 조금은 더디게 바뀌어지거나 따뜻한 마음은 유지가 되는 것들을 찾고자 떠난다. 많지가 않은 것들이라 헛걸음이 대부분이지만 그 과정만으로 위안이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발견하여 이렇게 나의 감정을 글로 남기고 순간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즐겁다. 오늘도 찾으려 하고 그 속에는 실패도 성공도 그리 중요치 안 다라 생각하며 발길을 떼어보았다.


일미밀면


  나는 면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얼마나라는 정도를 표현하자면 어릴 적 이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큰 수술을 해야 해서 한 달간 타지방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방학기간이라 학교는 가지 않았지만 끼니의 걱정이 문제였다. 아버지도 일을 하며 틈틈이 병원을 오갔기에 챙겨줄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동내의 어머니와 친한 아주머니들이 반찬이나 친척들이 가끔 돌바 주는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시원한 해답은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당시 라면공장을 다니시는 큰어머니가 우리 집에 방문을 하였다. 그리고 비빔면 한 박스를 가지고 오셨다. 주변에서 못 챙겨 줄 때는 이 라면으로 대체해 먹으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그 뒤로 삼시 세끼를 라면을 먹었다. 그것이 너무 맛있고 좋았다. 하지만 과함의 결말은 탈을 불렀고 지독한 장염으로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보통은 이러한 해를 입으면 피하기 마련인데 나는 장염이 괜찮아지자마자 또 라면을 먹었다.



  아픔의 해소는 통증의 완화보다 다시 그것을 먹기 위함 바람이 컸다. 비단 라면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면요리에 대한 불호는 없었다. 일단 면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나에게는 큰 점수를 얻고 갔다. 메뉴가 고민이 될 때면 그냥 면요리가 전제조건으로 따라가다 보니 가끔은 선택에 주저하는 내게 꽤나 이른 결단력 있는 결정을 주기도 하였다.


 직장 때문에 부산에 와서는 이 지역에서 근본으로 취급되는 돼지국밥을 많이 먹었다. 근데 그에 못지않게 나의 식가 메뉴가 되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밀면이다. 카드 결제 내역을 보면 국밥집 밀면집이 번갈아가며 사이좋게 있었다. 부산하면  국밥이 대표적인 음식이지만 그 못지않게 밀면 또한 그에 비등한 상징적인 취급을 받는다.    


  아이러니하지만 오늘의 음식들의 메뉴들 중 일부는 한국전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밀면 또한 이에 해당된다. 부산으로 엄청난 인파의 실향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시킬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음식만이 잠깐은 삭혀주는 정도였다고 한다.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고향의 냉면을 생각하며 만들었던 것이 밀면이다.


 하지만 밀면은 냉면과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메밀 전분과 고구마 전분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 냉면이지만 한국전쟁 당시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에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미군부대에서 배식으로 나온 밀가루를 대체하여 만들었던 것이다. 더불어 경상도 자방의 자극적인 입맛에 맵고 달고 짠 형태로 변모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밀면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면을 좋아하는 내게 최적화된 밀면을 부산에 와서 외면하고 갈 수 없었다. 사실 돼지 국밥만큼 밀면집들도 맛의 평준화가 되어있어서 가까운 곳을 가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왠지 뭔가 오랜 시간 유지하고 노포스러운 분위기가 당겼다. 변하는 것들이 요즘따라 슬프게 느껴졌다. 그래서 시간을 더디게 흘려보내며 버티고 있는 곳들을 보면 반갑게 느껴졌다.


 여러 선택지에서 골목 사이에 허름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가게를 한 곳 찾아갔다. 빛바랜 간판에서 느껴지는 첫인상이 만족스러웠다. 나의 의도에 맞게 잘 찾아온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좁은 공간에  테이블들이 붙어있어서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질 것 같았다. 안쪽 좌식테이블에서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반주 한잔들을 걸친 것 같아 보였다. 밀면과 수육 그리고 시원이 2병 놓여있었다.



 왠지 저들의 틈에 끼여서 왁자지껄 담소도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 속에는 우정도 현실의 장벽에 변해가기에 지금 내게 함께하는 이 없는 솔로의 몸인 것이다. 그립고 정겨움에 간판에서 느꼈던 첫인상에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주문을 하였고 나는 나의 테이블 뒤에 위치한 노신사 분들의 담소를 귀 기울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살얼음이 시원한 인상을 준다. 아직 여름을 맞이하지 않았지만 미리 더위를 예방하는 느낌이다. 올해 첫 밀면의 개시는 역시 국물부터 먹어보는 것이 순서이다. 시원하게 머리를 찡하게 만들면서 혀끝에서 느껴지는 단맛이 꽤나 즐겁다. 본격적으로 면을 젓가락으로 움켜쥐고 흡입하였다. 면발의 탱탱함이 식감에 있어 좋은 인상을 선사해 주었다.


고명으로 올라간 고기고명을 먹어보았다. 음 개별적으로 엄청 인상적인 맛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이 음식에 녹아들어 좋은 밸런스를 유지한다. 고기 외에 계란 고명도 있는데 순서라면 가장 먹기 전에 먹어야 했는데 흥분하여 놓쳐버렸다. 그래서 젓가락으로 잡아 입안으로 넣었다. 퍽퍽한 계란의 식감을 머금고 국물로 시원하게 식혀버린다. 진하게 느껴지는 묵직함과 한약재 향이 전달되며 와 라는 탄사를 나오게 만들었다.



 적당한 양에 면에 포만감은 서서히 채워진다. 사실 수육까지 같이 시켜 학생들처럼 반주 한잔을 걸치고 싶었지만 예전 같지 않은 소화력에 자제를 하였다. 왠지 이럴 때 은근히 서글프다. 더 느끼고 더 즐기고 싶은데 마음은 늙지 않았는데 몸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항상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한다. 그래서 끝의 여운은 다음을 기다리게 만든다. 정신없이 면치기를 하다 보니 하나 둘 손님들이 들어와 빈 공간을 채웠다.


  즐거운 소음이다.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삶의 이야기가 오간다. 왠지 휴대폰에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니스트 중 골라 튼 느낀 이 들었다. 부산사람들의 사투리 톤에 귀 기울이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느새 비어진 바닥을 보인 그릇에 떠나야 함이 서글프다. 그래도 일어나야 하고 돌아가야 한다. 나의 조금은 더디게 흘러가는 말썽꾸러기 냥냥이들이 있는 집으로 말이다. 변함없이 나의 발소리를 듣고 마중 나오는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는 괜스레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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