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삶은 쓸모의 탐구의 연속이다. 마치 흩뜨려진 퍼즐 틈 사이에 던져져 적절한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 막연함은 두려움의 감정을 동반한다. 과연 이 피스가 여기가 어울리는 걸까라는 물음표에 고민이 된다. 나 또한 그러했고 어느 그림의 조각으로 있어서 쓸모의 목표를 달성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의 피스는 완성된 퍼즐 아귀에 잘 맞물리지는 못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다시 수많은 퍼즐 중 하나로 버려지게 되었다.
하얀 공백의 시간이 공교룝게 주어지면서 내 삶의 변한 것들이 있었다. 물음표가 덕지덕지 많아 붙여졌다. 그동안은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고 그냥 단정되어버린 정의를 따르기만 했었다. 왜 그런 것일까 반문을 하게 된 탐구의 시간들은 쓸모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조각들은 타인에 맞춰려가려했었다. 나의 의지는 없었고 그 의미는 단편적이었다. 오직 그림의 완성이라는 사명 그 속에서 나의 행복은 없었다. 하지만 쳇바퀴 튕겨져 나오니 알게 되었다. 모든 삶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나에게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은 이 쓸모에 대한 의식의 전환으로 영감을 준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 줄거리
여기 죽음이 직업인 남자가 있다. 그는 죽는 게 일상이며 그리고 또다시 죽기 위해 살아난다. 이 존재의 죽음은 증명이라는 용도에서 그 쓸모를 하고 있어 보인다. 미키반스라는 남자의 일상은 마치 실험실에 생체 실험에 쥐와 같다. 바이러스의 치명성을 확인하기 위해 미지의 환경에 문제를 먼저 확인하고자 지원된다. 그의 존재는 오답노트이다. 틀림을 확인하고 수정해 나가는 지표이다.
미키반스가 이러한 존재가 된 과정에는 티모라는 남자와 관련 있다. 햄버거의 시대가 저물고 마카롱이 압도하는 트렌드가 나올 거라는 티모의 꼬드김에 둘은 사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체로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미키반스와 티모에게도 그러했다. 결국 남은 것은 막대한 빚이었고 설상가상 악덕 사채업자의 다리우스의 돈까지 끌어 쓴 것이 화가 되었다.
다리우스는 변제에 큰 관심이 없다. 채무를 다하지 못한 이들을 가학적으로 살해하는 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한다. 미키와 티모는 벼랑 끝에 벗어날 방법은 지구를 떠나는 것이라 생각하고 우주 개척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된다. 입담이 좋고 천성이 사기꾼 기질이 있는 티모는 수많은 경쟁에서 자기 자리를 선점하게 된다. 반면 미키는 뚜렷한 재능도 자격증도 없다. 그러다 안내지에 익스펜더블이라는 프로그램에 지원을 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인간의 기억을 벽돌만 한 크기에 저장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리프린팅을 한다. 또 하나의 같은 생명체가 생겨나게 된다. 이 익스펜더블이라는 프로젝트는 혁신적인 기술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종교적 문제가 제기되고 결국 한정적으로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하나의 객체가 죽으면 다시 리프린팅 하는 것으로 정해진다. 이 프로그램에 미키가 지원한 것이었다. 그는 이 내용을 인지하지 않고 무작정 지원하였다. 하지만 단독후보라 신청과 동시에 합격이 되어버린다.
우주선을 타고 그는 죽고 다시 리프리팅 되어 살아난다. 미키에게 죽음은 일상이고 익숙해졌다. 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고 쉼표이다. 다시 살아나기에 말이다. 기계적인 죽음에서 미키에게 감정은 무뎌지고 무감 감해진다. 하지만 모든 변화는 작은 것에서 발발하듯 우연히 식당에서 마주한 나샤와의 교류를 통해 바뀌어진다. 둘은 스파크가 터져 반짝이는 불빛처럼 사랑을 하고 관계에 끈을 맺는다.
삶의 의미가 생겨난 것 같아 보인다. 우주원정대는 니플하임이라는 행성을 발견하게 되고 여지없이 탐사의 오답노트로 미키는 활용되고 그 과정에서 이미 그곳에 존재하였던 생물체를 만난다. 경계를 하면서 대응하는 와중 여성동료가 죽게 되고 그 책임은 미키에게 과중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이 주어진다. 그러던 중 탐사의 과정에서 조난당하게 되고 17번째 리프린팅 된 미키 17은 담담히 그 상황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행성에 토착 존재인 콩벌레와 같은 유형의 존재인 크리퍼라고 명명한 생명체가 미키 17에게 다가온다. 잡아먹힐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미키 17을 살려서 돌려보내준다.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다시 미키는 리프팅되었고 그 존재를 마주한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같은 존재지만 상당히 다른 인격이다. 이 과정은 일어나면 오류이다.
멀티플이라는 불리는 하나 이상의 존재가 리프린팅 됨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이는 발견즉시 기억삭제 및 폐기를 당한다. 그래서 둘은 다툼을 하는데 점점 상황은 꼬여지게 된다. 더불어 이 우주 탐사 프로젝트의 장인 마샬부부의 잘못된 신념과 광기에 크리퍼를 죽이면서 니플하임의 또 다른 크리퍼들이 분노하면서 대치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키들은 결국 각각의 선택을 하게 된다.
리뷰
바야흐로 OTT 대항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일원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 이 좋은 편의성을 벗어나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극장가를 가서 표를 예매하고 영화를 볼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바람은 생각보다 이루어지기 힘들다. 패러다임의 변화의 구버전은 자연스레 메리트가 떨어지고 후순위로 밀려난다. 결국 극장가에 작품이 새롭게 걸리는 것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오히려 예전 작품들을 재탕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금의 현실이 너무나도 아쉬운 나에게 이 작품은 단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개봉과 동시에 첫회차로 관람을 하였다. 상영관을 나온 나의 생각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일단 미키 17의 끌림의 포인트 중 하나는 연출자가 봉준호라는 점이다. 폴란다스의 개부터 괴물,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까지 나는 그의 작품을 빠짐없이 보았다. 내게 개인적으로 좋은 감독으로 인식되는 기준으로 일관성을 중시 여긴다. 뚜렷하게 자신의 메시지 그리고 스타일을 가지고 감이 끌림의 수치를 더 높인다. 이러한 부분에서 봉준호는 나에게는 매우 좋은 감독으로 느껴진다.
그는 일관되게 세상을 비꼬고 유쾌하게 비판을 한다. 어찌 보면 비꼼과 유쾌라는 것은 상충되는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사전적인 의미 부분에서 부정과 긍정적임이 같이 공존하기 힘든 것들이 같은 메시지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나는 코엔형제와 봉준호가 매우 유사한 느낌이 든다. 둘 다 블랙코미디의 연출로 풍자의 대가들이 다라 생각된다.
이번 영화 미키 17은 봉준호만의 일관된 색깔의 메시지가 느껴졌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꼼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이야기 속 시대는 특정되지는 않지만 상당히 격차가 느껴질 뭔 미래는 아닌 것 같다. 얼핏 묘사되는 배경들은 지구는 황폐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생존 본능은 새로운 대안의 요소로 우주를 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 미래
그 과정에서 영화 전개에 큰 줄기가 되는 소재로 휴먼 리프린팅인 익스펜더블 프로젝트가 나온다. 기술의 발전은 환경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맞춰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이다. 때로는 흐름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발생이 되면서 목적이 희석되고 방법이 그 자리를 더 비중을 채우게 된다. 익스펜더블이라는 프로젝트도 그러한 일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프린팅 하여 또 다른 객체로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결과물을 이용하여 인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윤택한 연구를 증명해내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방지턱이 우리를 멈춰 세운다. 리프린팅 된 생명체는 인간인 걸까 아닌가라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영화는 멀티플이라는 다중으로 생선 된 리프린팅 결과물들이 일으킨 사고로 무게 추를 살짝 한편으로 기울이게 된다.
제한장치로 우주라는 한정적인 환경적 조건을 걸어둔다. 이 과정에서 리프린팅 결과물을 기술발전의 수단이자 피조물로 인식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미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부분이 잘나 탄다. 온갖 실험에 동원되면서 용도가 다하면 폐기하고 다시 리프린팅 한다. 이 일련의 행태들을 보면 주변인들은 비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그 단편적인 부분이 마샬부부의 식사 초대자리이다.
인공배양육을 그에게 먹이면서 테스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미키에게 진통제 실험을 한다. 그리고 효과가 보이지 않자 스스럼없이 총으로 죽이려 한다. 그들의 인식에 미키는 인간이 아닌 실험쥐와 같아 보인다. 그러기에 마샬부부과 같은 인물들은 하등생명체 불량품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게 된다면 리프팅된 미키는 같은 인간 미키반스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과 피가 흐르고 이전에 기억이 유지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이야기 속에 인간이 아니다. 증명을 하기 위한 수단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나는 역치가 된 기술의 발전의 폐해가 인간성을 희석시킨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윤택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지속하기 위해 발전을 지향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밸런스가 깨져있음을 보인다. 그렇게 흐트러진 발자국은 의도를 완성시키지 못한다. 그냥 단순히 앞으로만 가는 것인 것이다. 잠시 멈춰 전열을 가다듬고 상황을 봐야 한다라는 것을 미키의 모습을 보여준다.
- 현재
영화라는 픽션이라지만 현실에 기반되어 나오게 된다. 재미나게도 미키 17은 작금의 우리네 세상이야기를 잘 풍자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시간을 거치면서 개개인의 인식 수준을 높이며 향상하였다. 이러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개인에 세상이 좌지우지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소히 리더라 불리는 존재들에 의해 통제되고 그들의 방향성에 따라가야만 했다.
복불복으로 이상한 리더를 만나게 된다면 삶이 고통이 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나는 독일의 히틀러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잘못된 가치관과 신념을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시계에는 이러한 히틀러와 같은 이들을 마주하는 경우가 드물다. 또 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독립주체로의 개개인의 인식의 역량이 발전되어 있다.
이는 나름의 브레이크가 잘 작동되게 된 부분이다. 잘못된 길 앞에서 멈추게 되는 제동장치로서말이다. 하지만 변화가 되었다고 해서 문제아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드물게 나타난 이 부류 들은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혼란을 야기시킨다. 미키 17에서 마샬부부들이 그에 딱 맞는 부류이다. 그들은 능력도 떨어지며 잘못된 신념까지 확고하게 보이며 리더로서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배에 선장이며 마샬부부의 목소리의 영향은 크고 힘이 있게 보인다.
영화의 중반 이후 위기의 상황으로 몰리는 과정에서 그들은 한몫을 한다. 오판과 아집은 결국 자멸의 길로 이끌게 만든다. 유독 마샬부부를 보면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미국의 트럼프와 한국의 윤석렬부부가 생각났다. 트럼프는 집권과 동시에 세상에 롤을 깨뜨리려 하고 있다. 자국민 이익이라는 명분을 걸고 그간의 미국이 주도하여 만들어 놓았던 규칙들을 부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국제정세는 혼란스럽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룰을 깨는 것을 넘어 팔렌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지역인 가자지구를 미국에 넘겨라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한다. 그를 보고 있자면 동내 양아치 같은 모습이다. 주변의 소리는 듣지 않으면서 아집으로 세상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 속 마샬 부인인 일파와 비슷해 보인다.
그녀는 "소스는 인류 문명의 정수"라는 말을 하며 소스에 광기 어린 집착을 한다. 그러한 행태의 모습들이 결국 파멸로 이끌어지게 된다. 트럼프도 자국민 이익이라는 명분에 하는 패악질들은 오히려 공존의 흐름을 따라야 하는 역행하는 오판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은 외딴섬이 아니고 수많은 다리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동은 종국에는 위기와 문제에 고립되게 되게 만들 것이다.
트럼프 외에도 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 부부가 마샬부부를 보면서 상기되었다. 작년 우리는 황당무계한 계엄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려 하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면 공포스러움을 느꼈다.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역행하여 과거의 가슴 아픈 독재의 시대로 돌아가려 하는 시도 같아 보였다.
계엄령의 의도는 정당하지도 못했고 자신의 통치에 딴지를 거는 야당의원들의 적게 감에서 발발되었다. 다행히도 촛불집회의 시대를 겪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아가고 빠른 국회의원들의 행동으로 일단락은 되었다. 하지만 이후 리더라는 대통령의 모습은 염치없고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거짓과 변명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밝혀진 진실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부인이라는 사람은 무속에 집착하여 인사를 좌지우지하며 뒷방정치를 하고 있었고 그것을 줏대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이 바로 대통령이었다.
마치 일파에 말에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는 케네스 마샬 같아 보였다. 극 중에서는 일파가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에도 단어하나하나 통제하는 모습들을 보이는데 이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영부인이라는 사람이 컨트롤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는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잘못된 리더들로 우리의 삶은 고통스러움이 지속된다. 매일 양극단에서 시위에 불안과 불확실성이 커진 정세에 외국의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역사의 흐름에 우리는 수많은 오답노트를 적으면서 수정해 나가면서 앞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오답을 마주하는 경우가 발생된다. 이 불편함을 회피하고 수긍하고 갈 수 있지만 그것은 정답이 절대 되지 못한다. 결국 목소리를 내고 변화의 물결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에 높아진 민주적인 의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영화 속 하찮은 존재로 인식되는 미키가 상황을 반전시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