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아내 (スパイの妻, 2020)후기

일찍이 본 적 없는 일본영화

by TERU

<스파이의 아내>를 서스펜스 멜로라고 소개하든 역사극으로 설명하든 이 영화의 스토리는 히치콕이다. 히치콕 특유의 ‘위기에 빠진 여자주인공’을 내세운 <스파이의 아내>는 2020년 6월 NHK에서 방영된 스페셜 드라마를 화면 비율과 색상 등 극장용에 맞게 재구성한 영화다.


1940년을 배경으로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와 행복하게 살던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는 사업 차 부산을 거처 만주국에 다녀온 후 그곳에서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벌이는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한다. 그는 이 참혹한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이를 기록한 노트와 필름을 미국으로 보내려 한다.


사토코는 남편의 행동이 현재의 안정된 삶을 위협할 것이라 생각하여 결사적으로 유사쿠를 말린다. 한편 사토코의 어릴 적 친구이자 헌병 분대장인 타이지(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유사쿠를 의심하고 주변을 감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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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사토코와 전쟁범죄를 폭로하려는 유사쿠, 일본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타이지, 세 주인공이 갈등하고 서로를 의심하며 각자 뜻한 바를 이루고자 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전쟁을 배경으로 했지만 멜로드라마와 서스펜스라는 장르가 중요하다”고 이 영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3명의 주인공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적, 도덕적, 정치적 갈등에서 점점 사색적인 그림으로 바뀌면서 긴장감은 그의 주된 의도가 아니게 된다. 스파이 혹은 스파이의 아내가 일제의 만행을 알게 되고, 그것을 해외에 알리려는 과정은 첩보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심심하다. 미행도, 음모도, 대단한 트릭도, 하물며 정보의 비대칭성도 없다.


서스펜스를 해체했음에도 신기하게 이 영화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왜냐하면 등장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공개하지 않아서다. 사건 즉 첩보과정은 진행되지만, 대부분의 심리적 정황을 불투명하게 가려 놓았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대로 충실하게 움직이는데 영화는 그것을 구태여 드러내지 않는다. 우리는 짐작할 뿐 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다. 즉, <스파이의 아내> 전체가 '맥거핀'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인의 심리를 관객들이 짐작하도록 이끈다.


이렇게 추측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면? 구로사와 기요시는 사토코가 일본 내부의 시선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일본 사회 안에 머물면서 행동한다. 사회의 압력을 마주했을 때 남성들의 행동은 둘 중 하나다. 패배하여 굴복하거나 튕겨져 나가거나. 하지만 사토코로 대표되는 여성들은 그 안에서 길을 모색한다. 사회 안에 머무르면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면모를 부각시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감독의 말마따나 사토코가 당시 일본 내부의 시선이라면, 타이지는 당시 일본을 전쟁으로 몰고 간 일본군을 대표한다 할 수 있으며 유사쿠는 그 반대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극중 유사쿠은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이라 소개하며 국제정세에 밝은 인물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도조 히데키 총리가 이끄는 일본대본영이 미국에 패배할 것임을 동시대의 일본인보다 일찍 간파할 수 있었다. 1941년 삼각동맹과 ABCD포위망, 대동아공영권을 라디오 방송, 회사 내에서 대화, 영화뉴스 등 간접적인 장치로 역사적 변곡점을 짚어준다. 극장장면에서 영화뉴스가 나온다. 이 장면은 당시 일본 대본영이 패전 등 불리한 소식은 철저히 은폐했음을 폭로한다. 약간 역사얘길한다면,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군은 패전 소식을 숨기기 위해, 살아 돌아온 항모기동부대원들을 외부와 차단한 채 격리, 연금시키고 대다수는 일선의 총알받이로 보낸 전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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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주인공 사토코가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식으로 <스파이의 아내>를 진행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목격자와 목격 당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들은 무언가를 목격하면 행동이 변하고, 그렇지 않다면 예전과 똑같다. 당연하게도 이때 주인공의 내면을 정의내리는 것은 관객의 판단이다. <스파이의 아내>는 사건과 정황을 나열한 뿐 매우 헐겁게 짜여있다. 그래서 관객들이 언제든 개입할 수 있도록 매장면마다 응당 맺고 있어야 할 인과관계를 일부러 멀찍이 떨어뜨려놓았다. 덕분에 긴장감은 밋밋하고 서사도 단조로워 영화 전체의 균형이 일그러져있다. 일부러 해체함과 동시에 영화는 끝까지 유사쿠의 진심을 발설하지 않는다. 이런 생략법은 당신의 목격으로만 성립하는 장면이다. 상황을 제시하며 관객의 예상을 끌어내고 실제 단서를 재빨리 생략한 다음 관객과 주거니 받거니 영화를 끌고 가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사쿠의 필름을 목격했었던 사토코처럼 우리의 심경을 변화시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개인의 행복'을 바라는 주인공이 '사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공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일본인이 일제의 전쟁범죄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국가의 이익이라는 의미다. 만약 일본이 아시아국가에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1985년 9월22일 일본과 독일은 미국에 의해 플라자합의를 채택한다. 단 1주일만에 독일 마르크화는 약7%가, 일본 엔화는 약8.3%가 각각 상승했다. 수출경쟁력이 약화하자 일본과 독일은 불황에 빠진다. 그러나 일본이 무리한 경제정책을 벌이다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한 반면에, 독일은 유럽연합(E.U.)를 출범시키고, 유로화로 유럽 경제권을 통합했다. 이렇게 E.U.회원국의 도움으로 독일은 경제난을 극복할 뿐 아니라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아직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극본을 쓴 하마구치 류스케, 노하라 타다시는 이 점을 분명히 의식했다. 일본이 과거사 청산만 잘했어도 우리나라, 중국 등 동아시아를 묶는 거대한 경제권역이 출범해서 북미나 유럽 경제권보다 큰 세계 제 1의 경제블록을 형성했을지 모른다.


이런 자기반성적인 태도는 극중 미조구치 겐지나 야마나카 사다오의 영화<고우치야마소슌 (河内山宗俊, 1936)>을 언급함으로써 명백히 밝히고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를 통해 전범의 후손이자 현대 일본을 지배하는 기득권인 ‘일본 우익’이 가려놓은 ‘역사왜곡’에서 일본인 스스로 벗어나길 소망하는 것만 같다.



★★★★ (4.0/5.0)


Good : 일본인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영화의 자세

Caution : 이런 일본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었으면



●이 영화는 제77회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고 일본 최고 권위의 영화 잡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지난해 최고의 일본 영화 1위로 뽑히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전부터 역사 영화에 관심을 보였던 기요시의 첫번째 영화다. 기요시는 <1908>이라는 중국 배경 역사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의 전쟁범죄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는 이유로 투자를 못 받아 엎어질 뻔하다가 NHK에서 돈을 대주면서 겨우 제작이 이뤄졌는데, 저예산 규모라서 로케이션 장소 섭외에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실외촬영 세트장은 같은 NHK 제작인 이다텐의 것을 공짜로 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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