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드디어 졸업의 날이 찾아왔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학사모를 던지며 축하를 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표정들이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정말 축하의 자리에 어울리는 얼굴들도 있었지만 대게는 웃음 속에 뭔가 불안함을 감춰지지 않아 보이는 것이 티가 났다. 어찌 보면 관찰자이자 내부자인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덤덤하고 별생각이 없었다. 그냥 그저 그런 하루의 느낌이 들었었다. 학교를 찾아온 부모님에게 꽃다발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축하의 날이라 생각했는지 좋은 한우 고기 집을 예약하여 이동하였다. 룸으로 된 공간으로 안내를 받고 자리에 착석하였다. 육질이 좋은 고기들이 준비가 되고 테이블에 찬들이 세팅이 되었다. 고기를 불판 위에 놓고 멍하니 익기만을 바라보았다. 적당히 익혀진 상태가 되어서 한 점을 집어 먹었는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외식도 반가웠지만 한우의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젓가락질을 어느 정도 하며 배를 채웠을 때쯤 헛기침을 아버지가 하기 시작하여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내심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이 되었다. 역시나 앞으로의 나의 진로에 대한 부분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말고 깊이 생각해서 선택해 보라 하였지만 은근한 압박감이 조여 온다. 부모님은 은근 내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여 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부분에서는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기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낭비를 하면서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대충 장단을 맞추는 답변을 하였지만 다른 길을 어서 찾아봐야겠다 다짐을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동상이몽을 하며 시간은 지나갔다. 2주 정도 흘렀고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었지만 시장에서 나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높지는 않다는 사실만이 전달되었다. 지갑도 비어 가고 집에 있는 것도 눈치가 보이면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된 나라는 고민이 들었다. 구인광고 사이트에 들어가 일할만한 적당한 자리들을 찾아보았다. 썩 만족스러운 조건의 일들이 없어 고민을 할 때쯤 의외의 곳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일전의 모임에서 나의 고민상담을 들어준 형님에게서 하나의 제안이 들어왔다.
근래에 체험학습이 부쩍 늘어났다. 시간을 공유하면서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에 의미 부여가 되면서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주말 또는 휴일을 하루를 할애하였다. 급작스럽게 늘어난 수요에 공급자들의 인력난이 부족한 상황이 나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형님의 본가의 집이 양산에서 딸기 농장을 하는데 처음으로 온라인에 체험학습 상품을 등록하며 판매를 하였는데 그 반응이 꽤나 좋았었다. 예상치를 넘어서니 기존의 일손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에 구인광고까지 올렸으나 대중교통편도 드물고 촌구석에 오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들인 자기 나름대로 일한 사람을 아름아름 알아본 것이다.
그러던 중 내가 생각이 났고 그래서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정말 반가운 제안이었다. 돈도 벌고 집의 눈치도 살짝 벗어날 수 있는 구실이 되기에 말이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을 하겠다고 답을 하였다. 형님은 농장의 위치와 출근할 날짜를 전달해 주고 그날 보자고 하였다. 시간이 지나 D-DAY가 찾아왔고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집을 나섰다. 일단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번거로운 편이기는 하였다. 버스를 1번 갈아타야 하여야 했다. 일단 지역 간 이동을 하는 버스가 도착하는 정류장에 내려서 기다렸다가 환승을 해야 했다.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것이 그리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버스는 달려 목적지 인근에 위치한 정류장에 멈춰 섰다. 휴대폰으로 형님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인근까지 마중을 나와주었다. 약 5분 정도를 따라 걸으니 비닐하우스가 보이는 곳에서 멈추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는 커 보였다. 간략히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해서 설명받고 발사이즈를 물어보더니 장화를 가지고 와서 갈아 신으라고 했다. 아직 체험학습 전이라 고요한 작업장에 먼저 들어가 전달받은 매뉴얼과 업무에 대해 나름의 시뮬레이션을 그려보면서 이렇게 대처하고 저렇게 안내해야지 하면서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여보았다.
하지만 막상 준비를 하여도 변수가 내 앞에 닥치면 응용력이 좋지 못한 나는 뇌정지가 와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화되기에 필요한 텀은 꽤나 걸린다. 역시나 밀어닥치는 손님들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냥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였다. 첫 타임 팀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혼이 나가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이런 상태를 먼저 바라본 형님이 다가와서 다독이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멘트를 날려주었다.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다음번에는 조금 더 나아져보자 정신을 다 잡았다.
엄청나게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점차 이 공간의 분위기에 적응해 나가면서 목소리도 한층 커졌다. 마지막 차례쯤 되니 그래도 어설프지만 곧잘 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이 끝나니 하얀 봉투를 일당이라면서 형님이 나에게 주었다.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과 수입이라는 기쁨이 참지 못하고 미소로 나왔다. 돌아가는 길이 왠지 신이 나는 느낌이 들고 전혀 고되고 길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 1주 차가 끝날 때쯤 자연스럽게 1인분의 몫으로 업무를 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복잡하지 않았다. 여러 사로로 나눠진 하우스에서 들어오는 고객들의 속도 조절과 미처 여물지 못한 딸기들은 따지 못하게 통제하고 나눠진 바구니에 너무 과하게 담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대게는 손님들은 안내를 받으면 잘 따르는 편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뭔가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워하는 표정들을 보이면서 체험학습을 즐겼다. 하지만 어디든 예상 밖의 변수는 존재하듯 통제와 안내를 무시하는 이들은 있었다. 특히 그런 부류 중에서 골피 아픈 것은 욕심을 보이는 손님들이었다. 게이지를 넘어 담아버린 딸기는 바닥에 떨어져 밟히고 상품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그런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눌러 담아 버린다.
2~3번의 안내에도 말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내심 소심한 나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체념을 하고 뒤에 고객들에 신경 쓰지만 부정적인 것들은 가끔 전염이 되어 퍼지기도 하듯 그들을 보고 또 따라 한다. 어느 날은 그냥 별말하지 않고 멍하니 그네들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가끔 문제와 오류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듯 내게도 무언가가 느껴졌다. 욕심이란 것을 표출하여 행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뭔가 생기와 열망이 느껴졌다.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 그것이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내게는 욕심이란 것이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뭐 하나 더 가지자고 치열하게 투쟁하거나 의지를 표출한 적이 거의 없었다. 어찌 보면 그래서 나는 선택의 길 앞에서 방황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처럼 욕심을 가지고 나의 방향성과 목표를 설정하여하는 것이 필요했다. 뜻하지 않게 결여된 것에 대한 경각심을 깨달은 것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나는 어떤 욕심을 가져보아야 할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