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 낯선 것들의 조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낯선 것들에 기피를 함이 뒤따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익숙함에서는 안정감이라는 감정을 중시하게 된다. 그것이 주는 변수가 없다는 것이 걱정을 덜어 준다. 하지만 이 지루하게 도돌이표 시간은 가슴속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만든다. 왠지 이 틀에서 벗어나면 나는 불행해지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무심코 그 선을 살짝 넘어 보았는데 크게 별 탈이 없다. 오히려 재미나고 흥미롭다. 나는 다시 유아기의 걸음마를 하듯 뒤뚱뒤뚱 무게중심을 잡으면 일탈의 순간을 즐겨본다.
나의 낯섦에 대한 접근은 공간에 대한 부분의 비중이 크다.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이동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수단적으로 보면 다양한 것들이 포진되어 있다. 육신의 일부분인 다리를 이용하는 것 버스나 기차와 같은 장치를 이용하는 것들도 있다. 이의 차이는 한걸음 더 멀리 갈 수 있냐에 있다. 역시 육체보다 장치를 이용한 것은 제약이 줄어들고 효율적이다. 그리고 더 빠르고 더 많은 걸음을 나갈 수 있는 것의 정점은 비행기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을 가르며 이동하는 이 수단이 주는 나에 대한 감정은 묘하다. 보기 힘든 장관을 그 속에 있는 동안 보여주며 빠르게 목적지로 도달함에 경이로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이질적이고 잘 접하지 못함에 낯 섬은 중화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한다. 문득 이 하얀 공허한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길을 찾는 조정사들은 이탈하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신기하게 느껴진다. 나의 부질없는 망상은 확장되어 불안의 불씨가 조금씩 커진다. 만약 목적지를 벗어나 방황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스크린 속 한 작품을 마주하여 보았다.
하나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이 바뀐 이 가 있다. 그의 이름은 태인이라는 한때 공군 조정사였고 지금은 민항공기 부기장이다. 인생의 수많은 선택들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예기 못한 범주에서 벌어진 사건에서는 망설임가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태인에게도 이는 해당되었다. 공군에 재직 중 후배 동철과 비행연습을 한 적이 있었다. 별일 없는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하나의 장면을 그들은 목격한다. 바로 자신과 동거동락한 적이 있던 예편한 선배의 민수의 민항기가 하이재킹 당한 것을 보았다.
매뉴얼대로라면 경고 방송을 하고 이륙을 유도하고 최후 경계선을 넘어가면 격추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납북된 비행기 속 고객과 민수 형의 모습을 보고 차마 공격하지는 못한다. 그로 인해 민항기는 북으로 넘어가고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문책성으로 태민은 예편하게 된다. 이후 항공사에 조정사로 취업하지만 그의 선택으로 납북된 여객기 사건은 꼬리표처럼 따라와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다.
다행히도 납북된 비행기의 고객들은 다시 송환되지만 일부 기술직 인원들인 조정사와 승무원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결국 민수 형은 집으로 귀환되지 못하고 그의 가족은 원치 않게 이산가족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태민은 그들을 가족처럼 돌봐주면서 자신이 선택했던 순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되묻게 된다. 일련의 송환 뉴스가 돌아와 여느 순간처럼 비행을 배정받고 속초 공항으로 향한다. 민수의 친구였던 규식이라는 기장과 함께 콤비가 되어 속초에서 김포로 향하게 된다.
규식은 여느 동료들과는 달리 태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그의 사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다독여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외면당하는 태민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착륙 시 조정대를 맡겨주려 하였다. 1971년 비행기에 대한 대중화가 현격히 떨어진 시대 속에서 사람들의 선망의 눈길은 상당하다. 북쩍이는 공항 속에서 이 낯선 교통수단을 타기 위해 다들 설레어한다. 이 무리들 중에서 유독 이질적인 존재가 보인다. 거칠고 남루한 행색에 누가 봐도 비행기를 탈 여건이 돼 보이지 않는 이로 보인다. 이 남자의 이름은 용대이다.
그의 형은 6.25 전쟁 때 북한 장교로 공로를 세워 북쪽에서 정착한다. 반면 남아있던 용대와 그의 어머니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빨갱이로 낙인이 찍혀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학업도 취업도 힘들어진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용대는 경찰들에 자극에 폭행을 저지르고 감방에 가게 된다. 출소하여 돌아온 집에서는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의 시신만이 남아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아사로 돌아간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용대는 다짐한다. 이 땅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하이재킹을 하여 월북을 하는 것이다. 이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납북을 한 인물은 북한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으며 포상금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더욱 의지가 확고해진 그가 바로 태민의 비행기 탑승한다. 평온하게 비행을 가고 있던 안심의 순간 용대는 나선다. 자신이 만든 사재 폭탄을 터트려 조정실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통제해 버린다. 이 과정에서 규식은 한쪽 눈을 부상당해 시력을 잃게 되어 조정이 힘들어졌다. 현재 비행기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은 태민 밖에 없다. 북으로 가자고 겁박하는 용대 사이에서 나름의 탈출구를 찾으려 하는 동분서주가 펼쳐진다.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각자의 기준점이 있다. 내게는 배우에 의한 선택의 비중이 크다. 그래서 하이재킹이라는 출연진을 보고 단번에 끌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흥행에 있어서 잠깐의 부침이 있지만 매번 나오는 작품에서 자신의 연기를 독보적으로 보여주는 하정우라는 배우를 매우 좋아한다. 그의 커리어 중 황해나 추격자 같은 영화들도 뇌리에 깊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비스터보이즈, 멋진 하루 같은 작품들 속에 능구렁이 같은 캐릭터 연기를 인상 깊게 보았다.
확실히 그의 커리어를 반추해 보았을 때 이야기를 이끌고 풍성하게 만드는 능력은 있다. 이러한 하정우의 출연에 대한 신뢰에 여진구라는 아역부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은 배우와 조연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연기자 중 하나인 성동일이 추가되니 나오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개봉과 동시에 바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물론 감상글을 쓰는 것은 꽤나 시간이 지난 시점이지만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일단 이 영화의 이야기는 실화에 기반되었다.
대한항공 YS-11 납북사건과 대한항공 F27납북 미수사건을 연결해서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영화에 더 몰입감을 부여하고 있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꼬꼬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 사건들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말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알고 있었음에도 비행기 안에서 펼쳐지는 액션과 하정우와 여진구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들에 매우 재미나게 보았다.
하이재킹의 또 다른 매력의 한 포인트로 느껴졌던 것은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항공액션들이 나름 나쁘지 않게 보인다. 물론 탑건과 같은 해외영화들에 비해서는 떨어지지만 이질적이지 않은 CG와 짜임새 있는 플롯구성을 통해 메꾸려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부분도 면면히 따지면 그리 새로운 느낌의 변신은 거의 없었다. 여진구의 악역 도전이 조금 신선하게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익숙한 톤과 연기에서 장점만을 잘 뽑아내어 활용하였던 것 같다.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요즘 나오는 작품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들이 많은 하정우도 담백한 연기가 그동안 한참 좋았을 때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여진구가 맡은 용대라는 캐릭터가 단순한 악연이 아니고 사연이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채로운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꽤나 잘 연기하였던 것 같아 인상적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연기했던 세련된 이미지의 느낌이 다르게 보여서 한층 스텝업된 것으로 보였다.
영화에 대한 사건도 알았고 대략적으로 예고편을 보면서 이러한 장르적인 특성상 신파적인 부분이 강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었다. 하지만 막상 과잉으로 가지는 않고 적절히 선 타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으로 치우치기보다는 적절히 터트려 줄 곳에서는 보여주고 끌지 않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의외로 신파적인 이야기들이 거슬리는 부분들이 거의 없었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비행기에서 액션들이나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사운드로 인해 대사 전달이 잘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는 크게 단점들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포인트는 없었다. 생소까지는 아니지만 그리 익숙한 장르에 배우들의 연기와 실화 각색이 적절하게 앙상블을 맞추며 볼만한 영화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