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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화라는 이름의 유려한 번역

릴로 & 스티치

by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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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화라는 작업은 본질적으로 ‘현실화’라기보다 ‘재해석’에 더 가깝다.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1:1로 옮겨오는복제의 기술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정서와 리듬, 그리고 상징성을 실사라는 프레임 속에 어떻게‘다시 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점에서 이번 영화는 일종의 번역, 그것도 굉장히 유려한 번역처럼 느껴졌다. 원작의 감정을 직역하지 않고,그 감정이 머물렀던 자리—즉, 정서의 자장을 포착해서 그것을 실사라는 언어로 ‘의역’해낸 인상이다.


랄로와 스티치라는 중심축은 매우 견고하다. 흔들림 없는 구조 속에서 이 영화는, 격렬한 감정의 폭풍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대신 그 틈에 담긴 여운과 무게를 탁월하게 길어 올린다.


마치 친절하지만 똑똑한 영업사원처럼, 원작의 팬들에게는 익숙함을, 새로운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명료한 매력을 건넨다.어쩌면 우리는 실사화를 통해 원작을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원작의 ‘가능성’을 새롭게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유효한 해석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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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로 & 스티치〉 –좋았던 점

최근 디즈니의 실사화 시도는 연달아 기대에 못 미쳤다. 원작의 감정선을 보존하기보다, 시대의 요구라는 이름 아래이것저것을 억지로 덧댄 결과 ‘번역’이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곤 했다. 그런 작품들은 원작을 사랑했던관객에게는 실망을, 처음 보는 관객에게는 어색함을 안겼다.

그에 비해 이번 『릴로 & 스티치』의 실사화는 꽤나 준수하게 길을 걷고 있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으면서도, 덜어내지 않는 전략이 주효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요소는 랄로 역의 마이아 케알로하다. 올해로 여덟 살, 데뷔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의 자연스러움과 생기, 그리고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하와이 출신이라는 배경과 캐릭터와의 유사성은 단순한 ‘캐스팅’이 아닌, 하와이의 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포착해낸 ‘선택’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중심축은 스티치다. 많은 실사화 작품들이 기술과 감정을 동시에 잡지 못한 채 둘 중 하나를 포기했지만, 이번 스티치는 다르다. 이질감 없이 녹아든 CG, 그리고 감정 표현까지 섬세하게 담아냈다. 1억 달러라는 제작비가 대부분 스티치 구현에 집중되었다는 점은,결과를 보면 현명한 선택이다.


기술이 기술로만 보이지 않고, 캐릭터로 느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여기에 원작의 뿌리를 함께 가져온 것도 주효했다.2002년 원작의 공동 감독이자 스티치의 창조자였던 크리스 샌더스가 이번 실사화에 참여한 것이다. 그의 복귀는 단지 팬서비스를 넘어,스티치라는 존재가 왜 특별했는지를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자극보다 정서를, 스펙터클보다 공감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옳았고, 덕분에 2시간이 흐른 뒤에도 관객의얼굴에는 피로가 아닌 미소가 남는다. 적절한 기술, 안정된 연기, 원작에 대한 존중, 그리고 무엇보다 스티치라는 존재에 대한 애정.이 모든 것들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맞물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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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

물론 모든 선택은 대가를 수반한다. 이 영화 역시 표현의 전략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취했지만, 그 선택은 동시에 몇 가지 결여를 남겼다.

원래 이 작품은 디즈니플러스를 위한 OTT용 콘텐츠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중간에 항로를 틀어 극장 개봉이라는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예산과 규모 면에서 일정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개봉했던 『인어공주』나 예정된 『백설공주』와 비교하면, 제작비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런 예산 안에서 제작진은 스티치라는 캐릭터 구현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일부 원작의 빌런들은 삭제되었고, 외계인 캐릭터들의 존재감도 크게 축소되었다.


더 나아가 스티치의 장난기 가득한 면모 역시 다수의 에피소드가 생략되거나 각색되며 축소되었다. 2002년 원작 애니메이션의 초창기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지점에서 꽤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결정적인 결핍은

스티치의 감정 서사에서 드러난다. 장난스럽고 미운정 들게 만드는 외계 생명체가 ‘가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여정,즉 스티치의 내면 변화는 이번 영화에서 충분히 확장되지 못했다.


감정의 파동은 억제되었고, ‘변화’보다는 ‘상태’로 머무는 느낌이 짙다. 결국 이는 시간의 제약이자, 예산의 제한이자, 전략의 결과다.스티치의 외형 구현에는 성공했지만, 그 내면까지 닿는 여정을 완전히 담아내진 못했다는 점, 그 아쉬움은 이 영화가 담은 성취의 반대편에 놓인 조용한 여운이다.


좋았던 점

유려한 실사화 번역
: 복제가 아닌 재해석. 원작의 정서를 실사 언어로 섬세하게 ‘의역’한 연출.

마이아 케알로하의 발견
: 랄로의 순수함과 하와이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낸 인상적인 데뷔.

스티치의 구현력
: 이질감 없는 CG와 섬세한 감정 표현. 기술이 캐릭터가 된 드문 사례.

존중이 느껴지는 제작
: 과장 없이 조화롭게. 원작의 뿌리를 다시 꺼내 보여주는 크리스 샌더스의 복귀는 상징적.


⚠️ 아쉬운 점

예산의 제약
: OTT용 기획이었던 한계. 스케일은 제한적이며, 빌런과 외계인 설정의 축소로 여백이 생김.

스티치의 내면 축소
: 감정의 파동이 억제되고, ‘변화’보다 ‘상태’에 머무른 캐릭터 서사.

장난기의 결여
: 초창기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었던 말썽꾸러기 스티치의 매력은 일부 생략·축소됨.

시간과 선택의 한계
: 정제된 감정선은 남았지만, 감정의 ‘깊이’는 덜 도달한 느낌.


별점 (★★★★☆)

� 연출 : 실사화의 교본처럼 정제된 언어

� 연기 : 마이아 케알로하의 발견

� 기술 : 기술이 감정을 넘어선 순간

� 감정선 : 파동보다는 여운,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자 한계


한줄평

“가족이라는 언어를 가진 외계 생명체,
그 조용한 실사화는 번역을 넘어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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