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보통 늦어도 한두 시간 내엔 콜백이 오는데 벌써 5시간째 전화가 없다. 남편에게는 "뭐 바쁜가 보지. 어디 무슨 일이 있어 갔나. 성당 모임이라도.." 혹시나 오늘이 무슨 대축일은 아닌가 싶어 매일 미사 앱을 켰는데 그냥 연중 미사일이다.
간밤에 심란한 꿈을 꾸어서일까. 무심한 태도로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결국 다섯 시간 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늘 똑같은 무심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목소리를 듣는 순간 탁 하고 막혔던 가슴이 트였다. 동시에 엄청난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불안했었구나.
엄마는 미사를 보러 갈 때 핸드폰을 놓고 갔고, 집에 와서 여태껏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는 자주 전화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엄마 안위를 매일 걱정하는 딸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느냐고 사람 걱정되게. 엄마는 늘 그렇듯 웃고 만다.
엄마는 며칠 후에 있을 아빠 제사 준비 때문에 오후엔 시장에 다녀온다고 했고, 나는 이따가 아이랑 영상통화나 하자고 말하며 통화를 짧게 마쳤다. 하지만 내 놀란 마음은 통화처럼 간단해지지가 않아서. 어느새 지난주 어느 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던 때로. 내 뒤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렸던 그 장면에 가 있었다.
그날 나는 지인과 가을인데도 날씨가 덥다며 차가운 냉면을 시켜서는 아주 맛있다고 먹고 있었다. 냉면 하나를 다 비우고 순두부찌개로 속을 덥히려던 때. 갑자기 뒤에서 "어머머머 여기 119 좀 불러주세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내 바로 뒤에 앉아계셨던 아주머니가 의식을 잃고 의자에서 고꾸라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일단 119부터 눌렀다.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안 된다며 전화가 뚝 끊어져 이를 어째 하고 있는데 다행히 금세 119로부터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내가 통화를 하는 사이 주변에 있던 한 아저씨가 뒤에서 아주머니를 안고 하임리히를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 덕분인지 아주머니가 다시 의식을 차리고 의자에 앉으셨다. 119 대원이 의식이 있으시냐고 물어서 아주머니께 괜찮냐고 여쭸는데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얼마 안 가 다시 의식을 잃으셨다.
나는 그 순간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119 대원이 시키는 대로 영상 통화를 연결하고 화면을 켜서 누워있는 환자를 보여주고, 구급차 대원이 묻는 질문에 답하고, 119 상황실에서 묻는 질문에 답하고, 무슨 정신으로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다시 정신을 차리셔서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바닥에 누워있었고, 119 구급대원들은 정말 신속하게 신고하지 얼마 안 되어 현장에 도착했다. 구급대원이 도착하고 나는 자리를 떠도 되는지 물은 뒤 황급히 식당을 나왔다.
그날 그 일이 있고 난 뒤 지금까지도 하루에 몇 번 그 아주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60-70대로 보이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날 아주머니는 무사히 병원에 가셨을까. 제발 무사하시기를 기도하는 것으로 심란한 마음을 달래 보려 했지만. 별 것 아닌 일이 아닌 게 되어 나를 온통 훑고 지나가는 기분이다.
그 순간 엄마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 생각. 그래. 죽음은 항상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예고 없이.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듯한 무심하고도 평온해 보이는 어느 날 한가운데를 불쑥 뚫고 들어와 심장을 낚아채지. 이제는 혼자 사는 엄마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나이다. 그러니 늘 죽음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날이 또 오면 나는 식당에서처럼 잔뜩 겁을 집어먹고 허둥지둥 댈까. 아니면 담담할까.
담담할 수는 없겠지. 담담한 척할 수는 있어도.
서럽고. 슬플까. 미안할까.
아직 오지도 않은 그날 생각에 빠져드는 내가 싫어 생각을 더 밀고 나가지 못하겠다. 아니. 싫다기보다 두렵다고 해야 옳겠다. 매일 숨을 쉬는 것처럼 사실 죽음도 공기와 같이 매일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것인데, 나는 어쩜 그 많은 죽음에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