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볕이 썩 나쁘지 않다. 물론 눈을 떠야 하고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이 잔잔한 평온함이 좋다. 나는 이 꽤나 균형 잡힌 안도감을 유지하기 위해 바라는 것들이 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깨어지지 않기를... 생각하여 본다. 나의 삶은 굴곡진 선이 없었다. 그냥 흐르는 물줄기는 크게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게 이젠 변수가 생겼다. 아니 어찌 보면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할 고개를 마주하였다. 나의 시야와 지식이 편협하기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울타리라는 개념에서 객체로서 인간을 보호해 주는 기간이 명시적으로 존재한다. 학교라는 곳이 그에 해당된다고 생각을 한다. 부유하지도 그리 가난하지도 않은 무난한 선에서 나는 무사하게도 보호받는 시간이 잘 지켜졌다.
그리고 운 좋게도 유예된 울타리는 대학교라는 공간까지 지속되었다. 학비 걱정 없이 지원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이 평온함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결국 선고의 날이 찾아오는 것이 필연이고 나는 시험을 받아 들어야 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대학이라는 곳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이 쓸모 있지는 않았었다. 단순히 졸업장이라는 것이 주는 적어도 낙오되지 않았다는 평가의 시선이 내겐 필요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 의미 있거나 즐겁지 않았다.
앞서 나에게 부여된 미션에 따라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후순위로 두고 성적에 맞추어 대학교라는 공간에 입장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삶이라는 길에서 선배였던 가족 친지들의 말에 홀려 조금 더 안정감을 주는 전공을 선택하였다. 행정학과라는 공무원을 위해 필요한 학습을 하는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료하고 앞으로 나의 삶을 의탁하기에 의미가 있냐라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물으면서 학년을 거쳐 지나갔다. 우물쭈물 내리지 못한 정답지는 결국 졸업까지 와버렸다.
그간 몇 번의 공무원의 시험에도 도전을 해보았다. 주변에서 의례 하는 것들이라 따라 해 보았지만 턱없이 높은 장벽에 낙방하였다. 내가 넘어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여보아도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애초에 시작이 즐겁지 못하였기에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지 않은 것이 나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었다. 하지만 길을 터는 것에는 두려움이 들었고 어영부영 흘러간 시간에 졸업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학점은 채웠고 많은 학부생들 사이에서 나의 미약한 존재감에 신경 쓰지 않은 교수님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짜깁기된 논문을 통과시켜 주었다. 정작 하나의 문턱을 넘기는 게 뭔 큰일인지 모르겠거니 괜스레 겁을 낸 건 아닌지 생각을 하다 혹여 낙오되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하였다. 이런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해 줄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여야 했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같은 처지의 취업전선에 친구들 그리고 어떻게든 몸을 의탁할 직장을 찾을 것이라 믿고 있는 부모님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이 내게 가치 있는 존재들이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나의 길에 조언자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이들을 찾아야 했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답은 나와 정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떨어진 이들이었다. 뚜렷한 주관이 없이 그냥 주어진 것들에 따라가기만 바쁘게 살았었다. 그러기에 나에 대한 요소들은 타의에 인한 선택된 것들이었다. 보기 드문 자의를 찾기 위해 뒤져보다 발견한 하나의 키워드는 영화였다. 사각의 스크린 사이에 나오는 영상과 웅장한 사운드가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좋았고 그 속의 영화에 빠져들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홀로 사유함이 지루해질 때쯤 소통이란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주변은 영화에 대한 생각은 단순유희의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대화의 흐름은 뚝 뚝 끊겼다. 시야를 확장하여 나의 세상밖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소모임이었다. 내가 사는 이 도시 속에서 찾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마땅한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인근 지역인 부산까지 확장하였고 한 곳이 나를 충족시켜 주었다.
그곳은 나에게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영화라는 매개체가 우리의 유대를 깊게 만들어주었다.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크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내할만한 즐거움이 있었다. 어느덧 2년간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나름의 소속감이 꽤나 쌓였다. 나는 이들에게 나의 상황에 대한 상담을 해보고자 마음먹었다. 다행히 정모 날짜가 근간에 있었다.
영화에 대한 열띤 소통이 끝난 뒤 뒤풀이에서 한 인물을 마주쳤다. 바로 그 주인공은 나와 4살 터울의 형님이었다. 내가 그에게 끌린 것은 항상 거침없이 들어내는 자신감이었다. 뭔가 미래에 대한 플랜을 가지고 살아갔고 착실하게 한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시도했다. 나와는 상반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혼돈의 뒤죽박죽의 등불에 심지를 켜주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밑밥을 깔다 시간이 지나 나의 화두를 던졌다. 지긋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참을 지나서 입을 열었다.
“준아 너 어릴 때 에스컬레이터 처음 탈 때 기억나니? 형은 무서웠다. 막 올라가는 발판들 사이에서 언제 이 선을 넘어야 할까. 막 삐꺽 거리며 넘어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한참을 그 앞에서 주저했다.
근데 있잖아 막상 지나고 나니 별거 없더라 그냥 툭 발을 내밀고 서있으면 되더라. 네 맘 이해하는데 사회라는 곳 별거 없어. 그냥 툭 넘어가서 발판을 밟고 올라가면 되는 거야. 또 그러다 아니다 싶음 내려서 또 갈아타면 되는 거고 두려워하지 마. 그냥 너한테 일어날 어떤 일들을 즐기고 받아들여 “
이야기가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 막연한 두려움은 내가 언제 이 울타리를 나가야 하는 거였다. 지레 겁이 났다. 일어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상상의 미래가 말이다. 그래서 아직은 안전선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억지를 부리며 남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것이 나에게 평온함이라는 것으로 여겨지며 회피하였던 것 같다.
자리가 파해지고 나서 돌아가는 길 약간의 취기와 함께 유난히도 달이 밝게 보였다. 이젠 나에게 아무것이든 일어났으면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만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리라라는 마음을 먹어졌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